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악기가 많다. 하다못해 이따위 악기가 있나 싶은 정도다(음악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재미도 없어 보이고 배워서 뭐 하나 싶다. 예를 들면 호른 같은 악기가 있다(커버 이미지 참고).
악기에 대한 의구심은 저항 없이 오케스트라로 이어졌다. 오케스트라를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TV 채널을 돌리거나 온라인상에서 스치듯 나타날 때면, 오케스트라는 왜 망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비용이다.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입력된 정보에 의하면 오케스트라는 비싸다. 겨우 한두 시간 즐기기엔 가성비가 떨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감흥이 없다. 이런저런 악기들이 마음껏 저마다 교태를 부리지만, 그저 단순한 '소리' 외 다른 느낌이 없다. 모르는 음악은 오히려 졸리기까지 하다. 세 번째 이유는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처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평범한 대중들이 오케스트라를 즐겨 들을 리가 없다. 악기는 내 흥밋거리에서 탈락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음악 하는 와이프를 만나버렸다. 와이프는 음악중ㆍ고등학교 출신이다. 주특기는 노래이고 여러 악기들도 꽤 다룰 줄 안다. 단순히 음악하는 사람을 넘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하루종일 노래만 부르고 있다. 목표를 가지고 연습한다기보단 음악을 못하게 된다면 삶의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Music is my life'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다.
와이프는 오케스트라를 좋아한다. 한 번은 혼자선 허전한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오케스트라에 나를 데리고 갔다. 내 인생 첫 오케스트라였다. 비용은 무려 인당 9만 원. 남는 게 없는 소멸성 소비. 2시간짜리 공연이니, 시간당 4.5만 원짜리 상품을 강제로 2매씩 사야 했다. 만 원 아끼려고 당근마켓에 죽치고 사는 내가!
연주단이 입장하고 지휘자가 등장했다. 분위기를 잡더니 연주가 시작됐다. 거금의 소멸성 소비가 시작된 것이다. 아는 건 쥐뿔도 없지만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 했다. 역시 돈이 걸려야 사람은 간절해지는 걸까. 연주에 집중했다. 어떻게 듣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악기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로 했다. 악기 종류는 15개쯤 됐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바이올린, 틀을 잡아주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곡의 개성을 살리는 클라리넷, 감정을 끌어올리는 북 등 악기들은 제각기 역할이 있었다.
악기는 실로 놀라웠다. 나는 스스로 악기 소리를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이고, 피아노는 피아노지 뭐. 크나큰 착각이었다. 실제 악기 소리는 TV나 영화 속 녹음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모든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아름다웠고 울림이 달랐다. 75% T인 내가 감동을 받고 있었다. 특히 콘트라베이스와 클라리넷은 예술이었다(우리가 알고 있는 징징이의 클라리넷 소리로 오해하지 마시라). 이제서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다. 오케스트라가 왜 망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악기는 위대했다.
악기 하나를 다루고 싶어졌다. 보통 악기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연주하는 상상을 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연주해주고 싶다. 아름다운 음악의 진동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다. 악기는 '클래식 기타'로 정했다. 이 끌림이 시들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