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공정여행을 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을 많이 이루었다.
헤이리 때까지만 해도 직접 내린 공정여행의 정의만 가지고 뭐든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 결과 1차 심사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고 어떤 여행을 해야 하는지 정말 막막해졌다. 피드백 중에는 내가 말하는 자연, 사회와의 유대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있었는데 모르겠다는 것이 당연했다. 나조차도 그런 상호작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습지를 다녀온 이후로 글을 쓰다가 생각했다. 이대로 이도저도 아닌 여행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조금 고민하다가 쓰던 시트와 글은 전부 버렸다. 글의 소재를 찾기보다는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처음에 문제 삼았던 불편함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를 깨끗이 지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전환점이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이후 집에 돌아와 새로 쓴 글에는 이전과 달리 감상과 생각이 마구 들어가 있었다. 덕분에 수정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쓸 거리조차 없었던 이전보다는 발전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정리할 때조차도 즐거워져서 기행문 작성의 만족도 또한 올라갔다. 조금만 더 성실해지면 봐줄 만한 글이 나올 것도 같았다.
갈피를 잡은 것은 좋다. 그러나 졸업작품으로서 태어난 이 글은 졸작이 끝남과 동시에 내게 다시 한번 과제로 남게 된다. 여행을 하면 느낀 감상, 정리한 생각 등은 단순히 글로 정리한다고 내게서 사라지는 놈들이 아니었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눈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 눈 때문에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제 n의 눈이 얼마나 많을까. 그 눈들은 또 내게 무엇을 보도록 할까. 따로 가지려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공정여행 좀 했다고 마치 원래 있었던 것 마냥 뻔뻔하게 내 사고를 휘두르는 것을 느끼자니 기가 찼다. 이 눈이 보는 이물감에 의해 나는 또다시 다른 고민을 안게 될 것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느낀 이물감으로 고민을 얻고, 그 고민으로 졸작을 시작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구나. 그러면 처음에 내게 여행의 이면을 보여준 눈은 무엇일까? 이대로 배움을 받아들인다면 다른 눈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눈을 얻고 있었지만 이제야 의식하게 된 것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 조금은 못마땅하고 한편으로는 고대하는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