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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공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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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아 Aug 29. 2024

[프롤로그]_공정여행

20240420

어릴 적부터 여행 가는 것을 좋아했다. 가벼운 외출보다는 아주 멀리 나가 새로운 공기를 마시는 게 더 좋았다. 바다가 좋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바다는 경관에 채 사로잡히기도 전에 아예 낯선 내음이  느껴진다.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것이 실감 나면 비로소 여행의 설렘이 차올랐다.

그러나 바다 여행이 마냥 좋았던 것도 이제는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해변에 즐비하게 세워져 돈을 받아내는 5만 원 값의 파라솔들, 손님 대신 바닷바람만을 맞는 색 바랜 민박과 그 맞은편에 높게 올려진 오션뷰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경치가 좋다 할 만한 곳에는 항상 카페나 캠핑장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꼭 쓰레기가 나뒹굴었기 때문에 종량제 봉투로 이루어진 산이나 오물로 막힌 샤워부스 등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의식하고 생겨난 불편함은 바다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행지를 방문할 때에도 따라붙게 되었다. 물을 마시고 나면 병 밑바닥에는 항상 나머지가 고이지 않는가. 내가 느낀 감정은 이 남은 물을 볼 때와 비슷했다.

돗자리를 편 가족이 쓰레기를 얼마나 버려두고 일어나는지, 시장의 음식들이 바가지는 아닌지, 호텔의 일회용 비누 몇 개가 버려질지 생각했다. 누군가 여행에 대해 물어도 즐거웠다는 감상 외에는 들려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이러한 고민을 넌지시 던지면 ‘어린애가 벌써부터 돈 걱정이냐, 너는 신경 쓸 것 없다’는 식의 답만 듣는 것이다. 함께 온 여행에 불평불만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 바다와 여행을 좋아하고, 맛있고 깨끗한 것도 선호한다. 머리가 조금 컸다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뿐이었다. 이후로도 계속 낭비와 소비로만 구성된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관광객은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하며 피해를 입고, 지역 사회는 발달한 관광에 밀려 경제 회전에 피해를 입었으며 자연은 몰려든 관광객들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악순환을 끊어내고 사회와 개인과 자연 모두가 건강한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형태의 여행이 필요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문득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시간에 처음 배웠는데, 여행자와 관광지가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했다. 이만큼 적절한 해결책이 또 있을까. 방문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곳의 자연을 아끼며 즐길 줄 안다면 비로소 건강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하여 졸작을 구체화하며 공정여행을 내 나름대로 다시 한번 정의 내렸다. 지역과 방문자가 평등한 유대를 형성하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과정에 있어 어느 한쪽이 부당함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정여행이 되겠다. 곧 이를 지키며 여행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을 바로 여행의 목적성이었다.

여행의 기본적인 목적은 새로운 장소와 문화를 즐기는 것에 있다. 그리고 앞서 정리하였듯 자연, 지역과의 유대 또한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졸작의 주 키워드인 사회와의 연결을 가지려면 공정한 여행 과정과 그 결과에 있어 유의미한 정보가 필요했다.

연고로 가장 큰 고민은 자연스레 여행지 선정이 되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관광객을 맞기 위해 케이블카 또는 출렁다리, 모노레일과 같은 관광 시설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이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전국에 퍼져 있기 때문에 지역만의 특색을 고려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장소와 사람이 많지 않은 장소, 집과는 멀리 떨어진 장소, 그리고 지역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첫 번째로 찾아낸 장소가 바로 헤이리 예술마을이다.

파주시에 위치한 이 마을은 이번 기회로 처음 알게 된 장소인데, 여러 방문 후기들을 찾아보니 자연 관련 전시도 많고 길에는 여러 조형물이 있는 데다가 미술관, 전시관, 박물관, 공방 등의 별의별 시설들이 몰려 있어 흥미가 생겼다. 이런 예술가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내가 즐길 거리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소를 확정 짓고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왕복 6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잘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고 결국 6월 둘째 주에 들어서야 여행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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