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하루키가 추천했던 그 음식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커요.
뭐죠? 매일 먹는 데 줄어들지 않아요.
찌개, 전, 강된장, 구이... 이제 뭘 해야 되죠.
사지 마, 살려죠.
쿠팡에서 크고 아름다운 두부 한판을 보았다. 후기를 보며 킥킥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문 앞에 커다란 돌이 놓여있었다. 스펙은 찌개용, 3Kg.
나는 솔직히 말하면 열광적인 두부팬이다. 맥주와 두부와 토마토와 풋콩과 가다랭이 다짐(관서 지방은 갯장어 같은 것도 좋다)만 있으면, 여름날의 저녁나절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천국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씀, 문학사상사)의 일부
고등학교 때 두부에 빠진 것은 하루키 때문이었다. 친구와 재즈에 빠져 있었고, 시뻘건 말보로를 태우며 일본 애니를 보고, 맥주를 마시며 파퓰러 사이언스나 물리학 책을 보며 퀘이사 따위를 이야기하던 아웃사이더였다. 믿기지 않지만 대학을 갔고, 사람 만나는 데 바빠서 두부와는 잠시 멀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두부를 다시 만났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최고 가는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 생강과 나물 최고 가는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 김정희 필 대팽고회, 보물 제1978호, 조선 1856년,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두부가 곧 행복이라니. 추사까지 왜 이러실까. 한일 합작으로 두부를 예찬하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마트에 갈 때마다 다시 두부를 샀다. 한모 또는 두모. 생으로도 데쳐서도 먹고. 지져서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고, 뭐가 없으면 슬며시 나와 안주가 됐다.
뜨거운 김치찌개에 온몸을 투신하고, 강된장이나 고추장두부장에 몸을 으깨며 헌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팡에서 온 3kg는 너무 많았다. 밤새 냉장고에서 뭘 먹고 자라는 건지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세끼를 두부로만 해결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 나를 가르면 피 대신 두부가 나올 것 같았다. 일주일 가까이 사투를 벌이고 나서야 다 먹어 치울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찬란했던 두부해방일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