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 #2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
무작정 타이베이台北 헤매고 다니기.
눅눅한 빨랫감들이 길다란 장대 끝에서 우중거리고
이미 반쯤은 시들어버린 이파리가 더 무성한 화분,
무너진 벽돌담과 누덕누덕 기운 리어카 천막,
어디선가 쌀밥 안치는 냄새가 창문 끝에 걸린
작은 골목길
낡은 담요 속 아기 칭얼거리는 소리....
찬찬히 걸음을 옮기며 곰곰 뜯어보면
그렇지만 그 몹시도 '낡고 기운 것들'이
꼼꼼하고 야무지게.... 잘 손질되고 가꾸어져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베이의 매력은 그런 점에 있다.
작은 공터에 소소하게 드리워진
줄무늬 천막 아래 'flea market'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작디작은 물건들이 제 주인을 닮았다.
제아무리 맛있는 베이글 빵이
건물 안에서 막 구워지고 있다고 해도
무더운 이런 날씨에는 아이스크림이 제격.
회백색 낡고 우중충한 시멘트 건물들
그렇지만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대형 버스 광고 너머로
세상을 굽어본다.
걷다가 출출해지면
골목 안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는
간식수레들을 찾는다.
달달한 팥소는 어쩌면 이렇게나
올곧은 맛을 품고 있는지.
달콤함에서 비롯된 찰나의 행복,
밀가루 음식 특유의 든든함이
혀 끝에서 발바닥 끝으로 전해지면서
무료한 오후에
생기를 부여한다.
얌전한 시내 풍광에 심심함이 느껴질 무렵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가까운 다른 도시로 '반나절 나들이'를 다녀와도 좋겠다.
촘촘하게 짜여진 도심을 벗어나 버스가 달릴수록,
낡았지만 화려한- 소박하지만 분주한-
다채로운 모습들이 시선을 간질이는 이런 즐거움.
그 동네만의 '명물'인 뿔 모양의 빵과- 엄청나게 특출난 맛은 아닐지라도-
마을 뒷산에서 난 신선한 채소와 나무열매들,
풍성한 재료를 활용해 관광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만족감을 주는 간식거리들이 즐비해 있으므로,
재래시장 나들이는 유쾌하다.
진고동색 진주알의 이 절묘한 쫄깃함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맥주거품마냥 부드럽게 입술을 휘감는
우유크림에 시원하고 진한 밀크티가
사르르, 녹아드니
여름날의 무력감은 온데간데없다.
타이베이는 밀크티의 도시.
친근한 아르바이트생의 인사에
미처 고개 돌려 답하기도 전에,
앞쪽 가게에서 몇 발자국을 내딛자
벌써 그다음 가게의
포렴이 눈에 쏙 휘감긴다.
급작스레 찾아드는
출출함도 살살 달래가면서
조금 더 특색있는 메뉴도 찾아본다.
토란을 통째로 달게 쪄내 곁들인 '빙수'는
쫄깃 부드러운 것이 은근 별미다.
담백한 두부와
칠흑같은 '거북즙 젤리'는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국물에 어우러져
한약방 감초같은 향과 함께
수저에 담긴다.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듬뿍 올려
한층 더 풍부한 만족감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은,
그대로 손 안의 동전 몇 개와 치환되어
작은 즐거움으로 분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젤리 일색과
노오란 연밥 열매,
고향집에서 가져온다는
유기농 땅콩 등을
한껏 기쁘게 향유한다.
여행자는 이런 때야말로
한껏 사치스러워질 수 있는 법.
고즈넉한 도시의
쨍한 햇살과 간간이
도시 냄새를 잔뜩 실어오는 바람에
탐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