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월에 퇴사하였고, 12월에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출국 예정이다. 11월인 현재 나는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출국 전까지 일을 할 생각이 없다. 주변에서 간간히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생계는 문제는 없는지?, 불안하지 않은지? 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고, 관련하여 나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어 기록으로 남겨본다.
퇴사 후 2달여간은 푹 쉬며 충분한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가졌고, 모아둔 돈은 풍족하진 않지만 당장 일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강박과 조급함을 가지기보다는 진정 내가 원하는 때에 알맞은 방법으로 일하고 싶었다.
이전부터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사람을 보면 멋있고, 나도 언젠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최근 내가 원하는 자유로는 삶을 살기 위해, 직업적으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가 영어라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워킹홀리데이라는 동기부여와 돈, 시간, 자취 등 현재 최적의 환경이었고 만약 둘도 없을 이 소중한 시간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 같았다. 그렇게 출국 전까지 본격적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싶었다.
문득 내가 정말 지금 일하지 않아도 생계에 지장이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현재 가진 현금, 예상 지출, 해외생활에 필요한 예상 지출, 이후 남는 여유 자금, 비상상황시 사용해야 할 자금을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문제 될 게 없다고 판단 후 이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이런데도 불안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 원인은 생계가 아닌 다른 것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일을 하지 않음에 따라 내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와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큰일이 나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다. 돈은 벌 시기가 있고 또 벌면 된다.
최근에 느끼는 건 나는 정말 좋은 부모님과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관련 이야기를 공유드렸을 때에도 부모님은 [왜? → 아~ 그렇구나 → 저녁은 뭐 먹을까?] 와 같은 심플하면서도 전적으로 나를 존중하고 신뢰해 주셨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주변을 보면 아닌 경우도 많아 보였다.
원래도 혼자 고독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으나 퇴사 이후 더욱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나는 직접 경험한바 먼 미래의 계획보단 당장 진행할 일에 대한 계획만 세우는 편이다. 미래는 단연 변화하기 마련이고 투자한 비용에 비해 얻는 소득은 터무니없이 적은 까닭이다.
그것보다 내가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영향을 주고 살고 싶은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집중하였다. 그 과정과 결과는 어떠할지 알 수 없으나 내가 정말 원하는 목적지에 대한 명확한 윤곽을 잡게 되었다.
글쓰기는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되며, 온전한 나의 창작물이라는 점 때문에 시작하였는데 게으름만 이겨낼 수 있다면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나의 노션에 글쓰기 소재와 메모들이 가득하게 쌓여만 가고 있다..
퇴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근처 복싱장에 등록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에 따라 몰입하여 소화하고 운동을 마친 후 나올 때면 상쾌한 기분과 함께 이마의 땀을 닦을 곳이 없을 정도로 티셔츠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이후엔 녹초가 되었다. 이 덕분에 일찍 잠을 자고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삶이 조금 무료하고,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하다면 하루 일과에 새로 배우는 운동을 배치하는 것을 "나 사용법" 문서에 추가하게 되었다.
막상 시작하면 나름 몰입해서 진행하지만 시작 전에는 하기 싫고 미루고만 싶은 게 프로그래밍 공부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줄 강력한 도구이자, 표면적으로 나를 지켜주고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놓을 수 없는 어떤 애증의 동반자이다..
나는 뛰어나고 훌륭한 기술자가 되기보다는 유용한 도구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는 메이커,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
친누나가 프리랜서 개발자로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어 저러한 시장도 존재하는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다.
프리랜서 업무 성격 자체는 내가 추구하는 바는 아니지만 짧은 기간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며 직장대비 높은 보수의 장점으로 인해 관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프리랜서 일 자체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출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현재 더 집중해야 할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판단되어 시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4개월 차엔 몸이 근질근질했고, 6개월 즈음된 현재는 일을 하고 싶다. 2-3개월 정도 프리랜서 경험을 해보았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출국 전까지 희망하는 나의 영어 실력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막힘없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유창함이었다. 이를 이루기 위해 하루종일 몰입하여 나의 몸과, 마음, 에너지를 한데 모아 공부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나의 조급함과 빨리 성취하고 싶다는 욕심과 더불어 나와는 알맞지 않은 방법이었고,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항상 실수하는 것을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은 몇 개월간 아래와 같은 무의미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 큰 목적을 가지고 몸에 잔뜩 힘을 주고 긴장과 경직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진행
- 경과에 만족감을 느낄 수 없고, 더 해야 한다는 성급한 채찍질
- 제 풀에 못 이겨 지치게 되니 지속 가능하지 않음
- 자책을 하게 되고 자존감과 자신감만 하락함
현재는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하루 단위 힘들이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전보다 질적으로든 마음적으로든 훨씬 나아진 것 같다.
이러한 해프닝을 겪고 드는 생각은 공부라는 것은 학습과는 더불어 그것을 해내기 위해 개개인에 따른 알맞은 방법을 설계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일 텐데 결국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같다.
시간에 큰 구애를 받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기는 정말 소중하고 흔치 않은 기회인데 막연하게 "언젠가 나도 저거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들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작년 여름 강원도에서 처음 서핑을 경험하였다. 서핑도 재미있었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의 바닷가와 그 앞의 즐비한 식당과 카페들의 분위기, 그리고 그곳을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고 다음 여름휴가 때엔 꼭 장기간 바다에 머무르며 서핑여행을 즐기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그때에 느꼈던 느낌과 감정을 잠시 잊은 까닭인지 시간은 어느새 "올 겨울 입을 패딩이 없는데.." 사소한 걱정을 하는 지금까지 흘러가 버렸다.
그 외의 것들은 아래와 같다.
- 농촌체험,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사람들과 어우러져 친밀감 있는 공동체에서 좋은 추억 만들기
- 수영 배우기
잠자리에 들고 잠이 오질 않아 이것저것 잡생각에 사로잡힐 때 즈음 현재 시간이 많은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 결과 나만의 창작물이며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에 부합하는 나의 삶과, 멋지게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상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꼬리 질문과 같은 리서치와 샘솟는 아이디어로 인해 결국 다음날 뜨는 아침해를 보게 되었지만 알게 모르게 한 발 앞으로 내디딘 것 과 같은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곧 있을 여자친구가 3년 운영한 영업장 폐업을 도와주는 영상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우선 내가 꾸준히 이 행위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은 만족할만한 퀄리티인지 부담 없이 시험해보고 싶다. 이 영상들은 우리 둘 만의 추억거리로만 남을 수도 있고, 역시 우리에겐 알맞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계기가 될 수 있다.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는 건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난 이후에나 고민할법할 일이다.
사실 영어로 의사소통에 자신이 없다. 며칠 전 영어 실력은 부족하지만 개발자로 구직하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다 떨리고, 만약 나였다면 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였을까? 를 생각해 보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은 제법 모험심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해외 취업을 위해 못나고 부족하지만 고군분투하며 조금씩 발전해 가는 솔직한 과정들을 영상에 담는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나는 직업에 대해 나만의 확고한 기준과 조건이 있고, 무의식적으로 직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잣대로만 사고하고, 남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의미 없고 오만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이란 그저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세계의 수많은 산업과 분야 중 일부 작은 부분에 내가 속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내가 할 수 있고, 관심이 있고, 쓸모가 있다면 그리고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성격이라면 다수 직업을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인생 관점에서 큰 배움과 가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던 과거엔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지만, 그 회사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곳이 되었고, 현재 일을 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또다시 일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생계유지를 위한 행동임을 떠나 에너지 넘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인 것 같다.
만약 해외에서 개발자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단지 프로그래밍 기술로 회사 업무를 하는 게, 아닌 정말 사용자에게 유용하고, 쓸모 있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꼭 필요한 서비스를 팀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사람은 나약하다. 우연히 본 공부법 영상에서 노벨상을 받은 뛰어난 사람도 주위의 자극에 약해 주어진 하루를 잘 사용하기 위해 시간관리 기법을 사용하고 고군분투한다 라는 말을 듣고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은 더더욱 욕심과 자책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블록을 1개씩 쌓아가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게 맞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튜버 무빙워터님의 영상을 보며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삶에 대한 배움이 있었다. 특히 의사결정 관련하여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옳게 만드다" 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일련의 과정을 겪고 내가 결정하였다면 책의 페이지가 넘어간 것처럼 그 이후 부분만 집중하는 게 지혜로운 것 같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내용도 큰 울림이 있었는데 조금 과장하여 "흐르는 대로 어찌어찌 살다 보니 100살이 되었고 죽었다." 보다 "나를 탐구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시도하고 살아보고 100살이 되었고 죽었다." 라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하였는데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명확하게 정리한 문장이라고 느꼈다.
나는 인상 깊은 사건이 이루어지고 처음 느끼는 그 감정을 정말 좋아한다. 가령 오랜 해외생활을 끝내고 본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으로 밟는 땅과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쉽사리 잊혀지지 않고 눈을 감고 조용히 기억을 되새김질해 보면 그때의 감정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게 마치 언제든 꺼내서 느낄 수 있는 나의 기억의 바구니에 쏙 안착된듯한 기분이다.
2달 후 출국이라는 게 실감 나질 않는다. 30년 대한민국 땅에서 살았고 음식, 문화 등 모든 게 익숙한데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더불어 나의 기억의 바구니에 들어갈 그 경험들은 내가 평생 두고두고 꺼내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