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은 일을 그만 두고 한동안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헨리의 출근을 도왔고 낮 동안은 그 동안 읽고 싶었던 만화책과 소설...보고싶었던 영화등을 보면서 지냈다. 늦은 저녁 헨리가 돌아올 때쯤 어설픈 저녁을 준비했지만 그것도 일주일에 3번씩 와 주시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놓은 밑반찬과 국등을 꺼내놓은일이 다였다.
같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 맥주를 마시거나
집근처 그들의 아지트가 된 다른 지영이 일하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 하는것이 전부였다
"나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공부?"
"네...대학원에 갈까 생각중인데.."
"그래..그럼..학비는 걱정 말고.."
"참나..나 학비 벌어둔거 있어요..퇴직금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조금 더 신세 좀 질께요..우선 1년정도 학비는 있는데..시험도 봐야하고 준비도 해야해서..당분간은 취직은 힘들것..같아요"
"어차피 결혼하고 하면.."
"이보세요..헨리 싸장님? 싸장님이라고 지금 자랑하시는거예요? 결혼은 결혼이고..그리고 프로포즈도 안했잖아요..다이아반지..무릎 꿇고 뭐 그런거 없어요?"
"그런걸 원하나?"
"음..아니요..그런거 하면 손발이 오그라들것같아요..하지만
난 아직 결혼생각이 없어요..나중에 혹시 다시 결혼이란게 하고 싶어지면 그때 헨리한테 말할테니.. 이야기 다시 해주세요.."
지영이의 대답이 내심 서운한 헨리다
"그래..강요는 안해..지금 같이 있는게 중요한거니깐..
하지만 난 가족이 갖고 싶어..그리고 그 가족은 너와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어.."
"........"
"왜?"
자신을 바라보는 지영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주 멋있는 프로포즈 였어요...네.. 꼭 함께 만들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그래"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영은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으악..평생 영어 공부 다신 안해도 되는지 알았는데
아니..대학원에 들어가는데 영어점수가 왜 필요한걸까요?"
지영이 투덜거리는 소리에 헨리가 슬쩍 옆으로 다가와
두꺼운 영어책을 본다.
"The federal government on Tuesday ordered Citibank to pay $700 million to customers it said had been overcharged by bank"
"우와..지금 이거....다시 읽어봐요.."
막힘 없이 긴 영어문장을 읽는 헨리가 신기한 지영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때 헨리는 불어로 된 원서를 읽고 있었다. 헨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하는 지영이다.
거실 바닥에 누워 책을 보던 지영이 갑자기 일어나 쇼파에 앉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지영입니다. 나이는 28살이고
부모님은 제가 고등학교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한살많은 오빠가 함께 지냈고..현재 오빠는 일본에 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들어놓은신 보험과 약간의 유산으로 힘들게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전공은 언론학이였고..얼마전까지 굴지의 대기업에서.. 근무했고..또..뭐있져?"
"뭐하는거야?"
"통성명..호구조사..저는 헨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하하하..그래서 지금 ..그러는거야?"
"네..헨리는요?"
"헨리 hen lee 나이 38살..바람과 친구인 이상한 여자를 만나 서른평생 단 한번도 해본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
이보다 더 근사한 통성명이 있을까 싶은 지영이다
"아..나 이런 사랑 정말 받아도 되는건가요?"
"별거다..정말"
지영의 환한 미소를 영원히 눈에 담아 두고 싶은 헨리다
"근데 38살이였어요? 난 더 젊을꺼라고 생각했어요..
중후한 나이네..그리고 이름이 hen ..성이 lee 였구나.."
".............."
말이 없는 헨리
아직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음을 느낀 지영이다
"제 소개도 다시 할께요..지영. 나이 28살. 이제야 진짜 사랑을 만나 너무나 행복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