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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타명리 Jul 06. 2024

취약점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만이 진정으로 연결된다

취약 사주 상호 보완 원리와 상성 with 취약성의 힘, 브린 브라운




현대인은 지구 반대편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다. 언뜻, 언제든 원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바로 알 수 있는 현대는 과거보다 인간을 더 가깝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인의 대인 관계는 SNS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언제라도 끊어낼 수 있는 안전한 친목을 나누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참상들을 지켜보며 무기력하게 공감버튼을 누를 뿐이다.



수많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친구들이 있지만 전화를 걸어 불러 내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는 드물며,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은 점점 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 현대인은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음에도 인류 역사 상 가장 단절되어 외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정보를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장 비주체적인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외로운 현대인에게 타인과의 연결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모두가 실시간으로 일상을 전시하는 SNS는 초연결사회의 상징물이다. SNS 친구들과의 친밀감은 진정한 연결이 아니다. 사진과 글로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평가받는 공간은 과시적 성향이 안착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인정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고 서로 공감버튼을 나눠 갖는 공간에서의 연결은 거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SNS에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것은 건강한 인정욕구이다. 그러나 SNS는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이상적인 나"를 부정적으로 강화한다. 모두가 이상적인 나를 경쟁하듯 업로드하면 할수록, (모두가 이상적인 외모, 이상적인 놀거리, 이상적이고 완벽한 논리를 추종하면 할수록)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실제의 나는 그만큼 소외된다. 업로드하는 이상화된(과장된) 나의 모습이 완벽을 향해 나아갈수록, 실제 나와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지는 이치이다.



“그 경기장으로 가서 여러분이 문에 손을 갖다 대었을 때, 그리고 "나는 들어간다. 나는 이를 시도해 볼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수치심은 "어, 잠깐만. 넌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괴물입니다. (중략) 만약 우리가 그것을 조용히 시키고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가 "이것을 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는 비평가들을 올려다보면 99%의 경우 누구이던가요? 우리 자신. 수치심은 두 굴레를 사용합니다- "자격미달" 그리고, 만약에 첫 번째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당신이 뭔데?" 말입니다. 수치심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것이 죄책감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수치심은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죄책감은 행위에 맞춰줘 있죠. 수치심은 "난 나빠"입니다. 죄책감은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했어"입니다. 여러분 중 몇 명이나, 만약 제게 상처를 준후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라고 말할 용의가 있으십니까? 여러분 중 몇이나 이 말을 하시겠습니까? 죄책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수치심: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입니다.'

(브린 브라운 TED 강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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