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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maconma Sep 09. 2024

딤섬과 그래픽 디자이너

사라져 가는 것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오후 7시, 양재역. 오늘 회식은 신문사 디자이너 이서은 님과 함께 했다.





언론사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꽤 특수한 분야와 직무로 느껴지기도 해요. 어떻게 언론사에서 근무하게 되셨나요? 

당시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는 않았어요. 대학 졸업 후 빠르게 취업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전공을 살려 영상 편집 분야로 진로를 정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인 2015년도는 SNS가 대유행할 때였는데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이 막 태동할 때여서 채널을 키울 수 있는 관련 직무들을 많이 채용할 때였어요. 그중에서도 눈에 띄던 공고가 중앙일보의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 직무였는데, 관련 경력은 없지만 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지원해서 들어오게 됐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을 몰랐어요. 



9년 정도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한 직장에서 이렇게 오래 있으신 분 오랜만에 봐요. 직무, 업무 환경 등 서은님에게 모두 잘 맞으셨던 건가요? 

잘 맞는 점이 많았어요. 당시 회사에서 저한테 요구했던 게 다양했거든요. 카드 뉴스, 영상 편집, 웹 페이지 디자인, UI/UX 등 살짝이지만 경험해본 것들이 다 직무에 도움이 됐어요. 지금은 편집 디자인까지 회사에서 배워서 업무에 적용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업무적으로 잘 살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고요. 팀을 잘 만난 것도 한몫해요. 경력, 나이 모든 면에서 차이가 월등히 나는 선배들과 한 팀이었는데 가족같은 분위기였어요. 저는 한참 배워야 할 때였어서 선배들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컸죠. 


또 뉴스 특성상 매번 아이템이 다르고, 단기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라 업무가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디자인 역량도 다양하게 길러지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한번씩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거나 힘들 때면 선배들이 매번 “괜찮아. 내일 잘하면 되지.”라고 말해줬는데 그게 큰 위로가 됐어요. 오늘은 못했지만 내일은 또 다른 업무로, 다른 방식으로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모든 게 저한테는 일을 하는 데 긍정적인 힘이 됐어요. 





그럼 현재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가요?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신문 제작 파트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문화, 레저 면에서 필요한 디자인 레이아웃 작업을 하고 있고요. 그날의 기사와 사진을 기반으로 전체적인 디자인을 구성하고, 때로는 필요한 그래픽도 직접 작업해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한 기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자, 사진기자, 에디터, 편집기자, 디자이너 등 약 4-5명의 작업자가 협업하게 되는데요. 먼저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있고, 사진이 필요할 경우 사진기자가 투입돼요. 에디터는 기사를 지면용으로 편집하고, 편집기자가 제목을 달고 세부사항을 체크하고요. 마지막으로 디자이너가 레이아웃을 짜고 전체적인 면 디자인을 구성해요. 이 지면 한 장을 조판 작업자*가 담당해 작업하죠.

*조판 작업자: 편집자의 지시에 따라 신문제작 프로그램(보통 인디자인)을 활용해 지면을 맞추어 짜는 일을 한다. 



신문도 방송만큼이나 바쁜가요? 제가 경험한 보도국은 매일 일분 일초를 다퉜는데, 신문 쪽은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신문은 마감 시간이 확실히 정해져 있어요. 저는 보통 오후 2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10판 마감을 하고, 오후 8시 반까지 전국판인 40판을 마감하는데요. 40판은 전국에 배포되는 최종판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이후 서울 지역에 한해서 43판을 별도 인쇄하는데, 여기에 속보나 업데이트되는 기사가 있을 시 반영하죠. 물론 방송 뉴스만큼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업무 분위기가 꽤 예민한 편이죠. 항상 집중해서 바쁘게 일하다 보니까 금방 퇴근 시간이 와요. 보통 마감하고 9시 정도에 퇴근하는 편이에요. 



서은님이 담당하고 계신 문화, 레저 쪽 업무는 어떤가요? 

레저 기사는 다른 분야의 기사보다 선행 작업 기간이 길어요. 국내외 맛집, 휴양지 등을 취재하는 출장 기사가 많아 일주일 전부터 준비 작업을 해야 하죠. 기자가 출장을 다녀와서 기사를 작성하면, 제가 전체 디자인을 구성하고요. 이 과정에서 필요한 그래픽도 직접 작업해요. 이렇게 제작된 레저 기사는 목요일에 최종 제작을 마치고 금요일 신문에 실리게 돼요. 



작업하신 기사를 다 스크랩 해두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업한 것 중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나 선배들의 피드백으로 개선된 작업물은 모두 저장해두고 있어요. 디자인에도 매뉴얼이 있는데, 때로는 매뉴얼을 벗어나 작업할 때가 있는데요. 이런 예외 사례들을 기억하려면 관련 데이터를 쌓아둬야 해요. 특히 사진 출처 표기법 같은 세부 규정도 중요하기 때문에 꼭 저장해두는 편이고요. 언제까지나 매뉴얼대로만 작업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각자만의 일하는 노하우를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평소 작업 과정에서 배운 점들을 꼭 스크랩 해둬요. 



저장해두신 기사들 쓱 보니까 읽어보고 싶어지는걸요? 디자인이 들어가서 그런지 신문이라기보다 매거진 같아요. 

맞아요. 문화면 디자인은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게 중요해요.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보면 신문을 펼쳤을 때 정치면보다는 스포츠, 문화면을 먼저 펼쳐보곤 했던 것 같거든요. 엄마도 그러시더라고요. “신문을 펼 때 가장 먼저 문화 면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걸? 그거 때문에 중앙일보 구독하는 사람들 많을 거야.”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누군가는 신문을 볼 때 내가 맡은 면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다는 점이 꽤 충격적이었어요. 이걸 염두에 두고 그래프나 도표 작업을 할 때, 이 기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데이터가 무엇인지 꼭 파악하고 그걸 디자인에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죠. "사람들이 내 작업물을 제일 먼저 볼 수도 있다.” 디자인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 



아쉽지만 요즘은 신문을 읽는 사람이 과거에 비해 드물 것 같긴 해요. 신문사 디자이너로서 커리어 걱정은 없으신가요?

당연히 있어요. 일단 제 다음 후임이 없다는 것 자체가 제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신호인 것 같아서 걱정이 돼요. 또 선배들과도 나이 차이도 꽤 있다 보니까, 이들이 은퇴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지도 걱정이 되고요. 이 분야 비슷한 연차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고민이에요. 요즘은 언론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직장인들도 AI에 내 직업이 대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저도 비슷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언론사가 존재할까 싶은 걱정을 자주 해요. 종종 여성 디자이너로서의 수명도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현재의 고민과 별개로, 서은님에게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구체적인 목표는 없어요. 언론사에 특화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현재는 그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디자이너'라고 정의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언론사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이 생겼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같은 업무를 꾸준히 해온 동료 디자이너들을 보면 말그대로 ‘전문가’이거든요. 짧은 시간 안에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동료 디자이너들에게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봐요. 저 또한 동료들처럼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9년차 언론사 디자이너로서의 성장 노하우가 있다면요?

다른 디자이너들에 비해 동료들의 요구사항을 거절하지 않는 편이에요. 어떻게든 해주는 편이랄까요. 그도 그럴만 한 게, 디자인은 정답이 없어요. 저도 해봐야 알아요. 아직 모르는 게 많기도 하고요. 제가 아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무리한 요구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일단 해요.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그때 수정해도 늦지 않게끔 작업을 하죠. 이런 업무 태도가 제게는 득이 훨씬 많았어요.


또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회의적으로 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선배들에게 배운 점이기도 한데요. 경력이 15-30년차 되는데도 일하시는 거 보면 진짜 사소한 건데도 위치 바꿔보고, 사이즈를 더 키워보면서 디자인 수정하는 모습이 좋아보이더라고요. 누가 요새 신문 보냐고들 하지만, 누군가는 보잖아요. 그들을 위해서 디자이너들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모습이 저한테는 귀감이 돼요. 그리고 일과 나의 사이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 이것도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퇴근할 수 있거든요. 일이 나한테 1등은 아니지만,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롱런을 위한,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방법으로 느껴져요. 직장인이 상처 받지 않으면서 일하는 방법을 아는 건 정말 필요하죠. 중요하기도 하고요.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선택해서 잘된 건 사실 별로 없어요. 성공한 일들을 돌아보면 의도치 않게 우연히 만난 기회들이 많았어요. 대학에서 영상 전공을 하게 된 것도, 현재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도 우연한 기회였어요. 당시에는 도망치듯 선택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좋은 결정이었던 거죠. 충동적이더라도, 매 순간의 선택이 저를 행운으로 이끈다고 믿어요.



디자이너 서은님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디자인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뿌듯해요. 저는 조판 작업도 함께하고 있는데요. 조판은 인디자인 프로그램에서 기사를 직접 편집하고 담당하는 일이에요. 조판 작업에서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되거든요. 기사 내용을 꼼꼼히 봐야 하고, 1mm라도 잘못 배치하지 않았는지 계속 확인해야 해요. 꽤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데, 이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디자인을 빨리 완성한 뒤 실수를 체크할 시간을 확보해야 되죠. 이 모든 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가 가장 성취감이 커요. 



개인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디자인 프로젝트도 있나요?

아뇨. 지금 일이 딱 재미있고 좋아요.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제게 가장 큰 프로젝트예요. 




콘마두명이 만난 사람들

콘텐츠 마케터 두 명이 각자의 지인을 만났다. 일하는 사람들을 탐구하고 싶다는 니즈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지인들을 회식 자리로 초대하며 시작됐다. 우리가 던진 질문은 간단했다. “요즘 일은 어떤가요?” 대화에서 직감했다. 이들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conma.conma.te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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