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집으로/ 90.9X72.7cm/연필,콘테/2024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특정시기에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면들이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런 기억들은 뇌리에 박혀있다.
우리 집은 봉산동에서 부유한 기와집이었다 어머니가 젊었지만 애를 갖지 못하다가 어렵게 얻은 첫 아이였다. 무남독녀로 큰아들의 첫 번째 아이라 집안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내 나이 3살 무렵 여순사건이 터졌다. 아버지가 부역자로 몰려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신 또한 위험해질까 봐 보성 외가로 내 손을 잡고 피신을 갔었다. 우리는 외가까지 피해가 갈까 봐 보성 호미리 외진 마을에서 살았다. 이듬해 어머니는 사촌의 보복성 밀고로 경찰에 의해 즉결처분으로 마을 어귀에서 돌아가셨다. 그 밀고는 빨갱이라는 이유였다. 그는 엄마와 함께 자라서 엄마가 좌익과 너무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불과 30~40m 떨어진 곳에서 그 총소리를 들었다. 내 나이 4살 나는 그 총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3발의 총소리가 몹시 두려워 떨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방안에 있었는데 배속을 텅텅 울리는 그 진동과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잠시 후 경찰들은 내가 방안에 있는것을 보고도 우리 집에 불을 놓았다. 나는 방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마을에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가 급하게 나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했다. 산에서 우리 집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해주신 분이구나 생각하고 그 할아버지를 잘 따랐다. 나는 산 가까이에 있던 그 할아버지와 한동안 같이 살았다. 고아인 나를 살려주고 거두어 주셨지만 당시 먹을 것이 귀해 너무 힘들었다.
할아버지는 호롱불 아래 새끼를 꼬면서 진도 아리랑을 흥얼거리면 나도 곁에 앉아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흥얼거리며 긴 밤을 흘려보냈다. 할아버지와 사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못 먹이고 못 입혀서 말라가는 나를 위해서 외가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는 외가가 너무 멀어서 큰 결심을 내야 할 상황이었다. 산을 넘고 들을 걸으며 호미리에서 계산리까지 걷고 또 걸었다. 어린 나를 데리고 걸어서 가는 외가 길은 참 멀기도 했다 가다가 주저앉아 쉬고 다시 걸어가고 하다가 겨우 외가에 도착했다.
외가에 도착해서 그 할아버지는 그간 자세한 사정을 조부모님께 말씀해 주셨다. 그때서야 두 분은 딸이 죽은 줄 알고 대성통곡을 하였고 할머니는 혼절하였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거의 실성을 하신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바로 여수로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나는 그대로 보성에서 여수 봉산동으로 온 것이다.
“딸 잃었다고 이리 정신없이..”
“너를 씻기지도 못하고 하고 옷도 못 입히고 이리 황망하게 와부렀네.”
“아이고 짠한거..”
“할머니! 나 사줄것이 있당께요?”
“뭐가 있을거나?”
“나~~ 나~~ 새 고무신 하나 사줘!”
“한 번도 뭘 사달라고 안하덩마 왜그냐? 고것이 왜 필요하냐?”
“이판에 새 고무신이 뭐다냐?”
“새고무신 꼭 사줘.”
“봉산동 집에 가기 전에 꼭 사주랑께.”
“그라면 서정시장 들렸다가 가자.”
나는 당시 어린 나이에도 잘 살았던 우리 집이 생각나서 나 자신을 보았다. 머리는 이가 버글버글 옷은 누렇고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면 누가 날 반겨줄까? 생각했다. 세상에 혼자 남은 아이의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된 것이다. 난 1946년 태어나 그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어 마침 사돈이 쩌그 오네.”
“하~~할머니?”
“너는 누구?”
“아이고 연수야? 이 간내야? 니가 왜 이 몬양이냐?“
“엄니는 어디...?”
“워메 사돈 야 애미도 그렇게 가부렀쏘!”
“인자 야는 어찌 산다요?”
“어쩔거나 어쩔거나 우리 연수 어쩔거나!”
“하이고 불쌍한 것!”
“이리 오소 내 새끼”
"애비 애미 다 잃어 불고.. 어찌 살았는지 이 몬양이냐?
“연수야 아이고 연수야!”
할머니는 참외를 팔러 나가는 길이었다. 그날 노란 참외가 할머니 머리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깨친 참외의 속살에서 씨앗들이 사방에 터져 나왔다. 거친 머리와 더러운 옷 그러나 새로 산 고무신만은 반짝였다. 할머니가 날 안고 우셨고 내 눈물이 반짝이는 새 고무신 위로 또로록 또로록 굴러 떨어지는 것 보았다. 그날 내가 본 검정 고무신 위로 떨어진 내 눈물은 74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ㅡ 박금만
여전히 유족들의 사연 하나 하나가 예리한 송곳으로 가슴을 파는것 처럼 애립니다ㆍ언제나 이모든 응어리 풀어드릴까요
"data:image/svg+xml,%3Csvg
"data:image/svg+xml,%3Csvg
"data:image/svg+xml,%3Csvg
모든 공감:
133
문현정, Kyungsoon Lee 및 외 13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