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겪는 여름
초록을 연거푸 불러보아도 메아리는 오지 않았다.
올해 여름을 처음 맞이했다. 나에게 있어 여름은 그저 덥고 습한 보기 싫은 계절이었다.
계속 여름을 싫어했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끝나갈 때 이제야 나의 여름이 왔다는 걸 느낀다. 계속 여름을 좋아하려 노력했다. 여름을 대표하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글을 적었다. 하루종일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매미를 시작으로 찬란한 초록, 중부 지방에 사는 사람의 어쩌다 가는 바다와 같은 것들, 내가 느낀 여름을 자세히 적고 또 적었다.
5월, 여름을 예고하는 햇빛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이 든다.
더운 여름 앞에서는 청춘도 뜨거워진다.
근데 왜 내 청춘은 여름마저 차갑게 만드는 걸까.
뜨거운 사랑도, 격렬한 놀음도,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도 여름에는 없었다..
그러니 나에게 여름은 미운 계절이다.
매미들은 왜 이리 시끄럽게 우는지, 땀은 왜 이리 나는지, 놀이터를 점령한 아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비와 바람은 왜 이리 많이 오는지. 낮이 늘어져 밤의 시간을 가져가는 것도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여름이 좋아?라고 물어보면 자연스레 아니라고 답했고.
얼른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추억도 아닌 추억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나의 인생계획표를 그려보면 지대하게 영향을 주는 사건이 하나 있다.
입시 실패로 인한 재수, 어쩌면 내가 처음 제대로 마주한 실패였던 것 같다.
사회로 나가는 첫 단추를 잘 못 낀 것 같은 불안감, 대학생활을 즐겁게 하는 친구들, 여전히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언제나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러다 6월에 엄마가 나를 데리고 평소에 자주 가던 산을 갔다.
가파른 산이 아니라 산책 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산이었지만
평일이고 제일 뜨거운 시간대라 등산하던 몇몇 사람들 빼고는 없었다.
거기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푸르른 꽃들과 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 뜨겁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
별거 아니었지만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엄마는 정상에 도착했으니 소리쳐보라고 했다. 평소에 독서실에서 조용히 있었으니깐
여기서 소리 많이 내라고.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작게 소리를 치고 점점 나의 목소리는 대담해져 큰 소리로
행복하자라고 외쳤다.
당연히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뒤로 한 채
나는 집에 와 평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마음의 짐을 덜어놓은 사람이 되었다.
그 기억 하나만으로 나는 여름을 기대하게 된다.
나를 무더운 여름 속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그 무더운 더위가 우울할 시간도 없이 우울이 찬찬히 녹아내리는 것도.
돌이켜보면 내가 여름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 밤의 듣는 노래도, 친구들과의 강릉 여행도, 덥지만, 재밌는 페스티벌도, 새로운 인연도, 혼자 다녀온 제주도도
평범한 것들이 돌아보면 그게 전부다 여름이 만들어준 특별함이었다.
나는 올해 여름을 처음 맞이했다.
계속 정들어 붙일 수 없지만 계속 사랑하는 과정으로 나만의 여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여름이 싫다.
뜨거운 햇빛과 습한 날씨로, 땀으로 몸을 적시는 게 일상인 여름이 싫다.
하지만 여름이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알 수 없는 기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