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포스터가 다인 영화
등장인물을 세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페드로와 하이메, 그들의 고용주인 루이스, 악마의 숙주가 된 우리엘, 페드로의 전처 사브리나와 그녀의 새 남편 레오나르도. 이들은 어른 세대다. 성인이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어른'을 기준으로 하여 그보다 위의 세대인 '노인'이 있다. 페드로-하이메 형제의 엄마, 우리엘의 엄마(마리아), 페드로 가족을 하룻밤 묵게 해준 미르타. '어른'의 아래 세대에는 페드로의 아들인 하이르와 산티노, 우리엘의 동생, 교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리니까 '아이'라고 부르겠다. 그러니까 세 연령층이 존재하는 것이다. 노인, 어른, 아이.
이렇게 세대를 구분한 까닭은 영화의 주제가 악의 탄생이 기성세대의 책임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기성세대가 잘해야 신세대가 바르게 큰다. 세상에 악이 퍼지지 않으려면 어른이 잘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 어른들은 그러지 못한다. 악이 불가사의하게 발생해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전염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악은 어른의 비행(동물에게 총을 쏜 행위, 숙주가 된 육체를 소유지 밖으로 무책임하게 버리려고 한 행위, 악에 오염된 소유물(옷)을 집 안에 함부로 들인 행위)이 낳은 결과고 최종적으로 그 결정체는 어른의 몸(우리엘)에서 나온다. 그리고 어른들의 부도덕한 면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악이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아래 세대로 전이된 것으로 비유된다. 페드로는 아들 둘을 데리고 자살하고 싶어 했고 사브리나와 이혼 후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사브리나는 남편이었던 페드로 모르게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 페드로의 동생 하이메는 형수인 사브리나에게 사랑을 고백한 적 있다. 루이스는 언행에서 자기 가진 것에만 관심 있는 악덕 지주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우리엘을 차에 싣고 소유지 밖으로 나갈 때 한 학생을 칠 뻔하는데 그 학생이 다쳤는지에는 별로 관심 없고 적재함에 있던 우리엘이 사라진 것에만 반응한다. '아이'에게 무관심한 '어른'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아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어른'이고 그 두 세대가 충돌할 것임을 나타내는 복선이기도 하다. 악을 전염시킨 게 사실 '어른'이지만 그들은 진짜로 악에 물든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공권력인 경찰이 우리엘에 대한 사건을 묵살한 것도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요소다. 노인 세대의 정의였던 교회는 현대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우리엘의 몸뚱이를 보고 페드로가 마리아에게 한 말) 어른 세대의 정의인 정부 권력은 부패해서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 '노인'은 힘을 잃었고 '어른'은 힘을 남용하니까 '아이'는 악에 물들 수밖에 없다.
차와 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은 그것으로 악을 깨우고(동물에게 총을 쏜 것) 그것으로 서로를 죽인다(레오나르도가 차로 사브리나를 치고, 하이메도 그녀를 차로 친다.). '노인'의 무기는 퇴마사(청소부)가 쓰는, 유물 같은 건데 페드로와 하이메는 숲 속에서 그걸 처음 발견했을 때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한다. 이건 '노인' 세대의 영적 정신과 전통이 후대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페드로의 엄마는 손자에게 악을 피하는 일곱 가지 규칙을 알려주고, 마리아는 기도(교회)를 통해 아들을 고치려고 했었고, 미르타는 과거에 퇴마사로 활동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 아래 세대인 '어른' 중에 그런 지식과 기술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차와 총으로 세상을 살았지만 부모 세대의 정신을 계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에 대항하지 못하고, 그런 정신 세계에 대한 결여 탓에 자식들에게 악을 물려주는 장본인이 된다. 가장 원시적인 무기인 도끼로 '어른'과 '노인'이 살해되는 장면은 악의 초자연적 우월성을 보여주면서 차와 총의 기술성과 과학성이 세상의 만능이 아님을 드러낸다. '아이' 세대에 속하는 우리엘의 동생은 하이메에게 권총을 압수당하지만 악의 초자연적 힘으로 퇴마사와 자신의 엄마를 죽였음을 고백하고 페드로의 엄마 또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예언한다. '어른' 세대의 총이 없어도 악은 당연히 승리하는 것이다.
악의 창궐에 혼란스러워진 세상에서 페드로와 하이메는 전직 퇴마사였던 미르타의 집을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거기에 의탁한다. 미르타는 돈이 많고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것 같다. '어른'이 차와 총으로 안 되니까 자기 부모 세대인 '노인'에게 의지한 건데 미르타는 악에 물든 아이들에게 결국 죽임 당하고 그녀 집에 머무른 페드로의 엄마도 끔찍한 운명을 맞는다. '노인'마저 사라진 곳에서 페드로는 희망을 잃고 마지막에 절규한다. 지워지지 않는 이마의 핏자국, 그 줄무늬는 마지막 생존자인 페드로가 악에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스트라이프는 예부터 악마의 상징이다.
자, 영화의 기본적 해석이 끝났다. 현 세대의 부정이 악을 탄생시킨 주범이고 그것이 후대에 전달된다는 메시지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마치 현대의 불가해한 사이코 범죄에 대항하지 못하는 늙은 보안관의 무기력함을 다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비슷한 맥락이 있지만 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큼 훌륭한 영화가 아니다. 아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정도로 만듦새가 떨어진다. 제3 세계 영화답게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고(할리우드 영화처럼 관객에게 쉽고 재밌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소리), 컷 사이의 편집에 튀는 부분이 있고(이런 허술함은 관객의 흥미와 집중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제일 거슬렸던 건 초반에 영화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데 감정의 폭발과 함께 스페인어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그쪽 사람들의 정서였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왜 화를 내는 거지? 저게 저렇게 흥분할 일인가? 관객인 나는 스크린 안의 세계에 공감하기 힘들었다(영화 초반에).
영화의 주제도 필자가 굳이 글을 쓰기 위해 분석해 놓은 거지 영화가 그 주제를 세련되게 표현한 것도 아니고 그런 메시지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영화 자체가 재미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다. 상업 영화는 일단 재밌어야 한다. 개중 공포 영화는 무서워야 한다. 재밌고 무서운 게 전제되어야 주제나 의도가 유의미해진다.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 살벌한 공포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확률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