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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온유 Aug 01. 2024

익숙함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들

-원래부터 있었던 그것-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낯설고, 검증되지 않은 그것보다는 눈에 익고, 손에 익고, 입맛에 익숙한 것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줍니다.     

생전 처음 보는 곳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여행을 떠나 모험을 즐기다가도 일정을 마치고 내가 사는 동네, 내 집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을 때 그 안도감이 있죠.

눈으로 봐왔던 간판이나 골목이나 아는 이웃 사람의 얼굴이라도 볼라치면 마음을 졸라맸던 긴장의 끈이 탁 풀리면서 ‘돌아왔구나!’ 크게 숨이 쉬어지는 느낌말입니다.     


그렇게 또 일상에서 시간을 쌓다 보면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고 낯선 곳이 그리워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생기기도 하니 우리 마음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낯선 곳으로 가면 익숙한 곳이 그립고, 익숙한 곳에서 지내다 보면 낯선 곳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치가 무슨 조화인지요.     


낯선 곳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일상의 장소에서는 나를 감동하게 해 줄 요소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 아는 곳, 다 아는 사람, 다 아는 일들….

너무 다 알아서 더 이상 가슴이 뛸 일도 없습니다.

흥미도 없고 마음을 쫄깃하게 만들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여행도 가는 것이겠지요.

그곳에 가면, 이곳에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 떠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미 익숙한 내 삶의 터전들을 얼마만큼 아는 것일까요? 

더 이상 내 마음을 뛰게 할 소재들은 없는 것일까요?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 건물 옥상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그날의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렀기 때문이지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     

그래서 눈에만 담아 놓기 아까워서 핸드폰으로 찍어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날 아침에 제 눈을 푸르게 물들였던 하늘을 혼자 보기에 아까워 지인들에게 사진을 나누어 보내줬습니다.      

카톡으로 하늘 사진을 전송하고 덕담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푸르른 하늘처럼 오늘 하루도 파란 꿈이 펼쳐지길 바랍니다.  -전온유 드림- ’     


그런데 제 사진을 받아본 사람들의 답장 메시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습니다.


“대박이에요. 어찌 그 넓은 하늘에서 하트 모양을 찾았데요?”

“와,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 하트라니…. 정말 감사합니다.”

“헐 하트 대박….”     

저는 파란 하늘을 찍어 보냈는데 하트 얘기뿐이었습니다.

‘무슨 하트? 이 사람들이 볼 건 안 보고 도대체 뭘 본 거야?’

의문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제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았습니다.  

   

볼 건 안 본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찍은 하늘 사진 중앙에 하얀 구름이 하트 모양으로 떠 있었습니다.

‘아니 이걸 나는 못 봤던 거야?’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계단 하나만 올라가면 옥상입니다. 평소에 그곳에서 자주 하늘을 봤었습니다. 

오늘 아침도 역시 어제 본 그 하늘이었지요.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유난히 푸르렀다는 것.

그런데 거기에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하트 구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익숙한 삶의 환경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너무 잘 알아서, 너무 눈에 익어서 자칫 발견되지 않았던 소중한 것들 말입니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라는 시처럼 오래 본다는 것, 자세히 본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안다는 편견을 내려놓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푸른 하늘 바탕에 하트 구름은

 원래부터 거기 있었습니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어쩌면 그 시각 같은 하늘을 보았던 다른 누군가는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가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상담소에 와서 부부 상담, 가족 상담을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순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을 내 배우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서운해했다는 것도 몰랐었고,

배우자의 이해 안 되는 행동들이 사실 외롭고 힘들다는 절박한 표현이었다는 것도 몰랐고,

자녀들의 말투가 거슬렸는데, 실상은 나 좀 봐달라는, 힘들다는 호소였다는 것도 몰랐고, 

모르는 것투성이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일과를 마치고 퇴근 후 들어서는 익숙한 집안은 어제의 내가 퇴근했던 그 집이 결단코 아닙니다. 

분명히 다릅니다. 

날짜도 다르고 요일도 다릅니다. 

수도계량기 수치도 어제와 분명 다릅니다. 

내 배우자도 어제보다 나와 하루를 더 살아낸 사람입니다. 내 자녀도 하루치만큼 성장한 사람입니다.

공기 한 줌도 어제 마셨던 것과 다릅니다.

어제와 같은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익숙함으로 인해 소중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미숙함입니다. 

늘 보던 하늘에  '하트'가 이미 오래전 부터 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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