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 20240508
살레르노로 돌아온 나는 한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실은 그전 날에도 한 번 갔었지만 웨이팅이 몇 팀 있어 포기했던 곳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추천 글이 몇 개 있는 집이었다. 파스타 가게 이름이 무려 알 덴테 Al Dente 라니. 간판부터 우리는 기본을 잘해!라고 외치는 것 만 같다. 이 집의 메뉴 역시 QR코드로 봐야 했는데, 나의 e-sim은 실내에선 먹통이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보이지 않고 서버는 바빠서 나에게 오려면 한참 멀어 보였다. 나는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어린 커플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미안한데 나 인터넷이 잘 안 돼서 메뉴가 안 보여!"
영원히 로딩 중인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자 여자애가 흔쾌히 자신의 핸드폰을 내민다. 다만 이탈리아어 메뉴라 설정을 바꾸려고 잠시 버벅거리자 남자애가 메뉴판을 영어로 설정한 뒤 다시 보여줬다. 친절한 두 사람이 핸드폰을 빌려준 덕에 나는 내가 시킬 메뉴를 찍고 다시 돌려줄 수 있었다. 둘은 친절하게도 나갈 때도 나에게 인사까지 하고 갔다. 그들이 해외여행할 때도 이런 친절함을 고스란히 돌려받기를.
내가 시킨 것은 아스파라거스 까르보나라와 코카콜라였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 식당을 추천한 사람이 까르보나라가 너무 맛있다고 했고, 나는 이왕이면 씹을 만한 토핑이 있는 것이 좋아서 아스파라거스 까르보나라를 선택했다. 나의 선택이 어땠냐고?
정말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맛있었던 음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 메뉴다. 너무 맛있어서 그다음 날 다시 왔지만 웨이팅이 너무 길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스파게테리아 Spaghetteria. 알덴테로 삶은 면의 식감도 아삭거리는 아스파라거스도 짭짤한 베이컨도 너무나 맛있어서 그릇을 싹싹 비웠다.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이탈리아 살레르노에 가시는 분들은 꼭 이 가게에 들러보시길.
점심 식사를 다 마친 나는 마을 구경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살레르노는 작은 항구 도시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산책로가 잘 정비된 바다가 보였다. 저 멀리 거대 크루즈가 보인다. 노동절이라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고 하늘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계속 반복하는 중이었다. 제주 도민인 나에게 살레르노의 바다는 안타깝게도 큰 감흥은 없었다. 탑동 바다 같네, 하고 생각했을 뿐.
돌아오는 길에는 슈퍼마켓을 들른다. 한국 마트에서 찾기 힘든 큰 비파가 있는 걸 보니 신기했다. 제주도에선 그냥 따먹을 수밖에 없는 과일이다. 과자류를 대충 훑어보다가, 탄산수가 아닌 생수 Still Water를 찾고 싶었던 나는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생수를 샀다. 탄산수를 싫어하진 않지만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생수 쪽이다. 그러나 저러나 유럽 생수는 참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