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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렛 Jul 07. 2024

콩국수개시

설탕 넣으세요, 소금 넣으세요?

네 개의 계절 중 내가 여름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태닝, 아이스크림, 그리고 콩국수다. 콩 특유의 비릿한 맛이 느껴지는 노란콩국수든,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고소한 맛이 더해진 검은콩국수든, 콩국수는 영양학적으로 완전하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어린 시절, 여름철 주말 저녁으로 엄마가 준비하시던 특식은 둘 중 하나였다. 초계국수 아니면 콩국수. 어릴 때는 이런 국수보다 살짝 타게 구운 스팸 한 조각이 더 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콩국수는 정말이지 ‘특식’이 맞다. 이렇게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따로 없다. 엄마는, 맷돌까지는 아니었지마는, 불린 콩을 믹서에 넣지 않고 나름의 재래식 도구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먹던 콩국수든, 식당에서 파는 여름별미 콩국수든, 나는 콩국수 맛의 핵심을 ‘걸쭉함’이라고 생각한다. 차갑고 하얀 스튜 같달까.

‘콩국수’라는 음식에서의 논쟁이 있다면, 설탕을 넣어 먹는 전라도식 취향과, 소금을 넣어 먹는 경상도식 취향에서 시작된다. 엄마와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플레인” 콩국수파지만, 나의 아빠는 경상도 분이기 때문에 집에서 먹던 콩국수에 제공되는 조미료는 소금뿐이었다. 콩국수나 팥죽에 설탕을 넣어먹을 수 있다는 건 대학에 가서 알게 되었다. 전라도 나주 친구가 팥죽에 설탕을 ‘부어’ 먹는 걸 보고서야 견문이 넓어진 것이다. 본디 대학이란 이런 것이다. 그녀는 콩국수에도 설탕을 넣는다고 했다. 듣는 당시엔 식사에 이렇게까지나 노골적으로 설탕을 바로 넣어 먹는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이었는데, 내가 거부감을 보인 것에 비해서 그 다디단 콩국수 맛이 엄청 좋았다. 이때부터 “여름별미 콩국수개시”라는 사인을 보고 더 설레게 됐다.

올여름만 해도 벌써 식당 콩국수를 다섯 그릇 해치웠다. 외부 일정이 잡힐 때면 그 주변에 콩국수를 개시한 식당을 중심으로 동선을 짠 덕분이다. 식당 콩국수에서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1) 콩국수 그릇을 받자마자 뽀얗고 영롱한 콩국수 사진을 요리조리 찍고, 2) 숟가락으로 콩국을 예닐곱 번 퍼먹는다. 그리고 3) 추가 간을 하지 않은 채로 맨 콩국수의 2분의 1을 먹는다. 4) 그 집 특성에 맞게 설탕이나 소금을 넣고서 남은 콩국수의 반을 먹는다. 보통, 짠 겉절이를 주는 곳이면 소금을 넣고 심심한 초절임을 주는 곳이면 설탕을 넣으면 잘 맞더랬다. 5) 남은 콩국수에는 설탕을 듬뿍(한 다섯 숟가락?) 넣어서 디저트처럼 먹는다. 그러고 나면 누가 국수 아니랄까 봐 정확하게 15분 후에 배가 심각하게 불러온다.

묘사하는 순간 침이 다 나온다.


지난달 한강수영장 개장 소식을 접하자마자 집 근처 콩국수집들을 검색했지만, 역시나 콩국수 ‘전문점’은 잘 없었다. 두부집, 만둣국집, 칼국수집에서 계절 메뉴로 선보이는 것이 여름 콩국수와 겨울 팥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은 콩국수집을 짐작해 내는 건 비교적 쉽다. 메뉴가 단순하면 된다. 콩국을 만드는 것 자체가 손이 아무래도 많이 가기 때문에, 기본 메뉴가 많다면 콩국을 직접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메뉴가 칼국수, 수제비, 콩국수 셋 뿐인 “ㄱㅇㄷㅅㅋㄱㅅ” 식당에서 20분을 기다려서 콩국수를 먹었다. (이곳은 심지어 만두도 팔지 않는다.) 콩국수를 받자마자 중요한 ‘하프(half) 달걀’이 없는 것에 실망했지만 오이와 방울토마토가 있어서 귀엽다고 생각했다. 삼분지일을 잘 먹고서야 식탁에 설탕이 없는 걸 알아챘다. 식사 흐름이 끊기지 않았으면 했는데……. 하는 수없이 중간에 설탕을 달라고 카운터까지 가야 했다. 조미료 칸에서 설탕을 찾아서 종지에 덜어주시는 것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이곳이 서울이라지만, 설탕콩국수파가 이렇게까지 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식탁엔 소금도 없는 걸 보아하니, 여긴 서울이 확실하다.

며칠 후 엄마표 검은콩국수를 맛보게 됐다. 엄마가 정성과 기력이 예전만 못해서인지, 콩을 그냥 믹서에 갈아버렸더니 곱지도 않고 맛도 없는 것 같다고 사전고지했다. 맛이 좀 덜해도 불평 말라는 것 같았다. 역시 나이가 드니까 눈치가 좀 생긴다. 수저를 놓고 상을 준비하려는데 조리대 쪽에 소금 종지도, 설탕 종지도, 김치도 없었다. 내가 나주 친구한테서 배운 대로 설탕을 담으려고 했더니, 엄마가 서운해했다. 본인께서 아무리 맛이 없다고 했다지만 그렇다고 설탕맛으로 먹겠다는 거냐며.


엄마……. 오해야…….

나 콩국수 엄청 좋아해…….

그리고 그 안 고운 검은콩국수도 나는 엄청 맛있었어…….

그냥 나는 요새 달달이가 좋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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