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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Jun 04. 2024

지옥 인간

생각할 게 많은 B급 괴물 영화

공명기의 원리부터 파악하자. 천재 박사 프리토리어스가 만든 이 기계는 자기장을 형성해 주변의 파장을 진동시켜 사람 뇌에 있는 송과선을 자극한다. 이것에 노출되면 송과선이 비대해져 오감(五感)을 뛰어넘는 육감(六感)을 가지게 되는데, 현실 너머에 있는 미지의 존재를 보게 되고 자신 또한 그것에 영향 받게 된다. 이 영화는 정신과 육체를 나누는 이분법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공명기 작동의 결과로 정신은 육체화하고 육체는 정신화한다. 공명기는 정신을 육체적으로 만들고 육체를 정신적으로 만든다.

등장인물을 예로 들면, 프리토리어스는 천재지만 변태다. 그는 여자를 집에 데려와 가학적 성행위를 즐긴다. 오감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한 쾌락을 위해 공명기를 만든 사람이다. 그가 진동에 노출됐을 때 그의 머릿속에 있던 가학적 변태 괴물이 육화되어 나타나 그를 잡아먹었다. 공명기가 정신을 육체로 만든 것이다. 그 괴물은 변태 프리토리어스의 평소 정신 상태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노출 초반에 크로포드가 작동을 멈추라고 말리지만 프리토리어스의 본래 육체는 변태적 정신 상태에 도취돼 기계 작동을 지속한다("Never! Can't you feel it? Crawford, in a mind…."). 천재의 육체가 변태의 정신으로 돌변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정신을 육체화하고 육체를 정신화하는 공명기의 영향으로 본래 프리토리어스(육체)는 변태(정신)가 되어 기계를 멈추지 않고, 변태 습성(정신)은 괴물(육체)이 되어 나타나 그의 머리를 먹어치운 것이다.

크로포드도 마찬가지다. 그가 공명기에 처음 노출됐을 때 나타난 것은 뱀처럼 생긴 괴물이다. 그것은 그가 하숙하고 있는 프리토리어스 집의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 속 동물과 흡사하다.

공명기의 영향으로 그의 정신 어디인가에 있던, 집을 들락날락하다 보았던 그림 속 상(像)이 육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정신이 육체가 되어 뱀 괴물로 나타났다면, 그의 육체는 정신이 되어(엄밀히 말하면 '정신의 영향을 받아')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고 안구 흡입을 통해 사람의 뇌를 먹기 시작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느냐 하면, 그가 부바 형사와 나눈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연구실 책상에 잠든 캐서린을 보며 약간 음흉한 상상에 빠진 크로포드. 부바가 그에게 다가가 캐서린이 예쁘지 않느냐고, 뭐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묻는다. 크로포드는 이 물음에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는데, 프리토리어스가 집에 미인들을 데려왔고 맛있는 식사와 좋은 음악으로 분위기를 냈는데 그게 항상 비명으로 끝났다고, 자기는 연구실에서 그 비명을 듣기만 했다고 답한다. 그리고 부바가 프리토리어스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폄하하자 발끈하며 그는 천재였다고 프리토리어스를 옹호한다. 여기서 '비명'은 프리토리어스의 가학적 성행위를 말한다. 크로포드는 그 섹스 소리를, 그것도 연구실에서 누운 채 들었다. 얼마나 애처로운가. 교수는 여자 불러서 섹스하는데 조교는 연구실에 혼자 누워 있다니. 이를 통해 크로포드가 평소 프리토리어스의 성생활을 부러워했음을, 그가 성욕에 굶주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정신 상태 중 가장 큰 욕구가 성욕이었기에 공명기가 작동하자 캐서린과 눈이 맞고 야릇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뇌를 먹은 까닭도 아까 언급한 대화에서 드러난다. 크로포드는 프리토리어스의 천재성을 칭송한다. 비록 그가 변태 사디스트였을지라도 그를 옹호하며 자기 스승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는다. 또한 프리토리어스가 괴물이 되어 나타났을 때도 크로포드는 초반에 그리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라고 설득까지 한다. 그가 프리토리어스의 천재성을 흠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에는 천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본인도 천재가 되고 싶었기에, 그런 정신적 욕구가 있었기에 공명기의 영향을 받은 후에 인간의 뇌를 탐닉한 것이다. 뇌를 먹는다고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뇌에 대한 집착이 지능과 어느 정도 상징적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공명기의 영향을 받은 뒤에 크로포드의 정신은 뱀 괴물이라는 육체가 되었고, 그의 육체는 섹스를 갈구하고 지능(뇌)에 집착하는 정신이 된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갑자기 대머리가 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공명기가 육체에 정신을 반영해 육체를 정신 속 상태와 비슷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하실에서 구렁이처럼 생긴 커다란 괴물(아마 초반에 등장한 뱀 괴물(크로포드의 정신이 육체화한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한 것일 확률이 높다.)과 난투를 벌인 크로포드는 그 괴물에게 머리를 씹힌 뒤 대머리로 변한다. 나중에는 송과선이 이마를 뚫고 나와 기괴한 모습이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육체를 변태스럽게 변형하는(육체의 정신화) 공명기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다.

결말에 크로포드가 캐서린을 도와주려고 괴물 프리토리어스의 몸을 뚫고 나올 때는 모발이 풍성한 본래 모습인데, 이는 머리가 잘려 육체가 죽어 완전히 정신의 세계(beyond)로 넘어간, 즉 괴물 프리토리어스에게 완전히 흡수된(프리토리어스도 머리가 잘려 죽어 정신의 세계로 넘어가 괴물이 됐음.) 크로포드가 다시 실제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프리토리어스의 정신에 반역했기 때문이다. 공명기의 영향을 받아, 육체가 정신의 악영향을 받았을 때는 대머리가 되어 인간 반 괴물 반 모습이었는데(아직 어느 세계로도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상태), 죽은 뒤 정신의 세계로 완전히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정신의 세계(괴물 프리토리어스)를 완강히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 머리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캐서린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녀는 공명기의 영향을 받아 성에 눈을 뜬다. 그 전에는 머리도 묶음으로 단정하고, 모범생처럼 안경도 쓰고, 옷도 단정하게 껴 입었다. 크로포드를 처음 만난 날, 그가 격리된 병실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캐서린은 옷과 장갑 그리고 블라우스 목에 단 펜던트 같은 것을 직원에게 맡기는데, 이는 일부러 옷과 소지품에 관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그만큼 정숙하고 성욕과 동떨어진 인물임을 알리려는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옷 색깔 또한 지루할 정로로 밋밋하다.

하지만 공명기에 노출된 후 그녀는 벗기 시작한다. 사람이 성에 눈을 뜨면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안경부터 벗는데 그녀도 영화 끝날 때까지 맨눈으로 등장한다. 옷 또한 마찬가지다. 답답한 정장을 벗고 하얀 잠옷 드레스 차림으로 공명기를 다시 가동하는데, 여기서 하얀 잠옷은 그녀의 순결을 상징한다. 이때 나타난 프리토리어스는 그녀의 잠옷을 찢고 그녀를 희롱하는데("In another life, I would of enjoyed you in another way.") 그녀의 잠옷이 찢어졌다는 사실은 그녀의 순결이 훼손당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 후 그녀는 완전히 성에 눈을 떠, 프리토리어스가 집에 데려온 여자들에게 입혔던 야한 옷을 입고 가학적 성행위 기구에 호기심을 보인다. 공명기의 영향으로 그녀의 정신에 있던 성욕에 대한 갈망이 육체로 드러난 것이다(육체의 정신화).

성욕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정신병 환자에 대한 격리를 싫어한다는 설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초반에 병원에서 블락 박사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캐서린은 자기가 정신질환자를 가둬서 치료하는 방법을 싫어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You know I'm not in favor of locking away schizophrenics."). 공명기를 다시 가동하는 문제를 두고 크로포드와 티격태격할 때도, 자기 아버지가 15년간 시설에 있다가 1년 전 식물인간으로 죽었다는 얘기를 꺼냄으로써 격리 치료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드러낸다. 영화 내에서 그녀가 격리를 싫어하는 이유가 부친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 때문일지 몰라도, 영화 밖에서 분석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그녀가 격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의식에 억압된 성욕 때문이다. 격리는 무엇을 가두고 금한다는 뜻이다. 그녀는 욕망을 보고 싶은데("No. I have to see more.") 격리 치료를 대표하는 블락 박사는 야한 옷을 입고 병원에 온 자신을 나무라고, 지능에 대한 집착 때문에 피를 묻히며 뇌를 먹는 크로포드를 병실로 데려가려고 한다. 캐서린과 블락 박사가 반목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한쪽은 개방하는 입장이고 다른 쪽은 폐쇄하는 입장이다. 나중에 캐서린이 병원을 탈출한다는 전개도 격리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과 관련된다. 그녀의 정신 어디인가에 억압된 성욕을 분출하고픈 욕망이 있었기에 격리를 거부하고 공명기의 영향을 받은 뒤 음탕한 여자로 돌변한 것이다.

캐서린이 본, 병실에서 나체로 자위하는 환자는 그녀의 무의식에 억압된 성욕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벌레 떼의 공격으로 부바가 죽고 송과선이 이마를 뚫고 나와 크로포드가 쓰러진 상황, 그리고 마지막에 폭탄이 터져 창문을 뚫고 투신한 상황에서도 그녀가 웃었던 점으로 보아, 또 프리토리어스의 가학적 성행위 기구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미루어 그녀가 마조히즘 성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명기 영향으로 그런 피학적 변태 본능이 드러난 것이다.

공명기의 원리를 개괄한 뒤 이 단락을 마치겠다. 첫째, 공명기는 그것에 노출된 인간의 정신을 다른 차원의 육체로 만든다. 둘째, 공명기에 노출된 인간의 육체는 본인 정신에 영향을 받아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을 보인다. 셋째, 정신이 육체화한 대상이 본래 육체를 죽이면 그 사람은 육체화한 정신이 되어 저세상(beyond)으로 넘어간다("Yes, and Edward's mind. He became the thing that ate him.").


영화의 주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부바 형사가 말한 "We were all crazy."라는 대사가 곧 주제다. 부바가 자신을 소개하며 과거에 본인이 미식축구를 했고 그때 선수들 모두 미쳤었다는, 매우 사소한 대사인데 노련한 감독일수록 이런 비중 없는 대사에 주제를 넣는 것을 잘한다.

모두 미쳤다는 게 어떻게 주제인가. 영화를 보면 프리토리어스가 괴물이 되어 등장인물을 괴롭히니 그만 미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변태스러운 성욕과 흉물스러운 생김새를 과시하며 저세상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육감의 세계가 달콤하다고 해도 본래 육신을 버리고 괴물이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처음에 크로포드와 캐서린은 프리토리어스의 꾐과 괴롭힘에 항거하며 이 세상의 상식을 지킨다("Listen to me. Whatever you are, you're still Edward Pretorious. You're still human!"). 굳이 선악을 나눈다면 크로포드와 캐서린은 선이고 괴물 프리토리어스는 악이다. 영화 초반까지 이 선악 구도는 꽤 잘 지켜진다. 그러나 공명기에 의해 저세상의 쾌락을 맛본 뒤로 크로포드와 캐서린은 반쯤 맛이 간 상태가 되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모를 행동을 하게 된다. 크로포드는 사람을 죽여 뇌를 먹고 캐서린을 겁탈하며, 캐서린은 쾌락을 느끼고 싶어 공명기를 몰래 가동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몸짓을 보인다. 이쯤 되면 그 둘이나 괴물 프리토리어스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선악의 구도는 철저히 무너지고, 이들뿐 아니라 다른 인물도 악에 가까운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

정신병원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름하고 가늠하는 규준을 상징하는 곳인데, 블락 박사는 정상인 캐서린을 비정상으로 보고 전기충격 치료를 받게 한다. 캐서린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치료하는 의사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듣지 않는다. 정상을 비정상으로 오인했으니 정상과 비정상을 판별하는 정신병원이 오히려 비정상이 된 셈이다. 또 구급차에 내린 남자 직원을 크로포드가 안구 흡입으로 죽였을 때, 그 장면을 본 환자 할아버지가 뱀이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고 말하자 여자 직원이 환각 상태에서 지껄이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한다. 이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쪽은 환자고 그는 정상에 가깝다. 하지만 정신병원 측은 그를 비정상으로 여긴다. 이쯤 되면 누가 진짜 미친 것인지 모호해지고, 우리 모두 미쳤다는 부바 형사의 대사("We were all crazy.")가 설득력 있게 들리기 시작한다. 육감에 빠져 괴물이 된 프리토리어스도 미쳤고, 공명기의 영향을 받아 이상하게 변한 크로포드와 캐서린도 미쳤고, 정상을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정신병원도 미쳤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영화를 얼핏 보기에 괴물이고 악당인 프리토리어스만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런 단순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괴물 프리토리어스가 사는 저세상도 미친 곳이고, 우리가 사는 이 현실도 까보면 미친 곳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가 우리 모두 미쳤다는 그 대사인 것이다. 결말에 폭발을 피해 투신한 캐서린이 아프고(다리 다쳐서) 슬픈(좋아했던 크로포드가 죽어서) 상황에서 미친 듯이 웃었던 까닭도, 저세상이 폭발로 끝났어도 이 세상의 미침이 끝나지 않았다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미쳤다는 게 이 영화의 주제라는 것을 방증하기 위함이다.

부언하자면, 괴물이 되어 저세상으로 간 프리토리어스만 미친 게 아니라, 공명기를 통해 정신에 숨어 있던 욕망이 깨어나 크로포드와 캐서린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일반인도 마음속 어디인가에 변태적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두 미쳤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 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특히 등장인물끼리 처음 만날 때 어김없이 모두 문을 연다. 크로포드가 공명기의 작동 사실을 프리토리어스에게 처음 알릴 때 프리토리어스가 문을 열고 나오고, 이웃집 아줌마가 개를 찾으러 프리토리어스의 집에 들어갈 때 연구실에서 프리토리어스의 죽음을 목격한 크로포드가 문을 열고 뛰쳐나오고, 블락 박사가 경찰과 함께 온 캐서린을 대면할 때 문을 열고 등장하고, 캐서린이 정신병원에 격리된 크로포드를 만날 때 문을 열고 들어가고, 부바 형사가 크로포드와 캐서린을 처음 만날 때 차 문을 열고 나오고, 괴물이 된 프리토리어스가 세 사람(크로포드, 캐서린, 부바) 앞에 나타날 때 창문이 깨진다. 심지어 다리를 다쳐 울고 있는 캐서린에게 이웃 주민들이 다가갈 때도 그 전에 캐서린은 폭발을 피해 창문을 깨고 투신했다. 모두 문이 열린다는 점이 공통이다. 그렇다면 문은 무엇을 뜻하는가. 왜 문이 열리는가. 그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던 우리 모두가 미쳤다는, 이 영화의 주제 때문이다. 모두 미쳤다는 공통점을 가지려면 단절과 구분이 없어야 한다.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나 장애물이 있으면 그것은 공통된 것 혹은 같은 것이 아니다. 문은 분리된 공간 사이에 놓인 통로로써 열리면 통하게 하고 닫히면 다르게 한다. 문이 열리면 두 공간은 하나다. 문이 닫히면 두 공간은 둘이다. 모두 미쳤다는 주제에 부합하려면 등장인물이 문을 열고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무의미해져 모두가 미친 한통속이 될 수 있다.

프리토리어스의 집에 숫자 666이 쓰인 번호판이 붙어 있다. 666은 악마를 상징하는 숫자다. 이 집에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그만큼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장치다.

경찰이 살인 용의자로 검거된 크로포드의 정신 상태를 누구에게 검사시킬지 고르는 중이다. 위 장면에서 경찰은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그래서 캐서린과 블락 박사가 희미하게 아웃포커스로 처리되었다. 아래 장면에서는 캐서린이 크로포드의 적임자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녀만 선명하게 잡혔다. 인물 위치도 그녀가 가장 전방에 있다. 이제부터 그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경찰은 캐서린을 믿고 크로포드를 맡겼지만, 자신의 동료(부바 형사)가 죽고 캐서린과 크로포드가 제정신이 아닌 모습으로 병원에 돌아오는 일이 발생한다. 캐서린의 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제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박사인 그녀를 정신병자 취급한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구도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그녀와 대립 관계가 된 두 사람이 그녀의 전방을 막고 그녀를 사이에 두어 가두었다. 벽에 걸린 액자는 그녀의 위를 막았다. 그녀가 탈출할 길은 없다.

캐서린과 크로포드가 처음 대면하는 장면이다. 정신병자 취급 받는 크로포드는 구석에 몰려 있고 그를 검사하러 온 캐서린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그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 여기서 크로포드의 말을 진실로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그는 약자고 혼자다. 구석에 몰려 작게 표현된 모습이 그의 처지를 나타낸다. 캐서린도 그의 말을 아직 믿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두어 떨어져 있다. 둘 사이에 창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앞에서 얘기했듯이 문은 두 공간의 통로로써 열리면 서로 통하고 닫히면 서로 다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금 이 장면에서 문은 닫혀 있다. 크로포드는 공명기와 괴물 프리토리어스에 대해 말하지만, 크로포드의 말대로 송과선이 비대해진 것을 CT촬영 후에 알게 되는 캐서린은 아직 그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 위치한 창문이 닫혀 있는 것이다.


크로포드와 대면한 후 병실을 나오는 길에 캐서린이 블락 박사에게 CT촬영을 요구한다. 블락 박사가 이유를 묻는데 캐서린이 항상 더 볼 게 있다("There's always more to see.")고 답한다. 이는 표면상 크로포드의 뇌를 보고 싶다는 뜻이지만, 궁금증 많고 그래서 공명기를 가동해 저세상의 존재를 보고 육감을 느끼는 그녀의 운명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볼 게 있다'는 것은 명목상 크로포드의 뇌지만 실제 숨은 뜻은 공명기를 통해 드러나는 저세상의 존재다.


연구실은 괴물이 프리토리어스의 목을 먹어치운 곳이다. 세 사람(크로포드, 캐서린, 부바)이 연구실에 당도했을 때 부바는 배고프다며 뭐 좀 먹자고, 프리토리어스가 괴물에 먹혀서 죽은 것과 비슷한, 마치 그 사건을 연상시키듯이 먹는 얘기를 꺼낸다.

실제로 다음 신에서 부바가 빵 같은 것을 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음식 모양이 죽은 프리토리어스의 머리를 연상시키듯 뇌와 닮았다.

괴물 프리토리어스의 흉측한 모습에 비위 상한 부바는 구토한다(上). 그 다음에 캐서린이 달걀을 깨는 장면이 이어진다(下). 부바 입에서 쏟아지는 위액과 깨진 달걀에서 흘러내리는 흰자위가 묘하게 닮았다. 서로 비슷한 사물을 이어 편집을 매끄럽게 하는 매치컷 기술이 쓰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유인원이 공중으로 던진 뼈다귀가 다음 장면에서 우주선으로 연결되는데, 그런 것이 매치컷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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