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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공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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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Jun 05. 2024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2003)

전기톱 살인마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

1. 동물보호(Animal Welfare)

이것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다. 살인마가 나와서 사람을 무참히 도륙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이야기 속에 숨은 메시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텍사스 전기톱 시리즈의 원작(The Texas Chain Saw Massacre)을 감독했던 토브 후퍼는 그 영화의 중심 테마가 지각 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육식 문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영화 촬영 동안 육식을 끊었다고 한다. 원작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에도 육식을 겨냥한 주제 의식이 깔려 있음은 당연하다. 살인마 레더페이스는 사실, 살생에 무감각하며 육식을 즐기는 인류를 상징하고, 그에게 살해당하는 희생자들은 인간에게 도살당하는 동물을 상징한다. 영화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무고한 사람들을 쫓고 죽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문도 모른 채 썰리고 베이는 처지에 인간을 대입함으로써 육식을 위해 인간에게 도축당하는 동물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에린이 살인마를 피해 달아날 때 사방이 트인 넓은 공간에 가지 않고 오두막이나 도축장(BLAIR MEAT CO)처럼 폐쇄된 공간에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두막의 벽 구멍과 도축장의 사물함에 숨은 에린은 우리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도살과 죽음 앞에 동물들이 느낄 공포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이 설정과 의도를 부각하기 위해, 에린이 도축장에서 살인마에게 쫓길 때 우리에 갇힌 돼지들을 직접 보여준다. 그리고 에린이 결국 도축장으로 도망한다는 전개도 동물의 입장에 인간을 대입하기 위한 연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켐퍼와 앤디가 살인마 가족의 집에 잠입할 때 가축을 몰아내며 들어가고 가축이 그들의 발길에 차이는데, 그들이 가축의 공간을 대신했다는 것은 그들이 가축의 입장에 놓였음을 암시하고, 결국 이는 동물의 입장을 간접 경험시키고자 하는 영화의 의도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동물의 입장에 놓고 인간을 동물과 동일시한 흔적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인물별로 살펴보면 앤디의 허리띠 버클에 뿔 달린 소머리가 새겨져 있고, 그는 전기톱에 다리가 잘린 후 도축된 고기처럼 갈고리에 걸린다. 또, 히치하이커 소녀의 시체를 버리고 가자고 말할 때("I say we dump her.") 페퍼가 그에게 부정적인 뜻으로 돼지("pig.")라고 답한다. 페퍼 그녀는 죽을 때 잠바를 입고 있다. 그래서 전기톱으로 썰릴 때 잠바 속에 있던 털이 밖으로 날린다. 그녀의 죽음은 닭이 도살될 때 깃털 뽑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영화에 닭이 등장하고, 영화의 시간 배경이 8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잠바를 입었다는 것은 인간을 동물의 입장에 놓으려는 설정 때문에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임을 뜻한다. 모건은 죽을 때 샹들리에에 걸린다. 앤디처럼 직접적으로 갈고리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에 걸린다는 것 자체가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킨다. 또, 그가 보안관의 차에 타고 끌려갈 때 자신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데("I have rights.") 이 권리는 동물의 권리를 뜻한다. 모건은 히치하이커 소녀의 죽음에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안관의 권력과 무력(권총)에 억눌려 비상식적인 체포를 당하고 끌려간다. 이는 인간의 육식 때문에 도축장에 억울하게 끌려가는 동물의 처지를 연상시킨다. 모건이 무죄인 것처럼 동물도 죄가 없다. 그들도 지구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인간은 보안관처럼 권력의 정당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앞세워 무고한 동물들을 잡아다 죽인다. 인간에게 동물을 살육할 권리가 있는가. 보안관은 가짜이므로 공권력을 행사할 자격이 없다. 찰리 휴이트 주니어는 실제 보안관(Winston Hoyt)을 죽이고 자기가 진짜처럼 행세하는 가짜 보안관이다. 그가 행사하는 허위의 권위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인간 우위론을 상징하고, 그가 희생자들을 협박할 때 쓰는 권총은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고 도살할 때 쓰는 무기를 상징한다. 동물이 인간보다 물리력이 강한데도 무기 사용 때문에 덤비지 못하듯이, 모건도 보안관보다 젊고 팔팔하지만 권위와 권총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고 잡혀간다. 보안관이 모건을 체포하는 이 시퀀스는 인간이 동물을 도축하는 근거와 그 행위의 정당성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허위스러운지 보여준다.

희생자 젊은 친구들이 시골길을 달리다, 붙잡혀 살인마 가족의 집에 감금되고, 마지막에 에린이 도축장으로 숨어 들어가는 전개는 동물이 야생에서 살다가, 붙잡혀 농장에서 사육되고, 결국 도축장에 끌려가 생을 마감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2. 영원회귀

이 영화의 세계관은 처음과 끝,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되는 회귀적 성격을 띤다. 히치하이커 소녀를 태운 초반 부분과 에린이 히치하이크해 트럭에 탄 후반 부분을 비교하면 서로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에린이 소녀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지만 소녀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 다른 말을 늘어놓는다. 트럭 운전수도 에린에게 이름을 묻지만 에린은 이름을 답하지 않는다. 소녀와 에린 둘 다 차가 살인마 마을 쪽으로 향하는 것을 막는다. 초반과 후반이 이렇게 흡사하게 반복되는 설정은 이야기 구조가 회귀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크로포드 방앗간에서 느닷없이 울린 경적의 정체를 확인하러 주인공 무리가 움직일 때 카메라가 폐차된 차 여러 대를 비추는데 그리고 개중 한 대에서 히치하이커 소녀의 가족 사진이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여러 희생자가 방앗간에 머물다 보안관과 살인마에게 당하는, 비슷한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히치하이커 소녀가 도축장을 보고 운전대를 돌리려고 한 것으로 미루어 그녀가 이야기 후반의 에린처럼 도축장에서 살인마에게 쫓기다 탈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숙명처럼 바뀌지 않고 되풀이된다.

회귀하는 것은 시작과 끝이 한 점에서 만나므로 반복되고 불변한다. 원의 한 점에서 운동을 시작하면 다시 그 점으로 돌아오고 그 경로와 과정은 동일하게 진행된다. 원을 탈출하지 않는 한 그 반복과 불변을 벗어날 길은 없다. 페퍼는 본인이 히치하이크로 주인공 무리에 합류한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고(synchronicity), 마약에 비유하며(L.S.D.), 그것의 우연성을 전제하지만("It's like this shit does not just happen.") 이는 영화의 세계관과 상충하므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회귀적 세계관은 필연인데 그녀의 세계관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우연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운명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신기해한 것이다. 필연의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정해져 있으므로 굳이 운명이라고 표현하지도 않고 신기해할 까닭도 없다.) 그녀는 운동 경로가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인, 그래서 우연성을 상징하는 비눗방울을 날리며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지만 히치하이커 소녀의 자살 때문에 켐퍼가 말 인형을 던지는 장면에서 페퍼의 우연적 세계관은 몰락한다. 말 인형에는 마리화나가 들어 있었는데, 마리화나는 마약으로서 페퍼가 운명을 신기해하며 그것을 비유하기 위해 든 '마약(L.S.D.)'과 동일한 맥락적 의미를 갖는 상징물이다. 이러한 환각제에 운명을 비유한 까닭은 그녀가 그만큼 세상을 우연성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연의 세상에서 운명은 그만큼 놀랍고 환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약이 든 말 인형은 페퍼의 우연적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근거 덩어리였는데, 그것을 켐퍼가 던져 버림으로써 우연성이 반박되고 부정당하게 된 것이다. 또, 재밌는 점은 에린이 켐퍼에게 받은 마리화나 한 개비를 창밖으로 실수인 척 버린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한 까닭은 본인이 영화의 필연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주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그녀는 관객이 보기 답답할 정도로, 죽음을 자초하는 멍청한 짓을 해대는데 이는 영화가 필연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필연이란 공포 영화의 특성상 등장인물이 죽어야 하는 숙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약 에린이 똑똑하고 냉정하게 대처했다면 친구들의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불변하고 반복되는 세계관의 회귀성에 논리적 결함이 생기고 영화가 산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그녀는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회귀성의 논리를 배신하지 않으려고 그런 답답한 선택과 결정을 내리고 실천한 것이다. 필연성을 대변하는 그녀가 우연성을 상징하는 마리화나를 버린 까닭도 그러하다. 켐퍼는 에린이 테킬라도 안 마시고 마리화나도 안 피운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필연성을 지향하는 그녀의 인물 특성상 당연한 것이다. 대신 그녀는 다이아 반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다이아몬드는 단단한 광물로 회귀적 세계관의 불변성과 의미가 비슷하므로 거론된 것이다. 켐퍼가 마약을 사러 멕시코 여행을 간 것이 아님을 그녀가 바라는 이유도 그녀가 우연성을 상징하는 마약과 대립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회귀성을 상징하는 장치는 이 말고 더 있다. 영화 초반에, 히치하이커 소녀를 태우기 전에 에린이 차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노래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Sweet Home Alabama'다. 딱 첫 소절만 노래하는데 가사를 해석하면 (Big wheels keep on turning, carry me home to see my kin) 큰 바퀴가 계속 돌아 나를 집으로 데려가 주라는 뜻이다. 바퀴는 원형으로서 회귀성을 상징한다. 집으로 데려가 주라는 말 또한 귀향적, 순환적, 회귀적 세계관과 연관된다. 히치하이커 소녀가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과 에린이 주유소에 들른 후 차를 탈 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을 생각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원형인 것이 노랫말의 바퀴 말고 또 있다. 바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톱이다. 전기톱의 체인(chain)은 완전한 원은 아니지만 순환한다는 점에서 회귀적 세계관을 상징한다. 살인마의 추격과 살육 그리고 희생자의 도망과 죽음이 전기톱 위에서 돌고 도는 것이다. 에린이 칼로 살인마의 팔을 자른 것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그러한 순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살인마의 팔을 자른 후 그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도망하고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회기적 세계관에 쐐기를 박는 결정타는 차 뒤에 붙어 있는 문구다.

가장 오른쪽에 붉은 글씨로 'SHIT HAPPENS'라고 쓰여 있다. 이 말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라는 뜻이다. 이 불가항력적과 불가피성은 회귀적 세계관의 특성과 동일하다. 페퍼는 자살한 소녀의 시체 때문에 차에 다시 타시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다음 장면에 차 안에서 향수를 뿌리고 있다. 그녀의 우연적 세계관은 이미 폐기되었으므로 필연적 세계관으로 옮겨 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갈등 구조

주인공 무리가 한 축을 이루고(protagonist), 살인마 가족이 다른 축을 이룬다(antagonist). 이 둘은 성질이 다르므로 당연히 반목하고 대립한다. 전자는 히피 청년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이들이 살인마 가족과는 다르게 대등한 입장의 친구 관계로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또 이들이 문제를 다수결로 해결하는 것으로 미루어 사회주의 좌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혈연이 아닌 친구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가족보다 노동자 동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그들은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함께 움직인다. 개인적 선택을 내리고 혼자 행동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모건은 살인마 마을에서 한시바삐 떠날 것을 촉구하지만 그의 개인적 의견은 다수의 의견에 의해 무효화된다. 자살한 소녀의 시체를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서도 개인의 현명한 의견보다 다수의 아둔한 의견이 채택된다. 그들은 한 배(차)를 탄 동지이므로 단독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 차 문 안쪽에 붙어 있는 체 게바라 사진은 그들이 사회주의 좌파를 상징한다는 데 설득력을 더한다.

반면에 살인자 가족은 혈연 집단으로서(영화 설정상 친모, 친자, 친형제는 아니지만) 보다 개인적이고 분업적이고 위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함께 행동하는 주인공 무리와 다르게 각자 행동한다. 영화 후반에 주유소 여사장 루다 매가 보안관 아들의 바지를 다려주는 장면에서 온 식구가 한집에 모이지만(카메라는 그들을 각자 단독 숏으로 잡는다.) 영화 대부분 장면에서 그들은 혼자 행동하고 범죄 행위에서 맡은 역할도 제각각이다. 그들의 분업 효과는 매우 능률적이다. 엄마가 희생자를 대신해 (가짜) 경찰에 신고해주고, 큰아들(보안관)이 희생자를 억류하고, 삼촌이 희생자를 집에 들이고. 작은아들(레더페이스)이 희생자를 도륙한다. 엄마(할머니)의 명령에 따라 여디디야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그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가 어려서 살인마 가족의 범죄 행위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인마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정체성 확립이 덜 되었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가 에린이 도망할 수 있게 도와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엄마의 지시에 따라 식구들이 움직이는 모습은(레더페이스에게 에린을 끌고가라고 하고, 트럭 운전수의 도움 요청을 받고 보안관에게 밖으로 나와 보라고 하고, 헨리에타에게 우비를 갖고 오라고 한다.) 그들이 엄마를 중심으로 한 모가장적씨족(母家長的氏族)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엄마가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경찰에 신고하게 전화 좀 써도 되느냐는 켐퍼의 물음에 10센트를 요구한 것, 차에 소녀의 시체가 있다는 말에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What you do is your own business.") 답한 것에서 그들의 자본주의적 속성, 즉 이기심과 이해타산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혈연, 개인, 분업, 위계, 타산의 특성은 그들이 자본주의 우파를 상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주인공 무리와 살인마 가족의 대립은 표면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죽고 죽임의 범행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싸움이 숨어 있는 것이다.

보안관에게 마리화나 피운 것이 발각되어 바닥에 엎드려 있을 때 주인공들의 출신지가 공개된다. 에린은 콜로라도, 페퍼는 애리조나, 모건은 뉴욕이다. 영화 초반에 에린이 켐퍼와 동거한 지 3년 됐다고 페퍼에게 말하는데, 이를 통해 켐퍼도 애리조나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콜로라도와 애리조나는 영화의 배경인 텍사스와 가까우므로 이해가 가지만, 뉴욕은 너무 멀다. 뉴욕은 생뚱맞다. 모건은 자신이 뉴욕 출신임을 의도적으로 알리고 싶은 듯 뉴욕 글자가 적힌 옷도 입었다. 당연히 여기에도 숨은 의미가 있는데, 텍사스는 공화당 표밭이고 콜로라도와 애리조나는 경합주고 모건이 대표하는 뉴욕은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주다. 영화가 그들의 출신지를 공개한 까닭은 인물 관계에 이러한 정치적 갈등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모건은 뉴욕 민주당이라서 텍사스 공화당인 살인마 마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텍사스 공화당을 상징하는 그 마을과 뉴욕 민주당을 상징하는 모건은 서로 상극이다. 자살한 히치하이커 소녀를 태운 것에 가장 분노하고 가장 반대하는 사람이 모건이고, 시체를 방앗간에 버려 두고 빨리 콘서트 길에 오르자고 재촉하는 사람도, 켐퍼가 사라진 뒤 낌새가 이상함을 알아채고 에린에게 차 키를 요구하는 사람도 모건이다. 에린, 켐퍼, 페퍼가 상징하는 애리조나와 콜로라도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합주이므로 그들은 모건처럼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한다. 시체를 버리고 가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에린과 페퍼는 이타심과 동정심 때문에 보안관이 올 때까지 남아 있자고 주장하고, 켐퍼는 모건처럼 떠나기를 내심 바라지만 여자 친구 에린의 의견을 거절할 수 없어 남아 있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풀밭에서 인간의 이로 만들어진 틀니를 발견한 뒤 페퍼는 떠나는 쪽으로 입장을 변경하고, 전기톱 든 살인마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당한 뒤 에린도 떠나는 쪽으로 입장을 변경한다. 이들의 떠남을 방해하는 인물은 보안관이다. 그는 텍사스 그 마을의 유일한 공권력으로서 공화당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차 안에서 시체 사건을 재연하는 과정에서 그가 모건과 권총을 겨누며 대립하고 유독 그만 체포해서 연행한 이유도 모건이 민주당을 대표하고 자신이 공화당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보안관의 권총을 빼앗아 유일하게 대항한 인물도, 그러므로 모건이다. 에린과 페퍼는 경합주이므로 차 밖에서 한 명은 쏴 죽여라, 다른 한 명은 쏘지 마라고 외칠 뿐이다.

주인공 무리는 히피고 신분은 하층이다. 그들의 행색과 마리화나를 구입하러 멕시코에 간 사연은 그들이 상층이 아님을 증명한다. 에린은 전선을 마찰시켜 차에 시동 거는 방법을 소년원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마약과 소년원은 그들이 정상 궤도에서 이탈했음을 암시한다. 살인마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소외되어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에서 생활한다. 거주하는 집과 운영하는 가게는 낡고 오래돼서 생명력과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엄마 루다 매는 과부고, 삼촌 몬티는 두 다리가 잘려 휠체어에 의존하는 장애인이고, 아들 찰리는 가짜 보안관이고, 아들 토마스는 피부병을 앓는 살인마다. 트레일러하우스에 사는 헨리에타는 마약에 전 듯 눈이 퀭하고 몸이 말랐고 행색이 더럽다. 그래서 그녀가 불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짐작된다. 그녀와 함께 사는 여자(Tea Lady Hewitt)는 비만이다. 이들은 모두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로서, 영화는 살인마 가족이 주인공 무리를 공격하는 과정을 통해 비주류로 전락한 하층끼리의 잔인한 생존 경쟁을 묘사하고 있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권력 혹은 무력이 필수다. 히치하이커 소녀가 자살할 때 사용한 권총이 보안관의 발목에 찬 권총집에 딱 맞는 것을 보면 그녀가 살인마 가족에게서 도망할 때 권총의 힘을 빌렸음을 알 수 있다. 권총이 없었으면 그녀는 분명히 살해당했을 것이다. 모건이 보안관에게 저항할 때도 권총이 사용된다. 안타깝게도 총알이 없어서 힘의 전복은 실패로 귀결된다. 에린이 마지막에 경찰차를 탈취해 보안관을 치고 달아난 것은, 그렇게 해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고 도망에 성공한 것은 그녀가 더 강한 권력(경찰차)을 획득해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음을 뜻한다. 경찰차는 권총(보안관이 차에 치여 쓰러진 상태에서 총을 쏜다.)도 이기고 전기톱(마지막에 살인마가 갑자기 나타나 전기톱을 휘두른다.)도 이긴다.

참고로, 주인공들은 원래 레너드 스키너드의 콘서트에 가는 길이었는데, 중간에 일이 꼬여 결국 죽게 되고 콘서트에 가지 못하는데, 그들이 스키너드 콘서트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권력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레너드 스키너드'라는 밴드 이름은 고등학생 때 머리 긴 학생들을 체벌하기로 악명 높았던 체육 교사 레너드 스키너(Leonard Skinner)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를 조롱하고 그에게 대항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이름이므로 스키너드 콘서트에 가는 것은 저항과 자유를 뜻하고, 가지 못하는 것은 굴복과 억압을 뜻한다. 주인공들은 살인마 마을에서 억류되고 살해돼서 콘서트에 가지 못한다.


4. 표현 기술

자살한 소녀 때문에 깨지고 피범벅이 된 차 뒷유리를 보여줄 때 'THING IS TRUE' 'THING IS PERMITTED'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게 보인다. 대충 해석하면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허용될 수 있다.'라는 뜻이다. 마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은 실화고 영화는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을 주장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문구는 앞이 잘린 것이다. 본래 완전한 문장은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다. 차가 달리는 장면에서 이 완전한 문장이 얼핏 보인다. 감독은 일부러 잘린 문장을 보여준 것이다. 관객에게 영화를 실화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래야 관객이 영화에 더 몰입하고 더 큰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NOTHING IS TRUE'는 진실인 것이 없다, 이 영화가 실화가 아닌 허구라는 의미다. 'EVERYTHING IS PERMITTED'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영화니까 허구를 실화처럼 속이는 것도 허용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전기톱을 든 살인마 레더페이스는 실존했던 살인마 에드 게인과 엘머 웨인 헨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전기톱으로 사람을 살해한 행위는 감독이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깨진 유리 구멍 아래에 붙어 있는 노란색 찡그린 얼굴 스티커는 소녀의 자살을 본 관객과 등장인물의 심정을 대변한다.

주인공들이 탄 차가 도축장을 지날 때 썩은 소머리를 통과하고, 크로포드 방앗간을 지날 때 고물이 된 차를 통과한다. 차가 소머리가 되고 폐차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그들의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그들이 소머리처럼 도살 당할 것이고, 그들이 탄 차는 고장 날 것이라는 의미다.

보안관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를 앙각으로 잡는다. 앙각에 비친 대상은 더 커 보이고 위엄 있어 보인다. 이렇게 대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싶을 때 앙각이 종종 쓰이는데, 보안관의 첫 등장에서 쓰인 그것은 매우 낮은 각도로서 마을의 유일무이한 공권력인 그가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이 정도 각도는 여느 영화에서 보기 힘들다.

자살한 소녀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두 파로 나뉜다. 버리고 가자는 파와 보안관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좋게 마무리하자는 파. 전자에는 남자들이 속하고 후자에는 여자들이 속한다. 그들은 의견 대립 상태다. 따라서 카메라는 그들을 양분해서 각각 단독으로 잡는다. 절대, 대립하는 둘을 함께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다수결 방식으로 대립이 해소됐을 때 그들은 한 장면에 함께 담긴다.

주인공들이 탄 차에는 여러 가지 소품이 있다. 백미러에 매달린 십자가, 소 인형, 여자 인형, 난쟁이 인형, 재떨이. 이것들을 단순한 소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것 하나하나에도 숨은 의미가 있다. 먼저 소 인형은 에린을 상징한다. 그녀가 영화 초반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개구쟁이 악동처럼 머리가 솟은 난쟁이 인형은 모건을 상징한다. 둘의 머리 모양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모건의 성격도 난쟁이 인형의 생김새처럼 악동스러운 면이 있다. 기타를 든 하와이 여자 인형은 페퍼를 상징한다. 옷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위에 속옷처럼 간단한 것만 걸치고 배꼽을 노출한 모습이 비슷하다. 게다가 히치하이커 소녀가 자살할 때 그 피가 여자 인형에 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페퍼도 어깨에 피가 묻어 난리를 피운다. 피가 묻었다는 점에서 둘의 동일성이 유추된다. 재떨이는 켐퍼를 상징한다. 재떨이에 담긴 마리화나가 보안관에게 발각됐을 때 페머와 모건은 자기 것이 아니라며 부정한다. 에린은 영화 초반에 마리화나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므로 그것과 연관성이 없다. 멕시코 여행을 마리화나 구입 목적으로 다녀온 것인지, 그 문제로 다투는 사람은 에린과 켐퍼인데 에린은 마리화나와 무관하므로 켐퍼가 관련이 있고, 그 마리화나가 재떨이에서 발견되었으니 재떨이는 켐퍼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앤디고 남은 물건은 십자가다. 당연히 십자가는 앤디를 상징한다. 앤디는 어느 순간부터 십자가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그것으로 살인마의 전기톱을 막아낸다. 그리고 그가 다리가 잘려 잡힌 후 갈고리에 걸려 지하실에 감금돼 있을 때, 에린이 그를 구하려고 하는 장면에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매달려 있다.

에린은 그를 구출하는 데 실패하고 그는 빨리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에린에게 부탁한다. 에린은 칼로 그의 배를 쑤시고 그의 발밑에서 피범벅이 된 채 울부짖는다. 그 모습은 마리아가 예수 발에 향유 바른 사건을 연상시킨다.

앤디를 상징하는 물건은 하나 더 있다. 모건이 보안관에게 잡혀간 후 에린과 페퍼가 차에 남아 시동을 걸려고 노력하는 장면에서 원래 백미러에 매달려 있던 십자가는 사라지고 나무 인체 인형만 매달려 있는데, 놀랍게도 그 인형의 왼쪽 다리가 앤디처럼 잘려 있다.

이 나무 인형은 영화 초반에 다른 소품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그 장면에서 제대로 등장하는데, 영화 초반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래 인형의 두 다리는 멀쩡하다. 앤디의 다리가 잘린 후 나무 인형의 다리도 잘려 있는 것으로 보아 나무 인형이 앤디를 상징하는 것이 확실함을 알 수 있다.


5. 기타

어쩌면 주유소 여사장이 말한 "What you do is your own business."라는 대사가 감독이 진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일 수도 있다. 에린이 그 말대로 처음부터 오지랖 부리지 않았다면 일행 모두 무탈하게 콘서트에 갔을 것이다. 영화 후반에 트럭을 하치하이크하기 전에 에린이 일반 자가용을 멈춰 세우는데, 운전자는 오지랖 부리지 않고 에린을 그냥 지나쳐 간다.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에 자기 일 아니면 신경 끄고 갈 길 가는 게 현명한 처세술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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