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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범준 Jun 12. 2024

한낮의 공포 체험

“안녕하세요. “라고 했지만, 전혀 안녕하지 않았다. 꼭 가야만 했지만, 사실 이 문을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망설이고 망설이다 더 늦어지면 안 될걸 알기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

’아... 무슨 신분증까지 확인하지 ‘ 하면서 속으로 투덜댄 듯했지만, 이미 그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나는 마치 평생을 꿈꾸던 엄청난 미인 앞에 선 숯 총각 같은 표정으로 누가 봐도 권유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명령처럼 굴복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라는 명령을(분명히 권유였다) 듣고 난 후 난 등받이에 등도 대지 못한 채 소파 끝에 걸터앉아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게 공포스러운 자리와 기다림이 또 있을까. 그 특유의 쌔한 냄새 하며, 주변 사람들 또한 엄청난 긴장과 위축 속에 모두 다 어깨가 하늘로 솟아 있을 정도였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난 그 공포스러운 내실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길목에 언뜻언뜻 보인다. 사람들이 누워 있고 하늘을 보고 있다. 나 또한 저들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채 내 모든 권리를 박탈 당한채 굴복하여 복종하게 될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럴게 분명했다.

“사진 촬영 먼저 하시겠습니다.”


난 영문도 모른다. 대체 사진 촬영을 왜 하라는 건지도 모르지만 일단 찍고 본다. ‘왜 찍어야 하죠? 무엇 때문이죠? 뭐가 잘못된 건가요?‘ 따위의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그들의 명령에 굴복하고 있다. 순순히 명령대로 사진 촬영을 한 후 난 자리로 안내받고 내 모든 짐을 맡긴다. 한 여자가 다가와 내게 어떤 연유로 온 지 설명을 요구한다. 이 여자에게 내가 설명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선택의 여지없이 굴복하고 만다.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다른 남자가 온다. 그도 내게 설명을 요구한다. 아... 같은 질문에 답을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순순히 그의 질문에 같은 대답을 상세하게 또다시 대답하고 있다. 잠시 후 나이 든 또 다른 남자가 온다.

“입 벌리실게요.”


순순히 입을 벌리고 난 내 온몸을, 내 영혼까지 그에게 내맡긴다. 며칠 전 난 캐러멜을 먹다가 오른쪽 아래 금니가 덩어리째 빠져 캐러멜 안으로 합체했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난(왜 아프지도 않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입안의 캐러멜 안에 딱딱한 게 있길래 더 달콤한 무엇인가가 있나 보다 하고서는 그 금니를 머금은 캐러멜을 다른 쪽으로 옮겨 씹다가 그만 왼쪽 윗니도 일부 깨져 버린 상황이었다. 나름 과잉 진료를 받을 것이 두려워 여러 검열을 통해 이곳에 왔지만, 사실 어찌 대처할지도 모르고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른 채 의사의 말만 믿어야 할 상황임은 분명했다.

“오른쪽 아랫니는 임플란트를 하셔야겠습니다.”

‘임플란트! 임플란트라니. 내가 지금 몇 살인데 벌써부터 생니를 뽑아내고 내 아래턱에 나사를 박아서 의치를 박는단 말인가!?‘라고 속으론 외치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사기꾼 같은 의사 놈이 자신의 병원에 이득을 챙기기 위해 내 멀쩡한 생니를 뽑으려는 건 아닐까? 순간적으로 옳은 판단을 해보겠노라고, 엄청나게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떠올리려 쥐어 짜보지만 이에 대한 대처 매뉴얼은 나의 뇌 그 어느 곳에도 없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과연 해도 되나? 그나마라도 살아있는 뿌리를 살려서 이를 재건축해야 정답이 아닐까? 이렇게 이른 나이에 의치를 박아도 되는 것일까? 별의별 생각을 다해보고, 가격을 물어보고 과연 이 가격이 합리적인 가격일지 의심해 보지만, 다시 일어나서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며 흥정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대로 마취 주사를 맞았고 잠시 후 얼얼해져 오는 잇몸에 마취주사를 한방 더 맞아 내 볼과 턱에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리 옮기실게요.”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무대를 향하는 발걸음 보다 긴장되었고, 어떤 프로젝트의 PT를 시작하기 전보다 두려웠다. 나는 같은 손 같은 발을 내밀며 좀 더 안쪽 자리로 이동해 천장을 보고 동그란 구멍이 난 녹색 수건의 구멍에 입을 빼꼼 내어 뒤집어쓴 채 처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누워 있었다. 어렸을 때 사랑니가 잘못 나서 잇몸을 찢어 내고 질기디 질기게 내 잇몸에 붙어 있던 사랑니를 발치하려고 바둥거리며 심지어 내가 누워있던 의자 위에 발까지 올려가며 내 주둥이를 붙잡고 온 힘을 다해 내 치아를 뽑아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에어컨으로 온도가 낮아 으스스했던 건지 그때의 회상으로 소름이 돋은 건지 분명 한기를 느꼈음에도 내 겨드랑이는 축축하게 젖어왔다. 제발 오늘의 발치는 순순히 이루어지길 온갖 신들께 기도해 본다. 의사 선생님은 연신 나보고 긴장하지 말라고 별것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형식적이고도 다정한 척하는 사무적인 말투는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드르륵드르륵 내 생니는 갈리고 있었다. 사진 상으로 봤을 때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10% 정도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잇몸 안에 있던 치아의 뿌리였는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겉에 남아 있는 그 부분을 반으로 쪼갠 뒤 반반씩 뽑아내고 중간중간 잘린 부분을 뜯어 낼 거라는 식으로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었다. 물론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게 될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술하는 매 순간 나는 모든 과정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더욱 공포스러웠다. ‘드르르르르륽‘ 아... 내 치아를 반으로 쪼개고 있는구나.

“물 나오실 겁니다.”

‘거짓말!!! 피잖아!!!!’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작은 전기톱으로 내 남은 치아 윗부분을 반으로 자르며 내 잇몸도 함께 찢어지고, 내 입안에 피가 온 사방에 튀어가며 줄줄 흘러내리는 상상을 한다. 마치 내 입안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내 눈에 영사해 주는 느낌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 미칠 것 같다.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빨리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상상을 하자! 하지만 온통 스트레스뿐이었던 요즈음의 내 삶에선 아름답고 행복한 상상이라고는 없었다. 심지어 좋아 그래 이렇게 내 잇몸의 작은 경동맥을 건드려 그냥 피를 콸콸 쏟고 죽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야 이대로 죽는 다면 너무 고통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될 거야. 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사랑했던 순간을 상상해 보자. 아... 쥐어짜본다. 안된다. 아... 그럼 아주 야한 생각을 해보자. 극단적인 상상! 도대체 어떤 생각도 이 공포스럽고 적나라한 상황을 이겨낼 만한 상상은 없다. 사실 육체적으로 아프진 않았다. 왜냐하면 난 마취되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난 사실 그 어떤 육체적인 고통도 느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적나라한 상상을 통해 엄청난 긴장감으로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심지어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처단하는 상상까지 서슴지 않았다. 잠시 후 모든 수술이 끝나고 의자를 일어나 의사와 간호사는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가버렸다. 수고했다는 말을 뒷머리로 하고서는 최소한 악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 이 엄청난 무대를 뒤로 하고서는, 이 어마어마한 전투를 함께한 전우애 또한 나누지 않고서 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내 초라한 카드 한 장을 꺼낸 채 너털너털 접수처로 걸어갔다.

<주의 사항>.

.......... 엄청난 긴장감으로 인해 몸살이 올 수 있으니, 필히 휴식을 취해 주세요.


주의 사항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들도 아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고통이 없더라도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육체적인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모두가 같은 것이다. 나만 이렇게 괴로운 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결국 인간들은 모두 비슷한 공포와 긴장감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저 그들의 상상을 내가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난 내 상상력만이 오롯이 나만의 삶의 무게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때로는 스스로를 지옥으로 내몰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순간순간 지옥을 만드느냐, 천국을 만드느냐는 본인의 선택일 텐데, 방금 난 지옥을 만나고 와서인지 지금 이 순간이 꽤 평온한 느낌마저 든다.

“100만원입니다.“

평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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