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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Jun 03. 2024

비판 글을 쓰기 전에 확인할 것

온라인 글쓰기(7)

강화도 해든뮤지엄

  글을 발표한다는 것은, 혹은 콘텐츠를 세간에 공개한다는 것은 사실 적잖이 위험한 일이다. 무언가를 표절할 수도 있고, 누군간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으며, 개인이나 기관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심각하게는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당할 경우는 많지 않으나 글을 쓸 때 머릿 속 어딘가에는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최소한의 대처방법은 글의 출처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기사를 예로 들자면 누군가 한 말이라면 되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쓰고 쌍 따옴표 안에 발언을 적는다.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비공개로 미사일을 쐈다"고 말했다] 식이 되겠다. 그런데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해당 사실을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자신의 이름이 표기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하자. 이 경우는 [북한이 비밀리에 미사일을 쏜 것으로 전해졌다]가 적당하다. 내가 직접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장면을 본 것이 아니니 말이다.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는 일본 나가사키 원폭피해를 당한 한국인이 국내에 귀화한 경우 이들을 돕고 있다며 2023년 4월말 기준으로 이런 사람이 1834명이라고 명시했다. 이를 글로 쓴다면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원폭피해를 당한 뒤 한국에 귀국한 이들은 2023년 4월말 기준으로 1834명이다]가 적당하다. 이 자료는 대한적십자사의 자료임을 정확히 밝혀주는 게 맞다. 여러 온라인 글에서 출처가 없이 각종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것을 보는데, 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문제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출처의 표기는 매우 중요하다.   

  온라인 글에서 자주 보는 현상 중에 '냄비 근성'이라고 부르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가 있다. 비난할 사안이 생기면 순식간에 몰려 물어뜯고, 정작 수사기관의 발표는 이른바 여론재판이 끝난 뒤에 진행된다. 이런 여론재판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기성언론이라고 다를까 싶다. 배우 이선균의 경우, 여론재판과 경찰의 과도한 수사 내용 공개 탓에 자살을 택한 것 아니냐는 각도 있다. 이런 일들을 고려할때 다른 이를 비판하려는 글을 쓴다면 조심해야 한다. 베테랑 기자들은 후배들이 비판 기사를 쓰겠다고 할 때 '비판의 근거는 공신력 있는 출처에서 나와야 하고 일단 기사가 나가면 그 누구도 '' 소리 못할 정도로 정확, 적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는 것을 예시로 들여다보기 위해, 각도를 바꿔 비난을 받는 사람이나 기관의 입장에서 얘기해보자. 이들은 세간의 난에 어떻게 대응할까.

  나는 2008년 한 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 논문을 쓰면서 '이미지회복전략'을 다루었다. 위기 상황 속에 있는 개인이나 조직은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수사학적 전략을 구사하는데, 학문적 용어로 이를 이미지회복전략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비난 대응법이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 당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알렸다고 하자. 전략이라고 생각하든 아니든, 조직은 반응한다. 비리 사실이 없는데 보도가 잘못됐다고 ‘부정’할 수도 있고, 비리는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책임회피’를 할 수도 있다. 혹은 그간의 사회공헌활동을 들먹이며 선의에 기대 호소할 수도 있고, 사고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모두 인정하고 사과해도 된다.

  윌리엄 베노이트 미주리대 교수는 이미지회복전략으로 부정, 책임회피, 사건 피해 줄이기, 교정행위, 사죄 등 5개 전략을 제시했고, 구체적인 수준에서 14개의 전략으로 나누었다.


-단순부정: 나는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

-비난전환: 다른 사람이 그 행위를 하였다.

-도발: 나의 행위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다

-불가피성: 나의 행위는 정보의 부족 혹은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사고: 나의 행위는 불가피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은의도: 그 행위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강화: 행위(자)의 (기존의) 좋은 점을 강조.

-최소화: 행위의 결과가 심각하지 않음.

-차별화: 다른 유사 사건보다 피해가 적음.

-초월: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한 행위임.

-공격자를 공격: 공격자의 신뢰도를 줄임

-보상: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음.

-교정행위: 행위에 대한 (부정적) 결과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함. 재발방지 노력. 책임인정은 부인

-사죄: 사과를 함. 피해에 대한 보상의 책임이 뒤따름. 책임을 모두 인정


  내 논문은 2007년 있었던 ‘신정아-변양균 사건’의 등장인물들이 사용한 이미지회복전략에 대해 쓴 것인데, 나는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한 현장 기자 중 한명이기도 했다. 2007년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미국 예일대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작해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의 권력형 비리로 발전했다. 하지만 법원의 1심판결은 언론의 집중포화와 세간의 뜨거운 관심 보다 훨씬 못 미쳤다.  

  학력을 위조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신 전 교수는 징역 1년 6월을, 신 전 교수를 위해 개인사찰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변 전 실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애초 검찰은 각각 4년을 구형했다.

  이미 현장 기자들은 검찰의 구형이 과다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실제 범죄 사실에 비해 언론을 물론 세간의 관심이 지나쳤다는 판단이었다. 사건의 크기보다 지나친 주목을 받는 이유로는 우선 이 사건이 권력, 로맨스, 학력 위조 등 소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거론됐다. 또 당시 기자들은 두 사람의 대응법이 세간의 비난을 더욱 키웠다고 봤다.

  신 전 교수와 변 전 실장은 다양한 이미지회복전략을 사용했는데, 당시 신 전 교수를 다룬 기사(129건)로 본 그의 이미지회복전략(176개)은 단순부정이 33회였고, 거짓말 전략이 30회, 사죄가 25회였다. 비난 전환(16회), 공격자공격(12회)와 동정 전략(12회), 도발(10회) 등이 뒤를 이었다. 신 전 교수의 거짓말 전략은 후에 이어진 사죄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변 전 실장의 보도(71건)에 실린 이미지회복전략(83개) 중에도 단순부정이 25회로 가장 많았고 거짓말 전략이 13회였다. 사죄 전략과 침묵전략이 각각 10회였다.

  이쯤에서 다시 이 사건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입장으로 돌아와보자. 두 사람의 거짓말 전략은 당연히 비판할 지점이다. 그때 그때 신 전 교수의 거짓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력 위조나 청와대 출입 여부 등 크고 작은 거짓이 사건 내내 이슈가 됐다. 

  반면, 당시 신 전 교수는 사안이 심각해지자 미국으로 떠났고, 변 전 실장도 답변을 거부하는 침묵 전략을 사용했는데 이 지점에서는 비판 글을 쓰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침묵전략은 베노이트 교수의 이미지회복전략에는 없다. 전략이라기보다 당황해서, 잘못을 인정할 수 없어, 대응 방법을 찾으려고 곧바로 답변을 못하는 것일테다. 내부적으로 사실 확인에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사실 확인에 수반되는 법적 검토 중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 3년의 취재 생활을 돌아보면, 미국 언론은 개인이나 기관이 침묵할 경우 수사기관 등의 공식 발표 전에는 좀체 기사화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침묵을 곧 정보를 왜곡해 핑계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질질 끄는 것으로 여기고 의혹 기사들을 쏟아낸다. 이는 70~80년대 독재의 잔재일 가능성이 있다. 정보를 독점한 기관이 정보를 은폐한 사건들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사안에 대해 규명된 것이 없는데도 이른바 여론재판이 벌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소위 '사이버렉카'가 이런 여론재판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고, 유튜브 같은 곳에 허위사실을 발표했다가 실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언론계에서도 온라인 기사가 많아지면서 사실 확인 없이 다른 기사를 전재하거나, 크로스체크 없이 일방적인 제보나 한 사람의 언급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기성 기자들의 경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의혹만으로 접근하는 기사는 수없이 검증한다. 또 당사자 본인에게 확인을 시도하도록 하고, 이게 불가능하다면 주변 기관이나 인사들에게 이른바 '크로스체크'를 하도록 한다. 상대가 침묵하는 건 무조건 '켕겨서'가 아니다. 그럴 가능성이 크더라도 반복해 여러 경로로 확인을 거친 글로 옮겨야 글쓴이도 법적으로 안전하고 사회적 책임도 져버리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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