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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28.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13

20240426 - 20240508


오늘은 투어를 신청한 날이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와 막시무스의 집, 그리고 피엔차 투어. 미팅 시간이 아침 6시 반이었기에 한 시간 전인 5시 반쯤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날씨를 확인했는데 이틀간 비가 온 것도 모자라 오늘까지 비가 내리는 것이 절망적이다. 게다가 오늘은 춥기까지 하다. 피렌체에서는 32도까지 경험했는데 오늘은 최고 기온이 19도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던 치비타 디 반뇨레죠를 보러 가는 날만큼은 화창하기를 바랐다. 새벽에 추적거리는 비를 뚫고 도착하니 나 혼자 2분을 지각했다. 투어에는 나 포함 단 네 명의 관광객이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투어 하는 남자, 그리고 나와 또래로 보이는 직장인 A. 아침이라 조용히 가라앉아있는 차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로 가는 길 휴게소에서 가이드님이 맛보라고 주신 포켓 커피. 초콜릿은 녹아서 여름에는 나오지 않는데 이 빨대를 꽂고 마시는 버전은 이렇게 여름용으로 나온다 하셨다. 빨대를 꽂고 먹어보니 의외로 초콜릿보다 더 맛있어서 아 이거 선물로 사가야지 했는데 웬걸, 완전히 깜빡 잊어버렸다.



치비타 디 반뇨레죠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보여야 할 도시가 안개에 가라앉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체 뭘 보러 온 거죠?



그나마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순간들이 잠깐씩 있어 그 틈을 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계속해서 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저 도시에서 실제로 사는 사람은 16명 정도랬다. 마을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열린 가게도 별로 없었고 올라오는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하긴 이런 날씨에 누가 여기까지 찾아오겠어.



풍경을 찍으러 오는 곳인 치비타 디 반뇨레죠에 안개가 자욱해버리니 정말이지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천천히 다시 마을 밖으로 내려오는데 어? 생각보다 무섭다. 처음 저 다리를 건너서 올라갈 때는 못 느꼈는데 내려가다 보니 엄청난 경사가 느껴지면서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중국 장가계에서도 이렇게 떨면서 가이드님의 손을 잡고 걸어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굴러 떨어지면 비탈길을 따라 공처럼 굴러갈 것만 같았다.



마을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기념 동전을 만드는 기계가 눈에 띄었다. 여행지에서 본 기념 동전 기계에는 대략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제법 디테일이 있는 기념주화같이 생긴 동전을 밴딩머신처럼 살 수 있는 기계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휠을 직접 돌려 내가 넣은 동전을 납작하게 만들고 그 위에 모양을 찍어내는 거라 의외로 손맛이 있는 기계다. 이 기계에서 꼭 하나씩 기념 동전을 만들고 오는 게 내 소소한 여행의 재미 중 하나이다. 나는 가이드님의 양해를 구하고 옆 가게에서 잔돈까지 바꿔오는 수고를 자처하고는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을 동전 위에 새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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