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랑을 파야 할 타이밍
병원 마케팅 일을 하면서 여러 진료과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특징적인 단어는 '안티에이징'이다.
뭘 그렇게 나이 듦을 거스르고 싶은 걸까.
어떤 분야든 사람의 불안을 상대로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한 불안,
곱게 늙어가고 싶은 아니
늙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들이 커져
의료 산업에도 안티에이징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나이에 따른 신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
나이 든 사람끼리 칭찬하는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배가 하나도 안 나왔어요? 관리하시나 봐요.'
'머리숱이 풍성해서 너무 부러워요'
'가까운 것도 보시고 아직 쌩쌩하시네요'
아무 생각 없이 들렸던 이런 말들은 노화의 증상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난 사람에게 했던
덕담이었던 거다.
나는 늙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피하기도 되돌리기도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뱃살을 빼려고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운동을 아~~~주 많이 하면 겨우 뱃살도 반응을 한다는 거다.
그때 알았다. 아! 노화까지 거슬러야 하니 뱃살 빼기가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어릴 때는 배가 이렇게 보기 싫다는 생각을 못했다.
주사의 힘을 빌려볼까?
지방분해주사를 아주 간편하게 적은 비용으로
맞을 수 있는 시대라는 걸 알고 며칠 고민을 했다.
잠정적인 결론은 맞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늙겠다? 는 건 아니다.
나도 늙기 싫다.
내가 할 수 있는 관리로 일단 온 힘을 쏟아보기로 한다.
체취에 신경 쓰고, 피부 홈 케어도 하고,
귀찮은 머리카락 안 뽑고, 저녁 야식을 끊었다.
그런데
몸으로 느끼는 노화보다 마음의 노화가 더 문제다.
어른들의 어쭙잖은 조언을 들으면 마음에서
반감이 폭발할 거 같았다.
'왜 본인의 경험만을 반추해서 확언하는 거지?'
'왜 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요즘은 내가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실 나이가 들면 비례적이지는 않더라도
지혜가 쌓이기는 한다.
살아온 것에 대한 꾸준함이
지혜의 기본기를 다지게 해주는 것이다.
경계할 것은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지는데 동시에 생각이 좁아지기 쉽다는 거다.
좁아진 만큼 생각이 깊어졌을 거라 추측한다.
어떻게 아주 넓게 다 깊을 수가 있겠는가.
생각이 깊어지는 만큼 다양한 가능성과 방법에
마음을 닫지 않도록 또 다른 생각 고랑을
깊게 새로 파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책 읽기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나이 들어 버렸고,
성숙에 대한 세상의 기대가 부담스럽다.
나이만 들었지 나는 여전히 어리고 미숙하다.
참고, 또 참는다. 괜찮고 또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이 든 사람들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었구나...
마흔이 넘은 회사 신입 생활은 그래서 고단하다.
누군가 나에게 삶의 지혜를 바라는 순간을 대비해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정보를 보려고 한다.
내 나이가 되면 이해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게 그것이라면 기꺼이 줄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고랑을 다시 파야 한다.
긴 여정이 될 것 같지만 아직 마흔 둘 밖에 안 됐잖아
100세를 살 수도 있다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