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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02. 2024

시가 지나가는 자리

1. 구체란 무엇인가요?


피상적이다, 관념적이다, 라는 말을 듣는데 이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계세요. 저도 시를 처음 썼을 때는 이 말이 잘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사랑, 우정. 믿음, 이런 말들이 관념적인가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을 뿐이죠. 저처럼 고민을 하시는 분들과 저의 경험을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추억을 실은 버스가 나의 마지막 종착역에 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이 문장에서 관념적인 부분은 어디일까요? 금방 아시겠죠. '추억을 실은 버스'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오실 거예요. 이 문장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요. 


황금벌판 풍요로움에 홀쭉한 고향길을 말없이 걷는다.

이 말도 '황금벌판'이란 상투어를 그대로 쓰고 있네요. 상투적이란 말은 클리세라고도 하는데 새로움이 없는 표현, 낡아진 표현을 의미해요.


마음은 이미 바다와 들판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에 백지장처럼 깔려버렸다.

여기에서도 작은 마을, 소박한 집이 나오지요. 독자는 이런 표현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요. 농촌의 풍경을 나타내는 정형화된 표현들이죠. 이제 가슴을 찌르고 머리를 도끼로 찍는 듯한 새로움을 줄 수는 없겠죠


이곳이 나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도 익숙해요. 비둘기와 파랑새는 너무 많이 나오는 클리세예요. 시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새로움이 없는 시는 죽은 영혼이라고 말해요


그럼, 어떤 표현이 구체적인 표현일까요. 얼마전 작고하신 신경림 시인님의 시를 살펴볼까요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구체적인 장면이 연상되지요. 무대가 끝나고 문이 얼룩진 얼굴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분위기가 머릿속에 상상되죠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어때요? 바로 장면이 그려지지요. 농무패를 따라붙는 쪼무래기들과 처녀 애들, 기름집 담벽 등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어요.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지요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농촌의 힘든 실상이 나와 있어요. 농사를 짓는 일이 낭만적인 아닌 이유죠.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이니까요. 비룟값도 나오지 않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하는 한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거죠.


피상과 구체를 나누는 기준은 따로 없어요. 그냥 아는 것이지요. 보고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구체적인 풍경과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게 좋은 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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