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이 허무할 때
우리 집은 남편과 아이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로 늘 가득하다.
그 속에 둥절한 사람은 바로 나.
왜 노래를 흥얼거리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도 집이 적막하지 않고 내 기분도 덩달아 프레쉬해지는 느낌이랄까.
웃어서, 긍정적이어서 나쁠 건 없다.
마흔이 되고 돌아본 나는 참 많이 좋아지고 정리된 듯하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주변 상황들은 결혼과 동시에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내가 가진 스펙이라곤 의료기술직 면허 하나였지만 운이 좋게도 좋은 직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할 수 있었다.
10년 넘게 장기근속한 사람으로서의 스펙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잔잔하게 하나씩 자랑거리가 생겨났다.
긍정을 배우지 못한 탓일까?
원래 긍정이란 게 타고나야 하는데 내가 장착하지 못한 탓일까?
내 마음은 항상 파도가 치고 불안과 슬픔과 벅찬 행복감이 시소 타듯 왔다 갔다 했다.
불행의 다른 말은 행복이 아니듯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평온하지도 않았다.
행복한 듯 웃고 있지만 나는 늘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평온.. 내가 절대 가질 수 없었고 너무나도 갖고 싶은 마음 상태
한마디로 행복이 낯설고 행복이 불안하다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마흔이 되고 조금씩 평온의 상태가 찾아오는 시간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나 자신이 참 기특하다.
또 좋지 않은 소식은
그 평온이 이제 허무함과 동시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은 이제 사라졌지만 낯선 평온을 피해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익숙함의 힘이란 게 이렇게 부정적으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맞다.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기에 어쩌면 그 마음을 내가 끌어당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빛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내 발걸음은 뒷걸음쳐서 어둠 속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멈출 수 없는 기계처럼 멈추지 않으려면 쉽고 익숙한 것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우니
쉽고 편안하게 고통을 찾아 나섰던 걸지도
힘들겠지만 이렇게 평온한 하루를, 이렇게 행복한 상태를 받아들이려 한다.
온전히. 감사히.
익숙한 게 좋다고 속삭이는 또 다른 나를 무시하는 연습을 한다.
적어도 내가 찾아 나서는 일은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