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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25.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11

20240426 - 20240508

Day 6. 오늘의 목적지는 파에스툼 Paestum이다. 카세르타와 같이 한국인 방문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학교에서 필드 트립 온 아이들 혹은 연세 지긋하신 관광객들 단체가 주를 이루는 곳이다. 이 코딱지만 한 도시는 오로지 파에스툼 유적에 의존해서 사는 것 같이 보였다.  


파에스툼 역에서 내려서 앞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직진하기만 하면 된다. 길이 애초에 이것밖에 없다. 날씨는 어제와 같이 흐렸다. 유적지로 가는 길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연약한 접이식 우산은 바람이 조금만 불면 뒤집어지는 탓에 쓸모가 없었다.



유적지로 들어가기 전 살레르노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서 구글맵에서 가리키는 버스 정류장에 가보았지만 우리네 시골마을 버스정류장처럼 아무 정보가 없었다. 마침 돌아다니는 길에서 본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서 버스 시간을 묻자 친절하게 프린트해서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서 준다. 살레르노에서 올 때는 기차로 왔지만 반대로 돌아가는 기차는 2시 30분부터 있었기에 그 중간에 시간이 뜰 것 같아 버스 시간표를 확인한 것인데 놀랍게도 버스 시간도 다를 것 없었다. 기차와 버스가 점심시간을 지키는 걸까. 게다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으니 놓치면 큰일이었다.


파에스툼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지만 놀랍게도 매표소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관광객에게 물어보니 뒤에 있는 뮤지엄 Museo에서 표를 사야 한다고 했다. 뮤지엄에 들어가 뮤지엄과 유적지 통합 티켓을 샀다. 결국 박물관 구경을 하지는 못했지만.



하늘은 어제처럼 비를 뿌렸다가 다시 맑아졌다가 흐려졌다가를 반복한다. 유적지 안에선 드문드문 사람이 보인다. 폼페이보다는 확실히 적지만 그렇다고 한가할 정도로 파리 날리는 유적지는 아니다. 피에스툼 유적지가 유명한 이유는 굉장히 잘 보존되어 있는 그리스 시대의 신전 세 개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홀로 서 있는 아테나 신전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아테나 신전인지도 모르고 봤다. 내가 이 광경을 보고 싶어서 그리스까지 가고 싶었는데 이걸 이탈리아의 남부에서 볼 수 있을 줄이야. 물론 그리스 신전이 남아있는 이유는 당시 그리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들판에 봄꽃이 가득 피어있는 가운데 잔디 깎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들은 내 허리께만치 풀이 자라 있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을 지나 헤라 신전과 포세이돈 신전으로 향한다.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과 군데군데 세워진 유적들, 그리고 그 과거의 흔적 위에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드고 있는 관광객들. 날씨는 변화무쌍했지만 목가적인 풍경은 사실 아주 평화로웠다.



신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둔 것은 아마 포세이돈 신전이었을 거다. 관광객들은 죄다 여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혼자 간 나 역시 주위에 계신 분께 사진을 찍어주길 부탁했으나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그다지 좋지 않다. 혼자 여행의 몇 없는 단점이다.



그토록 고대하던 신전인데도 큰 감흥은 없었다. 사실 파에스툼 유적지에서 제일 기억나는 대목은 그 당시에도 퍼퓨머리 perfumary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지방의 장미가 유명하여 그 당시부터 장미 향수를 팔았다나.



며칠 내내 유적지만 봐서 조금 질린 것도 같았다. 박물관을 볼 필요도 못 느낀 나는 12시 8분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뛰어가는 내 옆을 스쳐가는 버스를 보고 잠시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짐을 들고 느릿느릿 내리는 관광객 두 분덕에 다행히도 버스를 무사히 타고 나는 살레르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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