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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Oct 01. 2015

베를린 커피콩 감별사 II

도시를 걷다 - #5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시내 한가운데를 기점으로

제법 큰 원을 이루며 둥글게 퍼져나가던 나의

'커피 로드 맵'을 지켜보는 뿌듯함이라니. 거 참.


그 시간들을 편애했다. 

일단 커피를 주문해 한 잔 음미하고, 비치되어 있는 신간잡지를 읽다가,

때때로 남몰래 스틸사진을 찍거나

휴대용 물감과 연필을 꺼내 카페 안 구석구석을

스케치하던 시간들.
































남모르게, 혼자서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나만의 오롯한 공간과 

조각난 시간들.


공기 속을 부유하는 커피콩 가는 냄새.

잔을 씻는 옅은 물소리.

사람들의 호흡으로 데워지고 메워지는

카페 특유의 온기....................

딱히 어떤 것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카페에서 엮어낸 시간들은 

충만하고,

켜켜이 쌓여  

추억으로 남는다.















종국에는 도시 안 제법 익숙한 장소에서 열린,

'커피 페스티벌'에까지 홀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쌉쌀한 기운 잔뜩 머금은 갈색 액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 싶은 베를리너들은

죄다 그곳에 모인 듯했다.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의

격의 없는 조우란

얼마나 유쾌하고 가벼운 흥분을 동반하던지.

시간 가는 줄을 미처 몰랐다.

















































































































































물론 베를린에는 

갖가지 맛있는 것들이,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풍요롭고 즐비하지만,


찬란한 여름이 가고......

바람과 비를 동반한      

서리의 계절이 가까워진다면

단골 카페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름은 빛나지만 짤막하고, 그래서 안타깝고, 

소중하지만 기약없이 잊혀지고......

큼직한 라떼잔과

온기를 머금은 군밤의 계절이

한순간에 들이닥칠 것이다. 예고도 없이. 


소다수와 버거의 계절이 흐르고,

그리고 베를린은 다시

커피의 도시가 된다.





















오늘은 케이크 고르는 걸 부탁해도 될까?


오케이, 물론이지. 흠... 어떤 맛을 좋아해?

우리 치즈케이크는 오직 독일산

수제 브랜드만을 사용하고,

레몬 파운드케이크는 버터를 사용하지 않았어.

베지테리언을 위한 거지.

아니면 

오늘은 헤이즐넛 크림케이크가

방금 막 들어왔으니,

나로서는 이걸 추천하고 싶은데.













"음...... 정말 미안해.

내 영어가 너무 부족해서

주문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한창 바쁜 시간인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을게......"


"오, 무슨 소리야. 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지?

나는 너희 나라의 언어- 한국어를

전혀 말하지 못해. 한 마디도 몰라.

최소한 너의 영어는 나보다는 나은 거잖아?

전혀 '미안해' 할 필요 따윈

없는 거라고"


































그냥 편안하게 후루룩 들이마셔요.

그러고 나서 그냥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괜히 어려운 표현을 굳이 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실 때 일일이

그런 걸 떠올리면서 마시는 건 아니잖아요?


향긋한 오렌지같은 향,

날짜 지난 정어리 통조림 같은 끔찍한 맛,

끝을 조금 태워버린 스테이크 맛......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까요.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그러면 돼요.











천천히 둘러봐요, 아가씨.

어차피 나는 원두를 고르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이건 하루 일과의

중요한 의식같은 거니까, 나한테는.


게다가 우리집 바깥양반이

식성이 좀 까다로워야 말이지.

커피 맛에 민감한 남자는 말이지,

여자를 피곤하게 만들 때가 많으니

조심해야 할 게야.












- 저기 미안한데,

  혹시 우유를 조금만 더 뜨겁게

  데워줄 수 있나요?


- 미안해요.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최적의 커피를

  손님에게 대접한다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거든요.

  음... 이해할 수 있겠죠?


- 그럼, 그렇고말고요.

  단지 그냥......

  한 번 물어봤을 뿐이예요. 당신에게 맡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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