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 #4
베를린이라는 회색빛 이미지- 왜인지 모르게 다들, 그렇지 않은가?- 의
멀고 먼 유럽 도시 하나가,
어느 순간 마음속에 들어와 콕, 박혔던 건,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 1987>라는
다소 '오래된' 영화를 통해서였다, 틀림없이.
그런데 내가 그 영화를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봤더라.............. 아련아련한 기억 속 영화,
음울하고 습습... 한 도시.
추적추적 흩뿌리는 겨울비같은.
천만의 말씀.
오늘의 베를린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쓸쓸한 분위기와는 사뭇-
이 아니라 아주 많이- 다르다. 오늘의 베를린은
패기 넘치는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 젊은 청년 아티스트들,
힙한 카페, 다수의 베지테리언 레스토랑, 팝업 스토어 등
갖가지 문화활동과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힘차고 발랄한 도시다.
오늘의 베를린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상적이다. 아름답고, 건강하고, 정돈되었고,
오랜 시간 여행자로서 혹은 학생으로서도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그런 도시에서 특정한 걱정거리 없이, 몇 달간의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요새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 종의
해외 잡지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만서도
그래도 '본토'에서 바로바로, 시즌에 따라
따끈따끈하게 갓 나온 신간들,
아직 수입되지 않아 특정 사이트에서만
힐끗힐끗 동경해오던
개성파 잡지들이 무수히 깔려있고-
게다가 맘 내키는대로 훑어보는 것 역시
웬만한 곳에서는 대부분 자유롭다-
깔끔하고 친절하고 특색있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넘나든 서점들.
그중에서 이제 막 새로 오픈한,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는 '청초한' 새 서점에서-
희미하게 남아 떠도는 페인트칠 냄새와 풀 냄새,
새로 들어온 책 무더기의 종이 냄새를
흠흠대던 중, 구미에 꼭 맞는 책을 한 권 발견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거야, 너로 정했어!!!
우연찮은 기회에,
우연찮은 인연으로
이로써 베를리너Berliner들도
'아직 잘' 가보지 않은-
시내 구석구석을 발품 팔아가며 경험한,
'베를린 최고의 커피를 찾아서'의
서막이
예기치 않게 올랐다.
혼자서, 타박타박, 거 참.
어쩌다 그렇게.
"Poor but Sexy"
단순하지만, 명쾌하고도 심플한 구호.
베를린의 뉴 모토다. poor의 의미를 '한국식'으로 곧바로
해석하려 들면.......... 안 되겠다.
가난하고 남루한 푸어-가 아니라,
다소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유쾌하고 만족하고 자유로워.
넘치도록 풍요롭진 않을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라는 그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충분히 멋지다.
베를린에는
구석구석,
멋진 곳들이
정말로 많다
그저 '멋지다'고만 하면 섭하지
so cool! 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쏘 친절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뭐,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때로는 정말 맛깔나는
커피 한 잔을 찾아서
때로는 '짝 달라붙는'
크래프트 맥주 한 잔을 찾아서
무언가 진지한 접근이라든지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루이틀 차차 알아가는 나만의-
베를린 카페 로드는
커피를 몹시도 좋아하는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카페 안에서 무얼 하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행위라면
무심하게, 그러나 바로바로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그들의 여유로운 카페 분위기는
노트북으로 온종일 작업을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단순히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거나
출근 전 잠시 들러 각성을 요하는
음료를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하거나-
어느 모로, 이상적인 공간이다.
그렇게 시작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