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씨를 삼키고 나서 새삼 알게 된 것-
해마다 자두가 제철인 여름이 되면 오래전 경험했던 한가지 에피소드가 생각이 납니다.
그해 여름에 노인 교실을 맡아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성 어르신들로 구성된 합창반에서 발성도 가르쳐 드리고, 소프라노와 알토 파트를 나누어 노래도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한 번 노래 교실에 나오시는 일은 단순한 취미활동을 넘어 즐거운 나들이입니다.
곱게 화장하시고, 옷장에 정갈하게 걸어두었던 외출복을 입고 교실로 들어오시는 모습은 화려한 외출 그 자체죠. 연이어 노래 3곡을 함께 부르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을 때 앞쪽에 앉으셨던 할머님 한 분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과일을 좋아하시나요?”
(그때가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이름을 말씀드렸습니다.
“네. 저는 자두를 좋아합니다. 어려서부터 좋아했습니다”
제게 질문을 하셨던 할머님은 대답을 들으신 후
“아, 선생님은 자두를 좋아하시는구나”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합창하며 남은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합창반 시간이 되었을 때,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님들의 화려한 나들이 입장이 교실 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분 한분 들어오시는 할머님들의 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있었고 그 비닐봉지는 제가 서 있던 교탁 위에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쑥스러운 손길과 함께 쌓인 비닐봉지가 일곱 개,
그 안에는 모두 자두가 들어있었습니다.
할머님들은 자두를 손수 몇천 원씩 봉지에 담아 사 오시고 서로를 바라보시며 웃으셨습니다.
“당신도?”
“ 아니, 거기도 사 온 거요?”
지난 수업 시간에 제가 자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할머님들 자두를 사 오신 것입니다.
아마도 본인 혼자 사 왔을 것으로 생각하셨다가 막상 너도나도 자두 봉지를 들고 오시는 다른 이들의 손길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셨습니다.
수북이 쌓인 자두를 보며 감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씻어서 다 같이 나눠 드시자고 했더니 한사코 사양하셔서 하는 수 없이 고마운 마음과 함께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주말에 행복한 마음으로 자두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자두를 먹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저는 주로 입속에 한 번에 넣어서 입안에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베어 먹기를 즐겨합니다.
TV를 시청하며 비스듬히 누워 새콤달콤한 자두를 먹고 있었죠.
그런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두를 먹다 그만 자두 씨를 꿀꺽 삼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름모꼴에 미끈미끈한 자두 씨가 목구멍을 넘어 위로 들어갔을 생각을 하니 큰일 났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어쩐담. 오늘은 토요일이고 병원문은 닫았을 것이고 응급실로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될까?
뱃속에서 씨가 위를 찔러대면 구멍 나지 않을까?’
불안과 걱정, 별일 아닐 것이라는 자기 위안, 그리고 다시 불안이 반복해서 올라왔습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마음과 괜찮을 것이라는 마음이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조언받기로 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에게는 만능 박사 전문 조언가가 곁에 있죠.
핸드폰을 열어 초록색 검색창에 저의 고민을 입력했습니다.
사실 그 순간도 망설였습니다.
‘세상에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자두 씨를 삼킬까?
그것도 어른이 말이야.’
그 바보 같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 한심스러웠고, 더군다나 인터넷 창에 고민거리라고 올려봐도 이런 유치한 사안은 검색조차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자두 씨를 삼켰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검색창에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동안 비슷한 사연들이 누적되어 있는 글들과 답변 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헐.. 자두 씨를 삼키고 말았어요.ㅜ”
“자두 씨를 제가 삼켜 봤어요. 죽지 않나요?”
“자두 씨가 배로 들어가 버렸어요.”
심지어는 “우리 집 강아지가 자두 씨를 삼켰어요. ㅠㅠ
대처법은 있나요?”
그때 저는 한가지 진리 같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구나. 거기서 거기구나!'
이 사건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보기 드문 사건 같아도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거나 이미 겪었던 일이구나.
어떤 일이 유독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해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더군다나 나에게만 이 불행한 일이 닥쳐왔다고 생각하면 더욱 우울해집니다.
‘아무도 모를 거야 내 고통은’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나 말고 있을까. 나는 너무 불행해’
‘다른 가정은 순탄하게만 사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 무슨 저주를 받은 것일까?’
정말 다른 가정은 별일 없이 잘 사는 것으로 보이세요?
가정 상담, 부부 상담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세상에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남부러운 것 없어 보이는 가정도, 저런 아들, 딸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을까? 보이는 가정도 한 발짝만 가까이 들어가 보면 남모를 아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부르는 솔로몬은
‘해 아래 새것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는 이 세상에 온전히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기억하세요. 혼자만이 아닙니다.
인생이 거기서 거깁니다.
사람 사는 것 비슷비슷합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어떤 사람은 이미 겪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겪고 있고….
어느 인생에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그날 제가 삼킨 자두 씨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제가 인식하지 못했던 어느 순간에 배출된 것 같습니다.
아직 저는 살아 있고,
뱃속에서 자두나무가 자라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가족 때문에 힘드실까요?
어쩌겠어요. 내 가족인데….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인연의 끈을 그냥 내려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뭐라고 할 자격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어느 구석에서는 이미 그 일을 지나 지금은 옛날 얘기하며 사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해결했던 방법도 참조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나 기웃거리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가는 것도 지혜일 것입니다.
또하나의 선물 같은 발견은 의외로 주변에 나에게 도움을 주는 손길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겁니다.
p.s. 자두씨를 삼켰던 제 경험은 그때 당시 주관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가장 안전한 것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료받으시는 것이 안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