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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곤 Jul 27. 2016

생존자들 - 최저임금 결정을 바라보며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한 시간에 6,470원. 인상률은 7.3%다. 금액으로 따지면 440원 올랐다. 오른 최저임금을 주 40시간 근무자의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135만원이다. 3개월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노동자측은 1만원을 요구했다. 사용자측은 동결을 주장했다.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6253원~ 6838원이라는 심의구간을 제출했다. 최종 의결하는 마지막 전체회의에 노동자 위원 9명은 항의의 뜻으로 모두 불참했다. 내년 최저임금은 반쪽짜리 결정이 됐다.

440원 오른 노동의 댓가를 받으면서, 이마저도 동결될 뻔 한 것을 올렸으니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고된 노동 끝에는 식당에서 파는 따뜻한 백반 한 끼 대신 편의점 삼각김밥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냉혹한 현실이 청춘을 울게한다.

지난해 4월에 발행된 한겨레21이 생각나 찾아 읽었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자는 구호를 외치다 세상을 떠난 권문석 알바연대 대변인을 다룬 기사가 표지를 장식했다. 그가 죽은지 3년이 흘렀다. 컬러로 인쇄된 그의 얼굴은 색이 바래져 있었다.

최저임금은 생계의 마지노선이다. 마지노선의 붕괴는 생계의 궁핍을 불러온다. 궁핍은 자존을 짓밟는다. 삶의 생동이 사라진 자리를 병이라는 긴 그림자가 대체한다. 무거운 것을 나르는 다리의 고통이, 반복 작업으로 굳은 어깨의 뻐근함이 역설적으로 내가 여기 있음을 알게 한다. 하나씩 꺾이고 사라지는 붕괴의 도미노는 가난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붕괴돼 너덜너덜해진 자존의 자리는 빚이 메운다. 조선 팔도의 온갖 쌀 대신 태평양 건너 온 미국산 쌀을 택하게 된다. 미국산 쌀은 20kg에 3만원이다. 입에 넣으면 흩어져 버리는 까끌한 식감의 밥을 씹는다.  흘러내린 눈물의 소금기로 찰기를 약간이나마 더한다. 밥상에 김치도 마찬가지다. 만원이면 국산 김치 1kg 사는 걸로 고작이다. 중국산은 10kg를 사고도 3천원이 남는다. 당장의 맛보다 오래 먹을 수 있는 생존의 무거움이 선택의 추를 기울게 한다.

분명 한식이지만 원산지는 다국적인 밥상을 억지로 비우고 일터로 나선다. 자신이 착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씩이나 준다는 사장의 말도 참을 수 있다. "담배"라는 단 두글자만으로 자신의 기호를 알아 맞히라는 진상 손님도 견딜 수 있다. 손님들이 먹다 버린 온갖 라면들이 한데에 섞인 음식물 쓰레기의 악취도 버틸만 하다.

충혈된 눈을 안고 동 틀 때 집으로 돌아가는 청춘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내일의 부재다. 푸르렀던 꿈이 잿빛 현실로, 꿈꿨던 자취방이 아스팔트 도로와 눈을 마주하게 되는 반지하로 옮겨가면서 내일을 위한 여유와 자금은 점점 사치가 된다.

고통이 지속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일상화된 고통에 의지와 의욕은 자취를 감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 지속될 수록 무기력은 미친듯이 속도를 낸다.

죄없는 청춘들이 한강,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수건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끊어내기 위해서다. 살아 남은 자들은 계속해서 살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올해는 실패로 돌아갔다. 내년, 다시 폭염이 찾아올 그 때. 또 다시 외칠 것이다. 노동자의 구호는 작년, 올해, 그리고 내년에도 같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그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살아서 함께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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