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실 MaSill May 29. 2024

시간과 공간의 관객

송은빛




  

《시공時空 시나리오》는 전시 타이틀에 건축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시공(施工)이 아닌 시공(時空)을 이르는 것임을 알고 보는 전시는 건축적 의미의 건물에서 나아가 건축물과 인간의 밀접한 연결지점을 생각하게 했다. 건물은 인간을 위해 인간이 설계하고 만든다. 또, 건물은 우리와 살 맞대며 누구보다 가까이서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해 홀연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전시에서는 ‘건축물의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설정하여 중점적으로 바라보았다.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건축물을 콘크리트 덩어리로 인식하는 것에서 나아가 생애 주기를 가진 인간과 공존한다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감성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부분을 ‘건축물의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설정했다.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본 전시에서 시간의 흐름을 단연 잘 보여준 작품은 박기원 작가의 〈수평선〉이라고 생각한다. 〈수평선〉은 관람객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자신이 여러 공간에 놓인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툰드라 지역의 대지일 수도 있고, 걷히지 않는 커튼을 달아준 창을 마주하는 공간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고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기도 한다. 공간에 대한 의문은 곧바로 시간과 직결되는데, 하나의 공간이 존재할 때 그 공간에서 흐르는 시간을 느끼는 것에 인간은 익숙해져 살아가기 때문에 어떠한 하나의 상황을 떠올리더라도 흐르는 시간이 배경이 된 공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드넓은 초원을 떠올린다고 해서 윈도우 배경화면과 같이 멈춰있는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들풀이 바람에 일렁이고 맑은 바람이 내 코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떠올린다. 이것이 이 작품의 순기능이자 가장 의도를 잘 드러내었다고 생각한다. 관객과 작품이, 그리고 관객과 작가가 소통 가능한 확장적 작업의 성공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작품이 전시장에 들어오며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포스트 스탠다즈의 〈다목적 미술관〉 작품은 다양한 기반을 수반하고 있는 현대 공공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당 작품의 캡션에는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하고, 미술에 관하여 배움을 실천하고, 휴식을 취하는 등...”의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이 미술관의 프로그램을 넘어 쉼까지도 포함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하기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관객 참여, 작품과 관객이 소통을 통해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 앞에 앉아 다른 작품을 관람하고 전시의 리플랫을 읽고 작품을 경험하는 관객들에게 돌아온 말은 작품에 앉지 말아 달라, 작품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소통의 부재... 정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작가라면 이 점이 참 아쉬울 것 같았다.

 시간과 공간이라기보다 ‘공간의 시간’에 대해 감상한 느낌이었다. 가변성 있는 여러 요소 중 단 하나의 요소만 변화하는 것 즉, 한 공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성을 경험해보기 좋았고, 작가마다 그들만의 내밀한 시간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볼 수 있어 감명 깊었다. 작가 개인의 시간성이 중심이 되어 그것을 관객에게 작품을 통해 온전히 선사해준 시간으로 기억되어 전시의 의미가 더욱 짙게 다가왔다.


작가의 이전글 “공상의 힘을 보여주는 전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