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글을 쓰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한 결과, 글의 소재를 찾는데 있어 사람은 보석상자다. 당연한 말을 할 것 같은데 막상 말을 시키면 예상치 못한, 쇼킹한, 감동적인 무언가가 나온다. 사람은 제 각기 자기의 이야기를 안고 산다. 그게 사건의 단편일수도 있고, 철학일 수도 있으며, 자신만의 원대한 계획일 수도 있고, 감상평일 수도 있다. 나는 늘 누군가 가슴 속 보물상자에서 꺼내는 이야기에 놀라고 눈물을 흘리거나 크게 웃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후배들이 인터뷰를 할 때 '컨셉트'가 뭐냐고 묻는다. 인터뷰할 대상이나 주제, 혹은 장소 보다 콘셉트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인터뷰는 글이 아니라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외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 왜 이 사람을 인터뷰 해야 할까,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끌어내고 무엇을 보여주며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지 등 목표를 세운 뒤 질문을 구성토록 한다. 물론 이런 목표는 인터뷰 중에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지만, 애초에 특정 목표라는 기준조차 없으면 한 없이 모래알 속에서 진주를 찾아야 하는 고된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사람 속 보물상자는 넓고도 깊어 무엇을 글로 옮길지를 찾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는 효율성도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일례로 2020년에 만났던 안톤 숄츠 기자는 평소 '한국 사랑'을 강조했다. 당시 우리나라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못살겠다며 소위 '헬조선'이 유행하던 때여서 독일인 기자의 한국 사랑에 눈길이 갔다. '한국 사람은 살기 싫다는 한국이 외려 좋다는 독일인'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만난 그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왠만한 한국 사람보다 더 계승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난 그에게 '꼰대'라고 부르며 웃었고 그는 맞다며 함께 웃었다. 예상치 못하게 콘셉트를 '한국 사람보다 더 꼰대인 외국인'으로 바꾸었다. 아래는 해당 기사("헬조선이 웬 말? 한국만 한 나라는 없다" 한국인보다 더 '찐' 한국인)의 서두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선불교에 빠져 ‘무일푼 한국행’을 택했다는 독일인은 한국의 구불구불 산길이 너무 좋다고 했다. 20년을 한국에서 지낸 그는 녹색이든 파란색이든 대충 ‘파란색’이라고 부르던, 넉넉히 음식을 마련해 낯선 외국인도 정으로 나누어 먹이던 소싯적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국만 한 나라 없다고, 헬조선이 웬 말이냐며 청춘 시절 자신의 ‘노오력’(노력의 강조형)을 언급할 때는 외국인답지 않은 ‘꼰대스러움’(?)에 웃음을 짓게 했다. 반면 교육 문제·댓글문화·서울집중화·고령화·상대적 박탈감 심화 등 한국의 민감한 사회문제를 지적할 때는 짧게 끊어 치는 특유의 저돌적인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사람 개개인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저마다의 특색이 분명하다는 것을 처음 느낀 건 2006년 '가슴 속 그림 한 폭'이라는 연재에 참여하면서다. 여러 명사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인터뷰하는 코너였는데, 그들은 그림을 통해 삶을 얘기했고, 각자의 삶 속에는 예상치 못한 저마다의 독특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종태 화백의 여성을 그린 테라코타,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 최일해 화백의 어느 하루.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재키 로빈슨. 명사들이 고른 그림들
2006년에 작고한 하일성 야구해설가는 당시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재키 로빈슨'(그림의 제목이자 미국 메이저리그의 첫 흑인 선수 이름)에 대해, 그는 다른 팀의 백인 선수들이 경기 중에 얼굴에 침을 뱉고 백인단체는 살해위협을 했지만 버텼고, 이겨냈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고 설명했다. 로빈슨은 “인생은 보기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말했단다. 이어 2002년 심근경색으로 혈관을 뚫는 7시간의 대수술을 한 얘기를 하며 '인생이란 경기에서 실력과 운보다 중요한건 용기'라고 했다. 수술의 공포를 느낄 때, 수술 후유증과 싸울 때 그는 해설가로 돌아가 나와의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해설 중에 "야구 몰라요"라는 말이 당시 유행했는데, 자신에게는 인생 모르듯 야구도 정말 예측하기 힘들다는, 오랜 야구 해설 경험에서 나온 진지한 의미였다고 했다.
탤런트 고두심 선생은 강연균 화백의 '어머니'(시장 좌판에 앉은 어머니를 그렸다)를 좋아하는 그림으로 꼽으며 여자 3대(어머니-자신-딸)의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의 강하고 질긴 모성애와 여성의 삶이 크게 달라진 딸 세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자신의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당시는 유명 탤런트였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흐릿하게 여성을 조각한 최종태 화백의 테라코타에 대해 '화백이 조각을 구도의 과정으로 여기는 것처럼 연기 역시 그런 과정'이라고 했다. 이준익 감독은 '살판(광대의 땅 짚고넘기) 목각'을 얘기하며 노동(밥벌이)로서의 예술에 대한 얘기 했는데 거창한 예술이 아니라 삶의 날것, 삶의 알맹이를 영화에 반영하고픈 의지가 엿보였다. 고 마광수 연세대 교수의 '별이 빛나는 밤에'(빈센트 반 고흐), 탤런트 채시라 선생의 '어느 하루'(최일해), 김명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세한도'(추사 김정희), 가수 한대수 선생의 '신부의 옷차림'(막스 에른스트) 등 많은 이들이 각자 고른 그림은 자신의 삶과 닮았다. 한대수 선생은 선과 악, 구원과 상처 등을 탐구하고 있었고 마광수 교수를 인터뷰하고 나오던 길 그가 걸어두었던 자화상은 슬펐다. 기타의 모습을 한 마 교수가 자신의 몸에 달린 현을 손으로 뜯으며 "나는 슬플 때 노래를 한다"고 적은 그림이었는데, 고독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사실 유명인들은 사람 자체로 흥미를 끌고 주목도가 높지만, 이외 대부분은 콘셉트가 더욱 중요하다. 일례로 충북도청이 어르신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담는 ‘영상자서전 사업’을 시작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는데, 이 자체로는 글이 되기 힘들다. 많은 도청이 하는 사업 중 하나인데다 어르신들의 자서전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주목도가 크지 않아서다. 다만, 이후 1년간 6400명의 영상자서전을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평생 살아보고 이제 나이를 먹으니 이런 게 아쉽더라'는 질문을 콘셉트를 잡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어르신이 "너 정말 잘 살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부분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더라고 썼다. 또 '동료와의 막걸리', '언니와의 수다' 등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 아쉽더라고 썼다. 어르신들은 “더 배웠다면”, “좀 더 놀걸”, “건강에 신경 쓸걸”, “가족에게 너무 매달리지 않았다면” 등의 답변을 했다.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는 각각 하나의 글이 되기는 쉽지 않으나, 많은 이의 이야기는 '서민의 살아있는 역사'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했다.
통상 언론계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질문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확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는 것은 공직자나 정치인처럼 시간은 부족하고 다소 의무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사람에게 좋은 듯하다. 짧고 빠른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더 빠르게 답할 정도로 답변이 준비돼 있는 전문가들이어서다. 질문을 잘 하려면 인터뷰 대상은 물론 그의 전문 영역에 대한 사전 공부도 필요하다. 인터뷰 시간은 한정적이니 그의 말을 빠르고 깊게 알아들으면 다음 단계의 질문이 가능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나는 인터뷰를 앞둔 후배들에게 무엇보다 "잘 경청하라"고 당부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빠질 준비를 하고 공감하며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후 다음 질문을 하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옥스퍼드 MBA 학장, 미국 백악관 전 국가안보보좌관, 미국 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장, 세계적 기업의 수장, 우리나라 장관 등 고위 관료, 밥집 자원봉사자, 이발 봉사를 하는 소방관, 노숙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난 뒤 '사람 속 보석상자'를 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 부분이다. 스마트폰 개발에 기여한 삼성전자 연구원은 수억대 연봉을 부러워할때보다 당신의 기술이 세상의 소통방법을 바꾸고 큰 편익을 사회에 주었다고 했을 때 자신의 성과를 더 열정적으로 들려줬다. 한 유명 패션업계 CEO의 긴 말을 유심히 들은 후, 당신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미적 철학을 확산시키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자 자신의 기업 철학을 깊은 부분까지 드러냈다. 많은 공무원들은 철밥통을 부러워하기 보다 그 정책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를 이해했을 때 더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제대로 들을 줄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