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와 편견 & 사주는 없다 서평 완결 편
내 사주를 산출하는 기준값(표준값)에 해당하는 만세력은 지구의 공전궤도(월지)와 자전 궤도(시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산출 값을 반영한 달력입니다. 출생 연월일시를 구분하여 60 간지 글자들이 규칙대로 입력됩니다. 또한 60 간지를 구성하는 글자들은 서로 간의 명확한 생극(生剋) 관계로 구분됩니다. 천간 10글자는 자신(일간)을 기준으로 6번째 글자와 합(合)하고, 7번째 글자와는 극(剋)하거나 충(冲)합니다. 지지 12글자는 왕지(자오묘유)를 중심으로 합(合)하고, 방위상 정반대 방향(자와 오, 묘와유 등)의 글자와 충(沖)합니다. 나의 출생시기에 따라 절대적이며 고정적인 산출값이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학문적 특질은 이과적 특성에 해당합니다.
반면, 60 간지를 구성하는 각각의 글자들은 각자 은유적이며 추상적인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적천수에서 갑목을 설명하는 '甲木斬天 脫胎要火(갑목참천 탈태요화)'라는 구절은 마치 시(詩)와 같아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갑목 일간은 하늘을 찢을 듯 성장하려는 진취적 기질이다. 성장을 위해서는(사주에) 화(火)를 필요로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혹은 '갑목(식물)이 성장하려면 태양빛을 통한 광합성이 필수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60 간지를 구성하는 글자 외에도, 일간을 기준으로 생극관계에 따라 구분한 십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일간이 생(生)하는 '식신(食神)'은 '호기심과 창의성이 넘치는 기질', 혹은 '미식을 즐기며 생래적 쾌락을 추구하는 기질'등과 같이 다양하게 해석되거나 묘사됩니다. 사주를 구성하는 각 글자의 특성을 은유하거나 추상화(묘사)하는 부분은 다양한 해석과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과적 특성에 해당합니다.
이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체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음과 모음, 예를 들어, 'ㄱ, ㅗ, ㅇ, ㅑ, ㅇ, ㅇ, ㅣ'라는 음절의 조합을 '고양이'라고 쓰고 읽는 것은 명확한 규칙과 결괏값이 있는 이과적 영역입니다. 반면, '고양이'를 '따뜻한 오후 햇살을 쬐며 나른한 표정으로 졸고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라 묘사하는 것은 문과적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고양이'라는 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것 만으로 실제 고양이를 잘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따뜻한 오후 햇살을 쬐며 나른한 표정으로 졸고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설명(묘사)을 읽어봤다고 해서 '고양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요? ‘고양이'라는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것과 고양이라는 동물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양이'에 대한 설명(묘사)을 읽었다고 해서 실제 '고양이'를 잘 이해했다고 또한 할 수는 없습니다. '고양이'라는 문자는 실제 고양이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또한, 실제 고양이와 가까이 지내본 경험 없이, 고양이에 대한 설명(묘사)을 읽는다고 해서, 고양이를 잘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사주 명리학의 이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주라는 도식표의 산출 원리(이과적 특성)를 알거나, 혹은 오행과 십신에 대한 추상적 설명(문과적 특성)을 읽었다고 해서 사주 명리학을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주 명리학 이론을 공부하는 것’과 ‘그 사주에 해당하는 명주를 실제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주라는 도식표는 ‘인간의 기질과 경향성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 일뿐입니다.
만약,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를 근거가 없다고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고양이에게 '고양이'라는 문자를 부여한 옛날 사람의 의도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또한, '사주가 같은데 왜 다른 삶을 사는가?'라는 질문은 '고양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왜 모든 고양이들의 특성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사주 명리학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와 같은 의문들은 사주 명리학의 이과적 특성만을 고려하여 마치 수학과 같이 정확한 산출값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주는 '고양이라는 종(種)의 유사성'을 구분한 도식(圖式)이지 '모든 고양이는 일심동체(一心同體)이자 운명 공동체'임을 규정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하는 사안은 '사주 명리학의 근거' 혹은 '운명론의 여부'가 아닙니다. (이보다는 어떠한 사주 이론을 공부하고, 그렇게 공부한 이론을 어떻게 실제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깊이 고려해야 하는 사안은 ‘인간은 도식표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공식’이 아니며, 명리학은 나와 타인의 고유한 특질과 기질을 이해하고, 각기 다른 인간의 기질로 인하여 발생하는 대인관계의 역학(도식)을 활용하여 궁극적인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사주명리학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 기반합니다. 세상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음양오행의 순환 원리에 세상의 일부인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상이 명리학의 근본 사상입니다. (따라서 내 사주 여덟 글자는 세상(자연)이 나에게 부여한 온전한 내 것(나의 기질)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타인은 그 사람에게 부여된 사주 여덟 글자, 즉 그 사람의 몫이 있는 것이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사주의 십신, 혹은 특정 위치를 육친의 성(星), 혹은 자리(宮)로 규정하여 부모, 배우자, 자식 등의 운명을 분석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모친에 해당하는 십신(인성)이나 자리(연지, 월지)의 상황이나 운과의 상호작용(합, 충, 형)등을 살펴, 어머니의 운명을 예측합니다. 이러한 이론을 접할 때마다 저에게 드는 가장 큰 의문은 '과연 내 사주와 주변 육친들 사주가 모두 끈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가능할까?'였습니다. 만약 내 사주의 인성(어머니 星) 혹은 연지(어머니 宮)가 형이나 충을 당해 어머니가 사고나 중병에 걸리셨다면, 내 형제들 사주에도 인성(어머니 星)에, 아버지 사주에는 재성(아내의 星)에, 외할머니의 사주에는 식상(자식의 星)에 동일한 현상이 동시간에 발생해야 합니다. 주변 가족 사주를 살펴보시면, 특정 사건에 부합하는 사주적 특징이 가족 구성원들의 사주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사주만으로 타인에게 발생하는 사건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집중해야 하는 것은 본질에 해당하는 오행과 십신입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오행(십간)과 십신이므로, 대부분 이것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명리학을 수년간 공부하신 분들은 '식상'과 '인성'의 개념을 외운 바대로 잘 말씀하지만, 왜 인성이 식상을 극(剋)하는지에 대해 선뜻 답하지 못합니다. 또한, 목(木)과 금(金)의 특징은 책에 쓰인 대로 잘 말씀하지만, 목 식상과 금 식상의 차이점, 혹은 사주에 목이 3개이고 금이 1개일 때 나타나는 특징은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고양이'라는 문자를 읽을 수 있고 '고양이'에 대한 설명(묘사)까지 외웠지만, 고양이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실제 고양이를 보거나 만져 본 적은 없는 것과 같지요. 명리학은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고양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듯이, 명리학의 관심은 인간으로 향해야 합니다. 사주라는 도식표는 해당 명주의 타고난 기질을 파악하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입니다. 역술가들이 존경하는 故박재완 선생님, 故박재현 선생님께서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대단한 비법(관법, 공식)을 알고 있었던 분들이 아니라, 수많은 내담객을 상담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분들일 것입니다. 만약 비법이 있었다면, 분명 돌아가시기 전 후학들에게 그 비법들을 남기셨겠지요. 관성(官星)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성이 없는 사람들과 관성이 발달한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하는 경향성의 차이를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매우 유용한 기준점이 됩니다. 내가 관성이 없다면 나와 관성이 발달한 사람의 차이를, 내가 인성이 발달했다면 나와 인성이 없는 사람의 차이를 관찰하고 분석해 보면 관성과 인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본인의 판단 및 이론(원리)의 당위성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이를 강화하는 사례만을 수집하는 확증편향(確證偏向)에 빠지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은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므로, 자신의 확증 편향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주별로 나타나는 기질적 특성, 구체적 길흉의 사례에 대한 확률적(상관성)이고 객관적인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역술가 개인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확률적 통계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만, 기술적 진보를 이룬 현대에는 이러한 통계 데이터 구축이 가능합니다. 다수의 역술가들이 본인의 상담 자료를 공유하거나, 인터넷(앱)을 활용한 설문 조사 등을 통하여 개인이 수집할 수 없었던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인터넷, 혹은 앱 사용자의 사주를 분석하여 '군겁쟁재 사주'를 선별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이 '비견, 겁재 대운'을 맞이하는 시기도 판단 가능합니다. 따라서 사주에 군겁쟁재 특성을 지닌 분들이 비겁 운에 이혼이나 사업실패 등의 흉사를 겪었는지 여부를 설문하여 실제 비율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구축되면, 현업 역술가분들이 '사주적 특징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을 조사할 것을 요청하고, 실제로 그러한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여 결과치 공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그동안 속설(俗說)로 취급받아온 사주가 이론(理論)으로 정립되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가 개발한 휴먼랩 만세력은 원국의 8글자의 순환과 상생의 여부를 총괄적으로 점검하여 고립, 취약한 글자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군겁쟁재', '편인도식'과 같은 사주의 특징을 판단합니다. '군겁쟁재'는 '재성 취약(고립)'과 '비겁 다수(50% 이상)'라는 2개의 조건값을, '편인도식'은 '식신취약(고립)'과 '편인다수(40% 이상)'라는 2개의 조건값을 모두 충족하는 사주를 프로그램이 분석하여 찾아내는 원리입니다. 2개의 조건값을 충족하는 대상자(회원)에 '군겁쟁재'와 '편인도식'에 해당하는 기질과 발생한 실제 사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설문 결과를 데이터에 저장합니다. 설문조사는 문항 중에서 긍정률이 낮은 문항(30% 이하)은 삭제하고, 회원분들이 직접 입력하신 특이사항을 설문조사의 추가 질문으로 구성하여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설문으로 구축된 통계자료는 향후 현업 역술가, 상담업 종사자, 한의학계와 협업한 이론 정립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중과 공유할 예정입니다.
현세대는 MBTI에 열광합니다. MBTI는 검사 대상자에 직접 질문하고 답변을 취합하여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결과치를 검사 당사자에게 제시합니다. 지인(친구)을 실망시킬 수 있는 민감한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할지, 아니면 말을 아낄지를 질문하고, 대답에 따라 T(사고형)와 F(감정형)으로 구분하는 방식이지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나'이므로 MBTI검사 결과는 '내가 나라고 믿는 나'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내는 감정적인 분(F)이지만, 평소 자신이 사고형(T)라고 굳게 믿고 계십니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질'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반면, 사주로 판단하는 '나의 기질과 성격'은 '타인이 생각(판단)하는 나'에 가깝습니다. 부부 혹은 연인을 상담할 때, 내담자의 배우자(연인) 사주로 판단한 기질과 경향성을 내담자에게 이야기하면 거의 대부분 "맞아요!"라며 격하게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주로 판단한 내담자 본인의 기질과 경향성에는 "제가 그런가요?" 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는 사주로 판단하는 기질적 특성이 '내가 생각하는 타인', 즉 '타인이 생각하는 나'를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MBTI검사결과(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주분석결과(타인이 생각하는 나) 중에서 무엇이 실제 나의 기질과 성격에 가까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나이고 싶은 나'와 거리가 가깝고,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나이고 싶은 나'와 거리가 멀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주 명리학은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기질'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기질적 치우침의 정도(신약, 신강, 비겁다, 관성다)와 기질적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이를 억부 용신이라 합니다. 또한, 대운을 통하여 나의 기질적 균형을 이루기에 최적화된 시기를 알려 줍니다. 나에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흉사(부정적 사건)는 운(외부작용)이 나빠서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나의 치우쳐진 기질이 외부와 작용하며 나타나는 부정적 경향성이 원인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부정적 상성을 가진 연애 상대를 만나 상처를 받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나의 기질이 부정적 상성을 가진 상대에게만 끌리는 경향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타인과 관계하는 나의 경향성을 바꿀 것인가'일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계속 어긋나는 이유는 나의 경향성을 이해하고 바꾸려 하기보다는 상대의 기질을 바꾸려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나의 경향성을 바꾸는 노력은 가능해도, 타인의 기질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나의 경향성을 바꾸는 일도 엄청난 결단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명리학 공부의 최대 장점은 내담자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성을 알아차리고 이를 바꿀 수 있는 의지와 동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용신운을 맞이한 내담자들은 치우친 경향성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습관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매우 자신감 있게 수용하고 강력한 실천의지를 내비칩니다. 또한, 기신운을 맞이한 내담자들은 기신운 기간 동안 부정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주의사항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이처럼 명리학은 기간과 시기를 특정(대운의 활용)하여 내담자의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용신운(외부)이 어떠한 원리로 실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해당명주에게 처해진 상황이 개선되는 것인지, 혹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인지는 증명할 수 없으며, 용신운의 영향력에 대하여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용신대운(10년 단위)을 맞이한 사람들은 삶의 태도와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이 점진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신의학에서는 인지치료에 해당한다. 내 생각 중에 잘못된 부분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명리학에서는 운의 흐름을 통해 내 삶의 윤곽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십 년간 노력했는데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진 다 빠져버린 그에게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에 어떻게든 현재의 위치에서 도약할 방법을 찾아보라"라고 한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차라리 "몇 년 후에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희망을 주면 오히려 견딜 힘을 찾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존적인 노력, 그것이 '점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명리심리학' P49, 양창순
양창순 박사님은 과학의 영역에 소속된 분이지만, 수많은 내담자를 진찰하시며 사람을 뇌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약물(정신과약)만으로 치료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이해한 분입니다. 뇌의 호르몬 분비에 작용하는 약물은 그 사람의 특정 행동을 제한할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을 스스로 노력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양창순 박사님은 이과적(과학적) 사유를 하시는 의사이지만, 정신과를 내원한 수많은 환자들을 접하며 인간을 이해하시고 문과적 사유의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과학(이과)의 영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문과적 사유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비단 양창순 박사님 뿐만이 아닙니다.
양자물리학의 태두인 닐스 보어도 “참의 반대말은 거짓이다. 하지만 심오한 진리의 반대말은 또 다른 심오한 진리일지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보어는 '대립적인 것은 상호보완적이다(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문구를 태극문양과 함께 가족문장에 새겨 넣었습니다. 아인슈타인 또한 노년에 불교에 심취합니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세상(우주)이 신(神)이 부여한 법칙에 따라 마치 거대한 기계처럼 정교하게 돌아가는 역학적(수학적) 체계라는 믿음과, 뉴턴의 고전역학을 통해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기본적인 고체 입자, 물리 현상의 엄격한 인과성(因果性) 및 자연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무너뜨린 과학자들입니다. '인간은 세상(우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명리학의 천인합일 사상'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구조적으로 상호 의존 관계, 상의 상관관계 아래에서 생성, 소멸, 존재한다는 불교의 연기(緣起)', '우리를 포함한 우주는 어떤 식으로든 얽힌 관계일 것이라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Non-locality principle)'는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측면에서 궤를 같이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그른 것이 아닙니다. 한쪽 눈을 가린 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고의 균형을 위해 양쪽 눈을 모두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한쪽 눈으로만 바라 (과학적 사고에만 지나치게 의존했던) 봤던 시간보다 좀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명리학 공부가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치우쳐 있던 현대인의 시선에 균형을 돕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