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
독서를 크게 두 가지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인문학과 소설, 자기 개발서 같이 자세하게 나눌 수도 있겠지만, 저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는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입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때로는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한 잔소리 같은 자기 개발서 같은 경우도 정보를 얻기 위한 책 정도로 구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철학적 의지를 내포한 책들입니다. 그 깊이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단지 철학적 고찰만을 다룬 철학서들과 이러한 인생의 철학들을 이야기로 녹여낸 소설과 시 들이 바로 두 번째 독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에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들이 꽤나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내용도 공감을 하기 힘든 내용들 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상상력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내용 이라던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하기에 더욱 반감만 살뿐이었습니다.- 아니면 주로 뇌의 활동이 원활 해 진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더군요. 사실 모두 다 맞는 이야기 일 수는 있겠지만, 확실히 무언가 정확하게 ‘아! 이래서 책을 봐하는구나!!!’ 하며 와닿는 내용들은 아니었습니다. 만화책을 보거나, 아니면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충분히 상상력은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독서를 꼭 해야 할 만큼 정확하고 독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상을 보고 지식을 습득하고, 가만히 시야에서 얻어지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굉장히 빠르게 휘발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마치 걷기나 달리기처럼 내가 능동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행위처럼 하나하나 글자를 능동적으로 읽어 내어 그 정보를 이해하고 저장하려 하는 행위는 더욱 오래 뇌에 각인되며, 어떠한 습득의 행위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의 기억에 정보를 습득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저 단순히 스쳐 지나가듯 정보를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그 지식과 정보에 대해 알아내어 담는다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독서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첫 번째 독서의 경우 이러한 능동적인 지식의 습득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잔소리처럼 빠르게 휘발 되게 마련입니다. 그저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자극과 잔소리로 위안을 삼고 의지를 성냥불처럼 순간적으로 불태우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다릅니다. 작가의 인생에서 오는 큰 경험을 토대로 우리에게 차곡차곡 능동적 행위로써의 경험을 주입시켜 줍니다. 아주 간단한 인생의 지혜도 그저 읽고 휘발되어 버리면 아무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마치 ‘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그리스 비석에 써져 있는 명언처럼 그저 ‘아 그래 난 나 자신을 좀 알아야 돼!’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어떠한 철학적인 사유에 대한 대단한 메타포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그저 작은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다는 것입니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읽으며 그저 그 책의 명언들과 그 책의 구조를 암기하여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대체 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는지 그 생각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해하기 위해 <선악의 저편>을 펼쳐 들고 <도덕의 계보>를 읽고, 이 난해한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펼쳐 들고 다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 가며, 대체 왜 이들은 이렇게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장황한 생각들을 글로 남겼을까를 생각해 보면, 마치 소설을 쓴 작가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알아 가는 혹은 알아야 할 이야기는 단순히 암기가 아닌 그 삶에서 주는 이해의 골을 더 넓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어떠한 정보를 주는 책 보다 철학서와 소설과 시에서 주는 메타포가 우리의 인생에서 더욱 대단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그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본능적인 욕망 안에서 욕구하는 지식의 습득을 위한 독서가 아닌 진정한 내 안의 풍요를 위한 독서와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