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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산복숭아 차를 마시며

불행을 견디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며칠 전부터 저 산복숭아(개복숭아)를 건져야지, 건져야지 하면서 벌써 며날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직사각형 기둥처럼 생긴 담금 유리병에는 ‘2016년 8월 14일’이라고 적힌 견출지가 붙어 있다. 6개월 전에 내가 붙여 둔 것이다.


  작년 여름, 그 뜨겁던 여름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베트남 여자와 결혼한 남자다. 오년 만이다. 그가 누구 소개로 내게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처음 내 사무실을 방문한건 팔 년 전이다. 그때 이미 스물다섯 살이나 어린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해서 아들 ‘우주’를 낳았을 때다. 나는 그를 ‘우주아빠’라 부른다.


  우주아빠는 지적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체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을 조금 더듬었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했고, 요점정리가 안 되는 말을 장황하게 하는 편이었다. 앞 머리카락이 빨리 빠져 오십의 나이 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기는 해도 나는 그 사람이 착하고,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보았다. 현재는 노모가 물려준 땅에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는 파주에 땅이 많았다. 그는 사기를 당해 땅을 좀 날리기도 했다.  


  그가 내게 왔을 때는 우주가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내게 상담하러 온 이유는 자기 아내와 백년해로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우주엄마 두 번 시집가는 사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여러 번 얘기를 했다. 왜 그 질문을 자꾸 하느냐고 묻자, 우주 엄마가 공장에 가서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주아빠는 우주엄마가 공장에 일하러 가면 분명 자신과 우주를 버리고 도망할거라는 것이다. 내가 사주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그럴 여자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근데 왜 아직 돌도 안 지난 아들을 버려두고 공장에 일하러 갈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친정에 돈을 보내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우주아빠가 좀 도와주면 안 되느냐고 하니, 지금은 현금이 없고 땅을 내놓았다고 했다. 그럼 땅이 팔리면 우주엄마 친정을 도와주라고 했다. 그러면 우주엄마가 공장에 일하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을 거 아니냐고 말해 주었다. 우주아빠는 횡설수설을 했다. 결혼할 때 돈을 주었다고 했다. 그래도 여유가 되면 한 번 더 도와주라고 했다. 


  - 네네, 선생님 말씀대로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주아빠는 몇 번이고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갔다.


  모든 선택은 질문자가 하는 거고, 나는 거저 사주를 보고 어드바이스만 해 줄 뿐이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몹시 불안했다. 그러고도 삼년은 더 내게 신수를 보러 다녔다. 어느 날 5년 치 신수를 ‘간명지(看命紙)’에 풀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는 잊을 만하면 전화를 해서 요점정리하기 몹시 어려운, 장황한 말을 한 시간 가량이나 하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늘 덕담을 했다. 


  - 우주아빠는 덕을 많이 쌓아서 우주가 아주 훌륭하게 될 겁니다.

  나는 그 말을 열 번이고 백번이고 해 주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싶으면 전화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베트남 커피를 두 봉지나 들고 찾아왔다. 

  - 어머나 제가 베트남커피를 좋아하는지 어찌 아시고... 한 봉지만 주셔도 되는데요.

  -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땅을 팔아, 베트남의 우주엄마 친정집을 지어주고, 먹고 살게 가게도 얻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주엄마가 마음을 잡고 저와 노모와 우주에게 너무나 잘하는 현모양처가 됐습니다. 우주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와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말씀대로 저희는 남쪽으로 이사 갑니다. 흙이 많은 곳이 좋다고 하셔서 산자락을 샀습니다. 그곳에서 산복숭아 농사를 지어며 살 겁니다. 우리 우주를 위해서요...


  얼핏, 우주아빠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는 경상북도 고령의 가야산 언저리로 이사했다. 나는 베트남 커피를 먹을 때마다 우주아빠를 생각했다. 내가 베트남 커피에 반한 건 호치민 길거리에서 사 먹은 진하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사먹은 바게트 빵도 우리나라의 어떤 호텔의 빵보다 맛있었다.


  십년 전 호치민에 갔을 때 ‘르네상스’ 호텔과 ‘빅토리아’ 호텔에 묵었었다. 그 두 호텔의 조찬에 나온 커피는 어설픈 ‘아메리칸’ 스타일이었다. 신맛이 강하게 느껴져 맛이 없었다. 물론 이런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식빵과 바게트도 ‘웰빙’ 스타일이었다. 몸에 좋다는 견과류를 잔뜩 넣은 식빵과 바게트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렌트한 차를 타고 가다 길거리에서 사먹은 에스프레소 커피와 바게트 빵은 다시 호치민에 가고 싶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진한 쓴맛 속에 그들의 자존심처럼 단단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지금은 그새 입맛이 살짝 바뀌어 이탈리아산 ‘일리’ 커피를 먹고 있지만, 여전히 베트남 커피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 길거리에서 사먹은 에스프레소 커피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듯 덥기만 한 베트남 여행의 피로감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메콩 강변 깊숙한 열대 숲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그들은 말이 없고 조용해 보였다. 불행한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호치민 시내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출퇴근하는 젊은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을 보는 순간, 그들에게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 그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품위가 있었다.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는 오만함이 얼핏 엿보였었다. 모터사이클의 물결은 장관이었다. 강물처럼 엉키지 않고, 각자의 운명처럼 제 길을 따라 달렸다. 


  - 선생님, 우주아빠예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우리 우주가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 집은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천식에 시달리던 우주가 아주아주 건강해졌거든요... 우주엄마도 행복해하고 노모도 엄청 건강해지셨습니다...


  가야산 자락으로 이사한 우주아빠는 내게 산복숭아를 보내줄 테니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산복숭아를 설탕에 재여 청으로 만들어, 차로 먹으면 간에 그렇게 좋다는 것이다. 특히 기침이나 천식, 기관지염에도 엄청 좋다고 했다. 난 괜찮다고 했다. 그 산복숭아 청을 만들려면 담금 병도 사야하고, 산복숭아를 씻고 마른 수건으로 닦고 설탕을 사고, 며칠에 한번 저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빛의 속도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매실액도 난 매실 농장에서 사먹는다.  


  아무리 만류해도 우주아빠의 장황하고 반복적인 말에 당할 수는 없었다. 그럼 돈을 보내드리겠다고 하자 더욱 요점정리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그래도 요점을 정리하자면 자신의 아들 ‘우주’에게 돌아올 덕을 쌓기 위해 은혜를 입은 선생님에게 꼭 보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럼 정말 조금만 보내주시라고 했다. 기상청은 연일 복염주의보를 내리고 있을 때였다. 이 불볕더위에 나를 주려고 산복숭아를 딴다는 게 영 마음이 불편했다.


  우체국 택배로 온 산복숭아는 다행히 양은 조금이었다. 조금인 거는 괜찮은데 매실 두 배 크기 만 한 산복숭아의 초라함에 조금 실망하기는 했다. 그래서 개복숭아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우주아빠의 그 노고를 생각하고 산복숭아를 한 알 한 알 깨끗이 씻고,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마침 집에 있는 적당한 담금 병도 찾아내어 설탕을 켜켜이 뿌리고 견출지에 날짜까지 써서 붙이고는 잊어버렸다.


  오늘 드디어 산복숭아를 건졌다. 산 복숭아는 짙은 갈색 청으로 우려져 있었다. 뚜껑을 열자 향기로운 복숭아향이 온 집안에 번졌다. 여름내 뜨거운 햇살과 폭풍과 비바람을 견디며 자란 산복숭아는 육즙을 아낌없이 모두 내어주고 메추리 알 만해 져 있었다.


  뜨거운 산복숭아 차를 마시며 ‘우주’를 생각했다. 착한 우주아빠도 생각했고, 사진으로만 본 자그마한 우주엄마도 생각했다. 우주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진심으로 빌었다. 아하, 덕을 쌓는 거란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나에게 사소한 호의를 베풀어 준,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도 빌었다. 


  누군가 사소한 나의 호의를 생각하며 우리 아들이 잘되길 비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순간, 득도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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