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생애 첫 프로 기획

제1회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선거 기획에 대한 이야기


선거공보물을 흑백으로 제작했다



1995년 제1회 지방자치 선거에서 우리 후보님은 민주당 공천에 탈락했다. 그럼에도 성동구청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나는 의리로 선거 총괄기획을 맡아서 진행했다. 이곳 선거기획 사무실에서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 인연 때문에 확률 없는 일에 뛰어들었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슬로건을 "성수대교는 제가 잇겠습니다."로 정했다. 그랬더니 내 기획 의도와 달리 유권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사를 할 것인지 참 많이 물어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대신 선거 전략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공약을 세우려고 했다. 예를 들어 마장동 497-12 외 필지 공유지 분할, 성수동 1가 1동 62번지 도로변 정비, 금호 4 가동 233 풍치지구 조정 등 세부적이고 자세한  공약들을 제시했다. 그만큼 동네를 발로 뛰어서 잘 아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팸플릿에 있는 일러스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촌동생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신뢰하고 믿음을 주는 후보로 이미지를 주고 싶어 아들이 쓴 편지를 실었다. 


“아버지께


언제나 새벽 5시면 눈을 뜨셔서 성동을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나가시는 아버지.


너무나도 자상한 사랑을 성동에 쏟아부우시는 아버지


그래서 가끔씩 저희는 성동에 아버지를 빼앗긴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피시는 뒷골목 하나하나가 모두 저희들 행복의 디딤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언제인가부터 저희도 당신만큼이나 성동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성동은 아버지의 자랑이듯 저희에게 도 자랑이 된 것입니다.


정겨운 악수로 지역주민들과 스스럼없는 벗이 되시고 함께 웃으며 고민을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은 저희에게 진정한 일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쪼록 더 깊은 애정으로 더 많은 봉사를 하실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힘내시고 열심히 뛰십시오.


장남 학준 올림”




이 편지가 화제가 되어 그 당시 유력  일간지 두 곳에 기사화되었다. 무소속 후보가 언론에 등장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 기획은 꽤 성공적인 결과였다.




선거 캠프는 예상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예산도 절약하는 차원에서 인쇄물을 전부 흑백으로 제작했다.  "돈 안 쓰는 선거"를 위하여 모든 홍보물을 흑백으로 제작했다고 팸플릿 끝머리에 달았다. 의외로 이것 역시 화제가 되었다. 선거벽보, 즉 포스터가 타 후보들은 모두 칼라이다. 혼자만 흑백이다. 오히려 그 점이 부각되었다. 




공식 직함은 통장을 관리하는 회계책임자였지만, 선거기획 사무실 조직이 작아서 혼자서 홍보기획, 조직, 공약, 현장, 회계까지 모든 일을 다 아우르는 일을 했다. 통장의 돈도, 조직도, 공약도, 공보물도, 현장도 32살의 나이에 약 석 달 동안 오십 명의 사람을 이끌게 되었다. 대부분 열 명 정도가 후보님의 아들과 그의 친구나 후배였고 나머지는 어르신들이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회의를 내가 이끌었다. 이들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열정과 솔직함만이 승부라 여겼다. 간혹 후보의 상품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운동원들이 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후보의 상품 가격이 정체 또는 하락되어 있어도 오히려 상품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은 운동원이라고 역설했다. 그것이 통했는지 선거 해단식까지 갈등이 거의 없이 마무리되었다. 


 약 삼 개월 정도 서 너 시간 자고 일을 한 듯하다. 특히 선거 개시와 함께 부착하는 선거 현수막도 자원봉사자를 이용해서 새벽에 대로변에 붙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후보는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나에게는 모든 기획 분야 전 과정을  경험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기획사인 (주)디자인세성을 창업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보상을 받고 전문적으로 진행한 최초의 기획이었다. 또한 우리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곳이기에 언제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후보님!


세무사님!


저를 믿고 전적으로 일을 맡겨주셔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기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