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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 May 20. 2024

꼰대들아 미안해 내가 MZ라서

근데 내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여자아이는 자라는 내내 간섭을 많이 받는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는 유독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나는 팽팽 탁구를 치듯 어른들의 말에 하나하나 말대꾸했기 때문이다. 싸가지 없지 않냐고? 괜찮다. 내 태도는 어른들의 무지함에서 비롯됐으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괜히 있나. 전통적인 여성상에 맞게 나도 입을 다물고 싶었는데 글쎄 웬걸, 가뜩이나 반항적인 내 신경을 누군가 톡톡 건들였다. 나는 깡패 아저씨면 몰라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겐 함무라비 법전 같은 사람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내게 상처를 주면 똑같이 돌려주곤 한다. 어른이라고 예외는 없다.



아홉살, 송편은 어려워

아홉살에게 송편은 어떤 의미일까. 콩 송편? 깨 송편? 어떤 송편을 빚을지 고민하기보다 어느 쪽을 먼저 맛볼지 설레어할 나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 큰아빠는 어린아이에게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큰아빠는 내가 빚은 송편이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했다. 참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할 법한 소리였다. 어린 나이에 내 마음은 미어지는 듯했다. 별 일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지만 내 마음엔 아직 저녁 아홉시에 있던 일이 생생하다. 큰아빠는 내 송편을 평하며 시집 가긴 글렀다고 말했다. 이 말에 나는 일찍부터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누구 덕분에 핵개인화 시대에 발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열다섯한테, 너 시집가야 해

20대 여자 중에 나만큼 몸이 마른 사람은 드물다. 10대 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갤럭시폰을 손에 오래 쥐면 팔이 저렸다. 그만큼 약했고 앙상했다. 내게 관심 좀 있는 친척 어른이라면 애정 어린 말투로 밥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문제는 그렇게 말라서 아이는 어떻게 낳을 거니, 라는 말이었다. 왜 어른들은 가만히 있는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나는 화딱지가 나는 걸 참기 어려웠다. 내 나이는 열다섯이었으니까. 나는 거침없이 우다다 말했다. '큰아빠들, 지금 아무것도 안하잖아. 이 집안 식구들은 손하나 까닥 안 해. 며느리는 남자 집안의 합법적 노예 아니야? 그런데 나보고 결혼하라고?' 이 문장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어른들께 말해보았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색이 파리해졌다.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쉬웠다.



어서 며느리가 되어라

열아홉, 세상이 가장 미울 나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보다 큰아빠들이 더 미웠다. 큰아빠들은 종종 내 영역을 침범하곤 했는데, 수능을 100일도 채 앞두지 않은 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내게 송편 빚어라, 시집가라 헛소리를 해대던 둘째 큰아빠가 먼저 입을 뗐다. 둘째 큰아빠는 첫째 큰엄마를 가리키며 나도 저분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큰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머리를 질끈 묶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제사를 위해 몸을 바삐 움직였다. 둘째 큰아빠의 말에 다른 큰아빠들은 역시 형님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들을 한 방 먹일만한 자질이 내게 충분했다. '왜, 네 딸이 며느리라서 한 끼도 못 먹고 하루종일 일하면 참 좋겠다.' 이 말을 내 나름 예의를 갖춰 말했다. 그때 벙찐 나이 든 남자들의 모습이란, 어찌나 볼만 했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큰아빠들은 내게 미안했는지 줄지어 용돈을 손에 쥐어줬다.




나 같은 성평등주의자는 없을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원 선생이 수학 못한다고 남자아이를 혼냈다. 나와 동갑인 아이였다. 남자애는 선생이 사라지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선생이 나와 비교하며 남자애가 얼마나 수학을 못하는지 기 때문이다. 못 배운 남자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여자인데 수학을 잘하는 애가 있잖아, 너는 왜 남자인데 수학을 못하니." 여기서 여자는 나를 가리킨다. 얼탱이가 없어서. 나는 당장 선생을 찾아 가 따져 물었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성차별을 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수학 선생은 나와 남자애한테 사과했다. 결국 어른이 문제다. 참 멍청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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