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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Jul 18. 2024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프리퀄이 아니라 그냥 3탄

소리만 나면 달려와서 공격하는 괴물이 있다. 수천수만 미터 밖에서도 기침 소리에 반응해 죽일 듯이 쫓아온다. 아니, 실제로 죽이려고 다가온다. 인간은 그 괴물보다 약하기 때문에 일단 소리 내면 곧 죽는다고 보면 된다. 인류는 이 괴물에 의해 거의 전멸했다. 국가와 사회가 몰락했고 도시와 문명이 파괴됐다. 소수의 생존자들은 남아 있는 시설과 도구를 통해 반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역시 소리가 나면 괴물이 쫓아오기에 말도 하지 않고 걸음 하나도 조심한다. 이미 두 편이나 개봉됐던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이야기다.

이번에 '첫째 날'이라는 제목이 붙어 프리퀄 버전이 세상에 나왔다. 소리에 민감한 그 괴물들이 언제 지구에 나타났고 어떻게 인간 사회를 괴멸했는지 보여주겠다는 심산으로, 시리즈 전체 이야기의 맨 처음이 영화로 개봉된 것이다. 전작 두 편을 봤다면 아니, 한 편이라도 봤다면 이 프리퀄을 기대 안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소리 하나에 발광하는 그 괴물의 정체가 무지무지하게 궁금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것들은 어디에서 온 거야? 어떻게 인류 전체의 병력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첫째 날'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작품이 엄청 기대를 받았던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망했다. 흥행 성적이 안 좋다는 뜻이 아니다. 프리퀄로서 해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전작을 본 관객이 기대했던 것들이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 기존의 두 편과 외형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괴물을 피해 달아나는 두 남녀가 주인공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여정은 전작에 나온 생존자 가족의 고군분투를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 내면 안 되니까 어떻게 하겠는가? 입을 막고 조심히 다닌다. 근데 소리가 한 번이라도 안 나겠는가? 빌런은 어디에나 있지, 더군다나 영화인데. 소리 낸 빌런은 당연히 죽고 그걸 지켜본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조용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뭐, 이런 식으로 전작과 다르지 않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관객이 궁금한 건, 이 영화를 통해 보고 싶었던 건 괴물이 왜 나타났고 어떻게 인간의 병기와 싸워서 이겼는지, 그에 대한 속 시원한 장면인데 그것을 잠깐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생략까지 해버려서 관객은 뒤통수 맞은 얼얼함과 배신감으로 영화 끝날 때까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럼 주인공 두 남녀의 서사가 전작보다 흥미진진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상업적 재미와 긴장이 전작의 절반도 못 된다. 인물 행동에 개연성이 없고 납득 또한 안 된다. 감독의 거창한(?) 주제 의식이 느껴지는데 그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서사의 자연스러움이 많이 손상된 게 보인다. 살기 위해 모두 구조를 받으러 가는데 혼자 피자를 먹으러 반대 방향으로 가다니. 또 그걸 이유 없이 따라가는 로스쿨 남자는 뭔데?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소리 내면 괴물한테 죽는다는 걸 눈치챈, 그래서 야옹 한 번 안 하는(맨 마지막에 딱 한 번 하긴 하지만) 천재 고양이는 영화적 허용이라 이해하자.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 이유는 그래서 당연하다. 프리퀄인데 관객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는 것. 전작과 비슷한 내용이라면 재미도 전작과 같아야 하는데 그건 훨씬 못하다는 것.


영화 처음에 뉴욕 도시의 소음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현재 인류가 사는 도시는 너무 시끄러워서 자신의 내면이나 타인과의 소통에 집중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주인공 사미라는 시한부 인생의 암 환자다. 죽음을 앞둔 인물은 어떤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요긴하다. 공연장에서 본 마리오네트(꼭두각시)는 자유와 주체 의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상징한다. 괴물들이 운석을 타고 지구 상공에서 떨어진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인류가 깨닫고 세상은 침묵과 죽음의 긴장 상태에 놓인다. 맹목적인 생존보다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피자)을 선택하는 사미라. 그녀의 삐쩍 마른 몸과 갈색 비니와 노란 카디건은 구도를 향해 정진하는 수도승을 연상시킨다. 묵언 수행 같은 침묵 속에서 그녀는 화두(피자)에 몰입하고 대다수 사람들과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실존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최전방에 지원한, 즉 자신을 스스로 죽음으로 내몬 비트겐슈타인의 일화도 떠오른다. 로스쿨 샌님 에릭이 사미라의 도반이 된 까닭은 아마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그녀의 결의를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태도는 에릭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깨달음이 없다는 걸 깨닫는 게 깨달음인 것처럼 사미라는 그토록 바라던 피자집에 도착하지만 그 가게는 불타버려서 그녀가 먹을, 남아 있는 피자가 없다. 타인과의 진실한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는 영화적 메시지답게 에릭은 다른 가게에서 피자를 구해 와 사미라와 즐겁게 먹으며 그녀를 위로한다. 하지만 회자정리라고 두 사람은 헤어지고, 스승이 제자에게 인가를 해주듯이 그 증표로 외투(노란 카디건)와 고양이를 사미라는 에릭에게 건네준다. 에릭은 사미라로부터, 죽음과 맞서는 자유의 경험을 체험했으니 그녀의 도를 전수받을 자격이 있다. 홀로 남은 사미라는 피자집에서 어렸을 적 아빠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발견하고 흐믓한 추억에 잠긴다. 이제 그녀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죽고 그 죽음은 또 다른 탄생으로 이어진다. 사미라는 오도송을 상징하는 음악을 듣고 이어폰을 뺀 다음 결연하게 죽음을 선택한다. 무여열반.


좋다. 감독이 말하는 게 뭔지 대충 알겠다. 근데 이 '첫째 날'은 상업 영화 아닌가. 고상한 메시지도 좋지만 상업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다.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대단한 걸 담고 있어도 개똥철학에 불과하다. 대중이 외면할 테니까 말이다.

이 프리퀄은 시한부 인생 사미라와 주체성 없는 에릭을 등장시켜 소통과 연대와 깨달음을 말했으면 안 됐다. 대중이 이 작품에 기대한 건 그런 메시지와, 전작과 다를 바 없는 '괴물 모르게 소리 참기'가 아니다. 괴물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지구에 와서 인류를 몰살했는지, 그것이 이 영화에 가장 바란 것이다. 운석을 탄 괴물이 뉴욕 도시에 떨어졌을 때 사미라는 충격에 의해 기절하는데 그 뒤로 공연장에서 그녀가 깨어나자 한 남성이 그녀의 입을 막으며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한다. 이게 거의 초반 부분인데 관객이 가장 기대했던 것이 사미라의 눈 깜빡임(기절했다가 깨어났으니까) 한 번에 생략되어버렸으니, 증발해버렸으니 아니, 아예 그런 장면은 찍지도 않은 것 같으니 그 뒤로 진행되는 영화 대부분의 이야기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내가 또 소리 안 내는 거 보려고 극장을 찾은 게 아닌데.

내가 감독이었다면 각본 단계에서 사미라와 에릭을 없애버리고 주인공을 인류 전체로 설정한 다음 괴물과 싸우고 그들에 대한 비밀(소리 내면 안 된다는 것,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것 등)을 알아내는 것으로 줄거리 전체를 채웠을 것이다. 소통, 연대, 깨달음 같은 메시지 따위 필요 없다. 프리퀄의 존재 이유는 속 시원한 해명(전작에서 궁금했던 것에 대한)이다. 첫 장면은 아예 괴물들이 자기들의 행성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면 어떨까. 왜 눈이 퇴화하고 귀가 발달했는지를 시원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뉴욕 도시를 보여준 다음 운석 타고 온 괴물들이 지구에서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경찰이 출동하지만 그 정도로는 괴물 한 마리도 당해 내지 못한다. 단 몇 시간 만에 뉴욕이 초토화된다. 결국 군대가 동원되고 대통령이 도시 봉쇄를 위해 다리 폭파를 명령한다. 근데 괴물들이 마천루 옥상까지 올라가 점프해서 헬리콥터에 매달린 다음 그것의 추락과 함께 다른 도시로 퍼져 나간다. 수많은 교전을 통해 괴물들이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아낸다. 커다란 스피커를 이용해 괴물들을 유인한 뒤 그곳에 폭격을 퍼붓자는 계획이 나온다. 뭐, 대충 이렇게 가면 본래 영화보다 훨씬 재밌지 않을까.

아무튼 이 '첫째 날'은 괴물에 맞서 인간들이 초반에 어떻게 싸웠고 소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런 것을 아니, 그런 것만 보여줬어야 했다. 그 점을 놓친 게 이 영화의 패착이다. 주인공이 기절했다 깨어났는데 인류가 어느 정도 괴물에 대처했고 소리 내면 안 된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고? 그걸 보려고 영화관에 간 건데 그걸 그렇게 생략했다고? 이 영화는 망한 프리퀄의 본보기로 남겨 둬야 한다. 다시는 이런 게으른 프리퀄이 나오지 못하게 혹평과 흥행 참패로 박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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