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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사랑하는 작가
May 22. 2024
아버지!
지온 / 김인희
아버지!
휴대전화 단체 대화방 여기저기에서 꽃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노란 산수유 꽃을 전해주더니 오늘은 산비탈에 분홍색 웃음을 터뜨린 진달래꽃을 전해줍니다. 저는 어제 퇴근하면서 궁남지를 산책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통로를 모색하던 중 퇴근길에 궁남지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업무 때문에 책상에 붙어있고 가정에서도 강의준비 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작년에 논문을 쓰는 내내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지천명을 넘긴 여식이 올올이 맺힌 한(恨)을 풀어헤치는 과정을 지켜보셨을까요? 논문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하늘을 우러러 뜨거운 눈물을 흘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버지, 당신이었습니다. 두 눈에 가득 그리움이 고였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상고 진학을 권했습니다. 당신은 둘째 아들이었으나 큰아버지께서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기에 큰아들 역할을 하였습니다. 천수답 몇 마지기와 산비탈 밭이 재산의 전부였으나 자식 육 남매와 큰댁에 계신 할머니와 큰어머니, 그리고 사촌들도 당신께서 돌봐야 했습니다. 그때 당신의 눈에는 공부 잘하는 똘똘한 여식보다 줄줄이 보살펴야 하는 가족들이 우선이었습니다.
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주신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당부를 화인(火印)처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서울 빌딩숲에서 경리로 근무하던 스무 살 시절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두 자녀를 양육할 때는 더욱 간절하게 책을 끌어안고 지냈습니다. 그 세월이 빛나는 나이테를 굵게 형성하였고 하늘을 향하여 사닥다리를 오르고 또 올라 별의 경지에 도착했습니다.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베트남 어학원에서 한국어 교수로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베트남으로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한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한국에서나 한국어 열풍이 뜨겁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베트남 어학원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제 강의에 대해서 수강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수강생들이 제 강의가 재미있고 친절하게 가르친다고 한답니다.
아버지, 저는 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순간도 문학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시(詩)를 쓰고, 수필(隨筆)을 쓰고, 칼럼을 쓸 때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요즘은 교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교수님께 교재를 집필하라는 하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율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을 많이 생각합니다.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꽃 화(花), 모양 양(樣), 연 년(年), 빛날 화(華)로 구성된 말입니다. 이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우리 삶에서 꽃과 같이 아름다운 청춘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요? 제게 있어서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지금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언제였습니까!
당신의 어깨에 매달리던 1남 5녀의 무게가 가쁜 했던 시절, 대처로 나가자고 조르던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던 그 시절이었을까요? 허리가 휘도록 일하면서 장학생 아들의 학비 뒷바라지를 할 때가 당신의 화양연화였을까요? 농번기에는 산비탈 밭과 천수답에서 허리 펼 날 없었던 당신. 흰 눈이 대지를 뒤덮은 겨울철에는 사랑방에 가득 볏짚을 쌓아놓고 새끼 꼬고, 삼태기를 짜고 멍석을 만들던 그때가 당신의 화양연화였을까요?
아버지, 제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당신은 가뭄이 계속될 때 먼지 날리는 천수답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이웃들의 부탁을 거절치 않았습니다. 법 없이 살 양반! 이웃마을에서 부르던 당신의 수식어였습니다. 마을버스가 들어올 수 있게 평생 일군 문전옥답을 내어주고 버스가 왕래할 수 있도록 길을 넓혔습니다. 논 하나는 통째로 버스정류장으로 내어주었습니다. 그때 속상해하는 저희들에게 “자식들 앞날이 잘 되라고 적덕했느니라. 마을에서 평생 잘 살았으니 아깝지 않느니라.”라고 웃으면서 말했지요.
아버지!
아버지의 유전자가 제게 흐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았던 삶의 모든 순간이 교훈이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살겠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하고 착하게 지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주고 또 주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다음 주가 아버지 기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이다음에 아버지가 떠났을 때 기일에 만나서 울지 마라. 좋았던 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웃다가 가거라.”라고 했던 말씀대로 저희들은 산소에서 만나서 웃다가 옵니다. 다음 주에도 당신의 산소에서 청개구리 같은 저희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하겠네요. 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