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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광 May 30. 2024

고전 독서의 쌩기초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나는 지금 고전 -- 이라는 것-- 을 읽어보려는 학생들에게 간단한 가이드를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넓게는 일반적인 고전 독서법이라 할 수 있지만, 지면의 한계상 생략한 지점이 많다. 그래서 이 글은 일단 과제든 뭐든 고전을 빨리 읽어야만 할 학생들을 위한 긴급 처방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은 많다. 수천 년간 쌓아 온 인류 지성의 산물이다. 이른바 <고전 N선>은 그 중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이 정도는 읽어보아야 하지 않겠냐” 싶은 것들을 고르고 골라 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수가 몇 백 권씩 된다. 학생 입장에서는 겁부터 나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눈이 빠져라 목록을 들여다봐도 만만한 제목이 없다.


하아··· 이걸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




1. 우선 분야를 정하자


여러분이 많이 읽는 웹소설을 보자. 당장 네이버 ‘시리즈’나 카카오 ‘페이지’만 하더라도 수천 편의 작품이 있다. 카데고리를 ‘전체’로 놓고 살펴보자면 스크롤이 끝없이 이어진다. 제목만 읽어보려 해도 며칠이나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판타지’니 ‘로맨스’니 ‘무협’ 같은 하위 카데고리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다.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 특별히 눈이 가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일단 그 지점에 주목하자.


대개의 <고전 N선>은 가령 대주제가 ‘문학’, ‘역사·사상’, ‘과학·기술’ 등으로 분류되어 있고, 일부는 다시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오늘날 학생들의 취향이 ‘서양’의 ‘문학’ 쪽으로 편중되어 있지 않을까 예상하는데, 여기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행히도 고전이란 이미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친 작품이다. 취향은 차치하고라도, ‘퀄’이 떨어지는 작품은 있을 수 없다. 눈치볼 것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2. 한 권을 제대로 읽자


수백 권의 목록에 압박받을 필요는 없다. 네이버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정신 나간 독자가 있을까? (그런 다짐을 실행해서 성공한다면 그것도 리스펙트. 그런 학생은 이미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


마음에 드는 한 권을 제대로 읽으면 충분하다.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게 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댓글을 달게 된다.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면 어쩌지?” 뭘 걱정하는가. 여러분에게는 ‘에타’와 ‘나무위키’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지 않은가? 리뷰를 충실히 활용하자.




3.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고전은 난도가 높다. 의도적으로 글의 난도를 낮춘 웹소설처럼 후룩 후루룩 스크롤하면서 지나가기는 어렵다. 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은 여러 번 읽을 각오를 미리 하자.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무리 포장하려고 해도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공부의 연장선이고,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읽는다. 분명히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는 있다.



1) 1회독 - 통독


고전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어렵다. 그래서 고전 독서라는 것은 필히 ‘문장 뜯어먹기’가 함께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처음 읽을 때는 문장을 모조리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전체적인 느낌만 가져가도 좋다. 특히 문학의 경우 이 방법이 굉장히 유효하다. 줄거리만 간단히 파악하는 것으로도 훌륭하게 독서를 한 것이다.


역사·사상이나 과학·기술의 경우에는 생소한 인물명과 용어가 사정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일일이 필기할 필요도 없다. “이걸 손으로 떠서 눈에다가 한 번 비벼서 바른다” 이런 생각으로 읽으면 충분하다. 독서하면서 “아, 칸트라는 사람이 있구나. 헤겔이라는 사람이 있구나.” 혹은 “미메시스라는 용어가 있구나. 시뮬라시옹이라는 용어가 있구나.” 이 정도만 가져가자.



2) 2회독 – 발췌독, 정독


두 번째 읽을 때는, 첫 독서에서 특별히 이해가 잘 되었거나 흥미로웠던 지점을 중심으로 조금 꼼꼼하게 읽어본다. 용어가 생소하면 인터넷 검색도 해보면서 정독을 해보자. ‘나무위키’는 오류가 많지만 괜찮다. 여러분의 배경지식을 넓히는 데는 큰 도움을 준다. 다만 2차로 글을 생산할 때는 레퍼런스의 오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재확인할 것.



3) 3회독, 그리고 그 이상 - 숙독


두 번째 독서가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이루어졌다면 세 번째 독서에서 여러분은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은 이전에 이해되지 않았던 지점들이 ‘이해되었던 지점’을 중심으로 재편성이 되면서 함께 파악이 되는 마법을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그룹스터디를 이용해서 부가적인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이해되는 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누어도 큰 도움이 된다.




4. 다독 다작 다상량


이러니 저러니 떠들어 보아도, 고전을 제대로 읽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다독다작다상량(多讀多作多商量)’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또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혼자서는 참으로 실행하기가 어려운 방법이다. 독서 모임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해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그쳐보는 것도 좋다.


마무리는 클리셰가 좋다. 고전을 꼼꼼히 읽어가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지혜로운 인재가 되어 보자.




경남대학교 《아레테》 기획권호에 게재한 〈어떻게 고전까지 사랑하겠어, 독서를 사랑하는 거지〉를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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