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나는 겨우 내가 되었구나."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게 메시지를 보낸 친구는 내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기 때문이다. 왜 그가 이런 말을 내게 했는지, 그는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고민 없이 답하는 건 저 메시지를 보낸 그의 심정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우선 저 메시지가 긍정의 의미인지 부정의 의미인지 알아야 했다. 답은 간단했다. 그가 보낸 이전의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잘 짓지 못했구나"
과학계가 아닌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잘하지 못 했다는 말은 부정의 의미로 주로 쓰인다. 그러니까 그의 저 메시지는 부정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부정의 메시지를 내게 왜 전한 것일까.
부정적인 상태가 된 것을 위로해 달란 것인지, 부정적인 상황을 해결해 달란 것인지,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와달란 것인지, 그저 상황을 설명한 것인지.
그는 감성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상황에 낙담했으나 나의 위로가 상황을 해결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무지성의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내게서 위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나를 동등한 선상의 존재로 대한다. 서로에게 빚을 지지도 서로에게 의존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동등한 입장을 원한다. 그러니 그는 지금 내게 자신의 상황을 내가 해결해 주길 바란 것도 아니다.
그는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미 생각해 봤을 것이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수준의 도움은 이미 시도해 봤을 것이다. 그는 내게 도움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는 내게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그저 설명한 것이다.
조금 더 일상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그저 털어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국어적 맥락에 의해
"그렇구나"
가 가장 적절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그렇구나"라고 답장을 보낼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고민을 시작한 이유는 그는 내게 소중한 존재고 그렇기에 그를 최대한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저 대답은 그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말과 같다.
결국 궁극의 배려는 무심과 같다. 어느 드라마 속 대사와 같이,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던 것이다.
"그렇구나."라고 보낼 수 없기에 나는 다른 대답을 찾아야 한다.
"사랑하는 친구야. 나는 너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고 너의 심정도 충분히 전달받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너를 생각하고 있다."
라는 말을 그가 자신의 한숨으로 써내려갔을 이야기를 짧은 한 문장, "나는 겨우 내가 되었구나."에 담아 보냈듯, 나 또한 그렇게 보내주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사고의 경계선에서 찾은 나의 답은 이렇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