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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Nov 21. 2024

천덕꾸러기에서 필수불가결의 존재로 탈바꿈

  새로 온 작가팀은 1박 2일 팀에서 일해본적이 없는 작가들이었고 KBS시스템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시스템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꿰고 있는 나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촬영을 하기까지 2주 동안의 루틴과 답사, 회의, 자료조사 등 모든 정보는 나에게 있었고 작가 선배들은 모든 것을 나에게 물어보거나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선배들도 모두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을 해왔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나를 우대해 주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선배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게 되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옥 같았던 출근길도 이제는 마음 편히 출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차도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선배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이때부터는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더욱 자신감도 붙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일해왔던 것이 있으니 일에 대한 감이 생긴 것도 많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선배들의 인정이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정말 이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고 ‘어련히 최선을 보여주지 않았을까’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일하면서 점점 말수가 늘기 시작했고 선배들과 친밀해지면서 점점 예전의 밝았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물론 여기서 발생한 부작용도 있었다.      


  프로그램의 전체 시스템을 알고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하는 것은 쉽지만 막내인 내가 업무분장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기존에 하던 막내일을 그대로 모두 다 하면서 동시에 선배들이 하던 어레인지 업무까지 도맡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선배들이 할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용기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전보다 더 늘어난 업무에 일은 과부하가 되어갔다. 몸은 너무 힘든데 그래도 마음이 편하니까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일을 많이 할수록 선배들은 나를 더욱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더욱 신나서 일했던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나는 거의 전 세계 댄스 배틀 결승에서 흔들어재끼듯이 일을 했다.      


  선배들과의 사이도 돈독해졌고 퇴근 후에 술자리도 잦아졌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나 스스로가 안정이 되어보니 점점 보이는 것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위해 일을 했다면 이제는 내가 조금 더 주도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프로그램의 전체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내가 하는 작은 말과 행동이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프로그램의 기획이나 구성에 대해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온전히 내가 맡아서 하는 소품의 제작이나 장소, 답사 등에 대해서 만큼은 내 의견을 조금 더 피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길었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태풍이 지나간 후 나는 더욱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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