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 20240508
열흘 여행에 패기만만하게 단 세 벌의 옷만 가져왔다. 한 벌을 세 번씩 돌려 입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대충 챙긴 건데 문제는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하루 입으면 옷이 땀으로 젖어버리는 데 있었다. 호텔에서 빨아서 다시 입으면 되지 뭐~ 하고 가볍게 생각했으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세탁에 손끝에 거스러미가 자꾸 일어나고 손등이 버스럭거렸다. 피렌체 호텔 옆 빨래방에서 한 번 빨래를 마쳤던 나는 살레르노 와서도 양말을 빨다가 지쳐 결국 코인 세탁소를 찾았다. 호텔 카운터에 먼저 추천해 줄 만한 코인세탁소가 있나 물어보았지만 900m나 떨어진 곳을 가르쳐 주길래, 구글맵에서 세탁소를 검색해 보았다. GO LAUNDRY ROOM. 호텔에서도 가깝고 새로 생긴 듯 시설도 깔끔해 보였다. 호텔 세탁 비닐봉지에 빨랫거리를 주섬주섬 넣고 세탁소로 향했다. 반려동물 전용의 세탁기들이 있는 것도 참 마음에 들었다. 피렌체에서 코인 세탁기를 앞서 써 본 경험으로 기계에서 동전을 넣은 뒤 세탁기 번호를 입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이번에도 어려울 것 없이 캡슐 세제를 넣고 세탁감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세탁기에서 거품이 새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벌떡 일어나며 "It's leaking!" 하고 외쳤고 다행히 밖에 있었던 관리인이 바로 뛰어들어와서 세탁기를 멈춘다. 세탁기 사진을 몇 번 찍더니 나에게 "Do you speak English?" 하고 묻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구글번역기를 써서 이탈리아어에서 영어로 번역해서 보여준다. "너 세제를 더 넣었니?" "응. 캡슐 세제 하나 넣었어." "우리는 세탁기에 세제가 이미 들어가 있어."
응?
그랬단 말이야? 그럼 저게 세제를 더 넣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그런 경고문구는 보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다. 정말 정말 미안해. 쏘 쏘리. 하고 사과하자 그는 흔쾌하게 괜찮아. 저기 옆에 세탁 끝나면 저기서 돌려, 하고 대답한다. 덕분에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일단 빨래는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대체 세제가 미리 들어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주변을 살피자 빨래 순서를 안내해 놓은 곳에 세제와 유연제가 자동적으로 들어간다는 문구가 보인다. 안 그래도 매뉴얼을 읽지 않는 한국인에게 저렇게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않나 하고 자기 합리화를 일단 해본다. 다행히 친절한 관리인은 나를 전혀 책망하지 않았다. 나오면서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는 웃어 보인다. 고마워요 친절한 이탈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