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진
《IMA Picks 2024》 중 김민애의 《화이트 서커스》를 중심으로
일민미술관의 3층에 들어서면 전시명에 걸맞게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벽들과 강하게 비춰오는 하얀 스크린을 볼 수 있다. 그 새하얀 전시장 속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시장 바닥을 가득 채우는 초록색의 〈기념비적 바닥 Monumental Floor〉이다. 전시의 중요한 소재인 서커스를 연상시키면서도 한국에 주로 있는 옥상 바닥의 초록색 방수 페인트를 떠 오르게 만든다. 작가는 함부로 올라가기 힘든 건물의 옥상을 초록색의 상징적인 바닥을 통해 표현하며 계급 간의 사이와 그 사이의 벽을 드러낸다. 작가는 전시장 곳곳에 〈불꽃단련 Fiery Gymnastics〉, 〈랙 Lag〉 과 같은 서커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치들을 함께 전시해 두었다. 흔히 서커스에 대해 생각하면 화려한 장식들, 색채, 상상을 뛰어넘는 곡예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민애 작가가 보여주는 서커스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동적인 요소들을 볼 수 없다. 새하얀 콘크리트 벽과 전시장 곳곳에 덩그러니 놓인 서커스의 곡예 장치 또한 어딘지 모르게 고요하고 정적인 모습을 띠며 작가가 생각하는 미술과 현실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새하얀 전시실을 지나가면 너무나 다른 분위기의 프로젝트 룸이 나온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 룸에 지난 전시의 구작들을 다시 조합하여 재구성하였다. 마치 실내 장식처럼 보이는 작가의 작품들은 작가가 과거 전시했던 작품들이 현실에 나타나면서 그 작품의 의미가 상실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새하얀 벽과 바닥으로 가득 찬 기존의 미술관과 달리 프로젝트 룸의 바닥은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프로젝트 룸의 창문을 통해 보이던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던 시위들, 시위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와 노래들은 미술관과 현실의 벽을 허문다. 벽 한쪽을 거친 붓질로 매운 검정페인트는 〈은둔자를 위한 드로잉 Drawings for Recluse〉과 대조되면서 미술관과 현실 사이의 균열을 보여준다. 그는 이 공간을 통해 미술관이 가지고 있던 위계적인 규범과 규격들을 무너뜨린다. 또한, 서커스라는 화려하면서도 한 편 으로는 고독과 허상으로 가득 찬 소재를 가지고 예술의 모호성을 표현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현재 예술이 얽혀있는 의미들을 고찰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현실 속의 관람객들에게 미술관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관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