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희
역사의 시간을 몸소 감각하는 경험: 아트선재센터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2024년 6월 4일부터 8월 4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된 전시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는 역사와 시간, 정체성 등의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천착해 왔던 작가 호추니엔이 설계한 “비판적 사유 실험”들을 응축해 놓은 듯한 전시였다. 호추니엔은 싱가포르 출신의 현대미술가로, 비디오 아트와 설치 미술을 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이다.
내가 처음 접했던 호추니엔의 작품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송출된 과거, 유산의 극장⟫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무의 목소리⟩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일본의 이념적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교토 학파 철학자들에 대한 작품이다. 가상현실(VR)과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완성된 영상 설치 작품이었다. 영상은 무한 상영의 형태로 전시되었고,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다다미방 형식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영상은 각각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두 개의 스크린이 거리를 둔 채 병치되어, 한 시점에서 볼 때 화면이 겹쳐 보이는 방식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총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작품은 아시아의 근대성과 시간성에 대한 작품으로 ⟨시간(타임)의 티⟩는 호추니엔이 2012년부터 지속해 오고 있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의 일환인 작업이다. ⟨시간(타임)의 티⟩는 아트선재 3층 스페이스 1의 좌측에 위치한 커다란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었고, 전시실 우측에 서는 다양한 크기의 43개 평면 스크린들에서 ⟨타임피스⟩가 각각 상영되고 있었다. ⟨타임피스⟩는 시간에 관련된 영상들로 모두 다른 이미지가 조각조각 무한 재생되고 있었다. 우연히 ⟨타임피스⟩ 다음 ⟨시간(타임)의 티⟩를 관람하였는데, 두 작업은 ‘호추니엔이 바라본 아시아의 시간성’이라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 전개되고 있었다. 43개의 파편화되어 있던 시간의 조각들은 ⟨시간(타임)의 티⟩라는 하나의 영상으로 수렴되었다. ⟨시간(타임)의 티⟩는 시간과 근대성이 모두 서구에 의해 발명되었던 것임을 구명해 내는 일종의 다큐 형식과 닮아있었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 중 하나인 ⟨시간(타임)의 티⟩는 2채널 영상 설치 작업으로 작가의 시간에 대한 시각 리서치와 그 리서치를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상물이 각각 두 개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형식으로 설치되었다. 각각의 스크린은 나란히 병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중 스크린의 형식으로 뒤 스크린에는 실사 이미지가, 앞 스크린에는 애니메이션이 투사되었다. 가공되어 새롭게 활성화된 파편적 애니메이션들은 전면 스크린, 즉 작가가 의미하는 클라우드(구름)로서의 스크린 속에서 실사 이미지들과 만나고, 관객들은 총체적인 사유-이미지,⟨시간(타임)의 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노트를 포함한 시간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토대로 작성된 스크립트가 프리재즈 솔로 색소폰 트랙 위에서 보컬리스트에 의해 성가처럼 읊조려진다. 이러한 호추니엔만의 작업을 전시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전시 또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하여 주의 깊게 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두 레이어 사이의 공명과 공간을 압도한 사운드는 영상을 관람하는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구라는 공간을 시간적으로 관리,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인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그 시초를 알고, 각 언어에서 시제의 문제, 시간을 수치화, 계량화한 시계라는 기계 장치와 작동원리를 토대로 시간성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소소하지만 뜻밖의 답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