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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잔 Oct 11. 2024

장흥이야기  그리고 한승원 그리고 한강

윤슬로 반짝이는 탐진을 보고 출근했다가   강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삼 년 전 호텔로비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한강의 책 "식주의자"를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갔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끝까지 읽고 나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재밌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외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았다.



대신 지난봄에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소설 "초의" "다산"


그리고 "추사" 세 권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한승원 작가의 고향은 장흥이다.



고등학교 때 장흥의 여학생과 펜팔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학교 생활에 관한 것과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녀는 편지에 장흥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장흥을 흐르는 강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장흥 문화원에 취직했다.


아마도 장흥 문화원 창가 너머로 그 강 탐진이 흘렀던 것 같다.



"윤슬로 반짝이는 탐진을 보고 출근했다가


 강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집으로 가"


그녀는 은유를 아는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나는 '윤슬'이라는 단어를 몰라 사전에서 찾아봤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며,


“고향 땅의 봄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은 아름답다.”와 같이 쓰입니다. - 사전-



그해 겨울  그녀는 장흥에 놀러 오라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은 12월 대학입학시험도 끝났으니


그녀를 소개해준 친구와 함께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사실 누나 집에 완도고


당시 김제에서 완도에 가려면 광주에서 강진을 거쳐


가야 했고 강진에서 장흥에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해 겨울이 가기 전에 완도 보길도 누나집에 갔었다.



-그해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 남겨놓았다.



https://www.farmmate.com/board/view?id=custom_bbs2&page=28&seq=9068



아마도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고 연락이


쉬었다면 강진에 가는 길에


장흥에 가서 그녀가 좋아했던 탐진강을 함께


걷고 혹시 시간이 남는 다면


그녀가 일 하는 장흥문화원에  가가


탐진강의 윤슬이나 노을을 함께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몰랐다.


묻지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대학에 간 이후에는


학생운동에 빠졌고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 해 다시 봄이 왔을 때


그녀는 나에게 아주 긴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편지엔


당신 인기가 있었던 서정윤의


시를 정성스럽게 필사해 보내주었다.


다른 내용은 없었다.



홀로서기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졌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아마도 그녀는 나를 만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글씨를 아주 예쁘게 써서 보내 주었고


정성이 가득했지만 나는 역시 그녀를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10여 년 전 장흥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었다.


봄이었는데 남쪽의 장흥엔 눈이 내렸다.



나는 풀코스를 신청했고 탐진강에서 출발해


긴 터널을 하나를 너머 42.195km 달렸다.


눈이 내리는 장흥에 추위는 손과 발을 꽁꽁 얼게 했다.



나는 달릴 때 추운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장갑과 모자라도


쓰고 달릴 때 이야기기고 눈 내래는 날에 맨손으로 달리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급수대 물은 모두 얼어 버려 마시기도 어려웠다.



겨우겨우 지옥 같은 추위와 꽁꽁 얼어 버린 몸을 끌고


지나왔던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다시 눈이 멈추고 해가 떴다.


그리고 눈이 그친 태양은 탐진의 물 위에 아름다운 윤슬을 보여 주었다.


불현듯 그녀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저기 보이는 어느 건물 창가에서 이 윤슬을 보고 있었겠구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고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그날 어디


장흥의 거리에서 만났어도


우리는 서로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시를 쓰거나


소설이라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 윤슬이라는 단어를 편지에 쓸 만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살고 있던 그녀가 행복하기를 빈다.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니


이 번 기회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더불어 이젠 한승원의 딸이 아니라 한강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한승원작가의 소설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봄에 읽은 소설 3권 모두 재밌고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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