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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02. 2024

시가 지나가는 자리

2.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하나요?


시는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시뿐만 아니라 수필,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목을 다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처럼 여기지거든요. 시는 처음 들어가는 문장에서 시작해 마지막 문장까지 중요하지 않은 행이 없어요. 모두 중요한데 어떻게 달아야 할까요. 시인들이 소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1. 시행의 첫 부분을 시의 제목으로 삼는 방법
2. 시에서 중요한 시어를 시의 제목으로 삼는 방법
3. 시어를 아우르는 제목으로 제목을 삼는 방법(시의 내용을 포괄할 수 있는 제목)


일반적으로 이렇게 세 가지를 제안하는데 이것을 꼭 지킬 필요는 없어요. 그냥 일반적이라는 거지요. 시에 따라서는 엉뚱한 제목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어요


염낭거미가 최후의 집을 짓는다
죽을 날 받아놓은 어머니가 목수에게 관을 주문하듯
촘촘하게 염낭을 짓는다

집을 다 지으면 몇 날 며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먹이 사냥도 하지 않은 채
염남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

그렇게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미는
젖꼭지 없는 맨가슴을 원망하며
새끼들의 입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차례로 제 가슴에 꽂는다


김남권 시인님이 '염낭거미'라는 시의 일부분이에요. 첫행이 제목이지만 작품 내용이 전반이 염낭거미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제목을 정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의 내용을 아우르는 제목이지요.


너네는
똑똑하잖니?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렴

단단한 벽에서 멀찍이
빨간 방에 몰려
귀를 쫑긋
까만 씨들이 오들오들

똑똑,
잘 익었나요?

아니요!


-김성진 시인님의 '잘 익었어요?' 일부분이에요. 전체 시를 가져오고 싶은데 저작권이 있어서 가져오는 것이 피하고 있어요. 시의 제목과 내용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지요. 제목도 시의 일부분이에요.


새로 문을 연 마트 앞에서
이른 아침부터
춤을 추는데

음악이 나를 흔드는지
혓바람이 나를 흔드는지

(중략)...


해 저물도록
바람만 먹고도
벌떡벌떡 일어나
춤을 춘다


-최치원 시인님의 '스카이 댄서'라는 제목이에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 공기에 따라 춤을 추는 홍보 인형을 본 적이 있죠. 그 인형을 '스카이댄서'라고 비유를 했어요. 튜브맨, 에어댄스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어요. 

그날도 비가 내렸다
생각의 사선처럼 빼곡이
야윈 책들이 자리 잡은
인적 드문 서가 한쪽

(중략)


죽음처럼
탄생처럼
비슷한 마음이 창가의 물결을 따라
조용히 다녀간 그날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립던 시절
자꾸 나의 눈빛을 빌려갔던

오래던 행간에서 듣던


허민 시인님의 '도서관 창가에서 듣던 빗소리' 를 가져왔어요. 시의 내용은 제목을 풀어놓고 있죠. 이처럼 시의 첫 행을 제목을 삼기도 하고 시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시어를 제목을 삼기도 하고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제목을 삼기도 한답니다. 어떤 방법이 좋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시인들은 세 번째 방법이 시의 긴장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의 제목을 정해놓고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시의 내용이 바뀌면 시의 제목도 바뀐답니다. 다른 시인님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딱, 정해진 규칙은 없는 거죠. 

제목과 별개로 시의 마무리는 어떻게 할까요. 시의 마무리는 시를 들어가는 부분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에요


 시를 명사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 시기가 있었다고 해요. 여운을 준다는 의미였다고 하네요. 지금도 이 방법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의문을 제기하면서 끝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제언하며 끝내는 시도 있어요


어떤 시는 아쉬움을 남겨놓기도 하면서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기도 한답니다.


마무리에서는 새로운 비약이 일어나기도 하고 수미쌍관의 방법을 이용하여 처음의 내용을 받아 글의 통일성과 안정감을 주기도 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힘아리 없이 끝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독자에게 뭔가 의미를 던져주지도 않고 중얼거리듯 끝내버리면 배신감이 들겠죠.

시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뭔가 있는 듯 질질 끄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긴장이 풀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욕심이랍니다. 시에서는 의미 없이 쓰여지는 시어가 없답니다. 그래서 사족을 붙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족을 다는 순간, 시는 맥이 풀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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