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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만 May 24. 2024

여순의 삶

굴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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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내게 갯일은 생소하고 힘들었다. 굴 밭에 처음 나간 날 날카로운 굴 껍데기에 벌벌 떨며 어설프게 걸어 다녔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나이가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언니가 손짓하며 불렀다. 언니는 바닷바람에 마른미역처럼 푸석한 머리였고 얼굴은 검게 그을렸다. 갯일이 이골 난 듯 쉽게 굴을 캐고 있었다. 


"여긴 첨인갑네? 니같이 여리여리 한 것이 어쩔라고 여그 왔냐? 쪼시게 질 해봤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쪼시게 질도 모르고 여그는 첨 왔당께요." 


"거그 서있지말고 요리 와봐."


"이 쪼시게는 대가리가 무거워 그랑께 힘을 많이 주지 말고 가볍게 손목을 요령껏 탁 쳐 그라면 쉽게 굴이 까질 거여." 


"요것이 요렇게 조사뿔어서 쪼시게여." 


"인자 손에 익으면 쉽게 굴을 캘것인께 너무 걱정하지 말더라고."


"나가 시나브로 갤차줄거여 여그 앉아봐."


그날부터 그 언니가 굴 밭에서 갯일 선생이 되어 쪼시게 질부터 어떤 굴이 꽉 찬 굴인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물이 많이 빠지니 그때 오면 굴이며 조개를 많이 캘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에게는 갯일이 힘든 일이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집도 없고 엄마 아버지도 없는 이 세상은 정말 막막하다. 오늘 내가 서있는 이 굴 밭은 내 마음과 같이 어둡고 칙칙하며 가는 길마다 상처를 내려고 내게 달려든다. 그러나 실오라기 같은 빛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작은 빛이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얼마 전 길현이가 내게 물었다. 


"누나 쩌그 명철이는 학교 댕긴다고 하는디 나는 학교 못 댕기것능가?" 


"길현아!" 


"학교는 가난한 아그들이 댕기면 맨날 청소만 시킨다 덩마?" 


"그랑께 맨날 청소만 하고 학교 댕기려면 알아서 해부러라잉!" 


"오~메 맨날 청소만 시킨다고?" 


"누나 그라믄 나는 안 댕길라네!" 


"그려 좀 있다가 돈 생기면 학교 다시 댕기자 알긋지?"


그렇게 동생한테 거짓말을 했다. 이제 동생도 갯일을 같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남매가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은 여수바다가 있어서였다. 오늘 캔 굴이 어깨를 파고들지만 동정시장에 팔면 쌀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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