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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Feb 24. 2016

교토 책방, 세상 책들의 지구 마지막 날까지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Thomas a Kempis





서점에를 간다. 종종.

그것은 굳이 관심 있는 특정 도서를 구매할 목적이라든지

'여가생활'의 일환이라기보다는... 간혹 반가운 친구를 만나고, 도시락을 챙겨

소풍을 가고, 지인들과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삶 중간중간 활력을 주거나 쳇바퀴 같은 다음 월요일을 맞이할 기력...

따위를 충전시켜 주는 '영양제' 같은 행동지침에 다름 아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수도 특유의 번잡스러움과 지나친 세련됨에 물리기 시작한 지 오래,

더이상 도쿄는... 매력적인 관광 도시의 순위에서 조금, 밀려나게 되었다.

대신, 이제는 으레 오사카로 향한다.

과거 '간사이 사투리'가 각종 매체에서 빈번히 희극적 요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것처럼,

조금 덜 다듬어진 뭉툭한 모습과 검정콩을 박아 넣은 찹쌀떡 같은

몰랑몰랑한 푸근함이 아직, 남아 있는 그곳으로.


오사카- 교토- 라는 곳은 어쩌면 늘, 그렇게,

감탄스러우리만치 한결같은 모습으로, 변함없는 고지식함으로-

도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매번 감탄하곤 한다. 지치지도 않고.





젊음과 전통이 혼재하는 곳, 모던과 빈티지가 공존하는 곳,

교토는 일종의 판타지다. 

잘 세공된 보석반지 같은 디저트류들, 일일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우동들,

지글거리는 타코야키 반죽과 커스터드 크림이  넘쳐흐르는 슈크림빵,

그 바로 옆 가게에는 출렁대는 우무와 뽀얀 판두부들, 자줏빛 순무와 양배추 뿌리,

얄미우리만치 작고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각종 기념품들,

기모노 오비의 톤 다운된 무채색 우아함과 오미야게 가게에 가득 쌓여 있는

벗겨내기조차 아까운 파스텔빛 포장지들... 


번화한 골목 하나를 돌아서서 조금만 걷다 보면 금세,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막과자가게며 오뎅가게, 다섯 평이나 될까말까 한 작은 카페와 공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무지고 정갈한 점심메뉴를 써 붙인 소규모 밥집들...




































































































일반적으로 교토를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가와라마치河原町 거리나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인근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정작 교토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

번화가와 짐짓 거리를 두고 있는 작은 골목골목들, 우리네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 꾸려온 이름 모를 동네들 구경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귀띔해주고만 싶다.


아주 한갓지거나 무심하게 방치된 골목에 불과할지라도-

이리저리 기웃대다 보면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는 터줏대감 문구점, 반찬가게, 미용실

그리고 서점. 아니, 책방. 그래, 책방.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교토의 동네책방- 그렇지만 너무 유명해서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을

마침내 찾아가는 하루. 햇살이 소설 속 풍경처럼 몽롱하게 내리쬐는 골목길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恵文社一乗寺店










거의 검정에 가까운

몹시 어두운 빛깔의

큼직한 나무 책장들 사이로

책의 숲이 비현실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비단, 책들뿐이랴-


진열대를 빼곡히 채운 

온갖 잡화들과 책 관련 액세서리들,

짚이나 수제종이로 직접 만든 듯한

디자이너 소품 등이

감격에 겨울 만큼

행복감을 선사한다.













몇 시간이고 난,

이곳에 있을 수 있겠어!!!


멋대로 다짐을 한다.


어디부터 구경하지?


혼자서 종종거린다.
























































비록 글자를 알지 못해도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해도

이렇게나 존재 자체로

충만함을 줄 수 있는 사물이

책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책을 왜 좋아하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말로 글로 옮겨낼 수 있다면

진짜 사랑이 아니듯이

그냥 이대로

곁에 있어주면 위안이 되고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는, 내 눈 아닌 타인의 눈이,

오롯이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일 겁니다.






























무수한 책들이 충만한 기운을 빚어내는

책장들 너머 한쪽으로는 자그마한 통로가 이어져

갤러리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발길을 향하게 한다.


쿰쿰하게, 다소 어둡게, 조도를 낮춘

비현실적인 공간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는-

불투명하게 반짝이는 빈티지 유리병들, 향수병들,

머리칼이 군데군데 빠져나간 낡은 인형과

북유럽 꽃무늬 전등갓, 묵직한 존재감의

청동 책누르개 등으로

또 한 번의 설렘을 동반하는 곳.












그냥 문을 나서기가 아쉬워 작디작은 소품 하나를 달랑 집어들어도,

어찌나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주려 하는지

때때로 '과잉'이라 치부될 수도 있는 그들의 노련한 친절함이

영 거북하지 않은 것은, 

안녕히 가시라, 또 오시라는 앳된 가게 점원의

명랑한 미소 때문일 것이다.

책과 함께 지긋이 하루의 호흡을 함께 하는 이들 가운데서,

팍팍하고 몰인정한 자본주의의 논리를 구태여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비록 의미 없는 환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래서 오늘도,

이름 모를 동네 어귀의 책방을 찾으며, 걷는다.

갓 포장을 푼 새 책 내음을 들이마시고, 목구멍이 칼칼해지도록

종잇장 사이의 책먼지들을 삼키며 익숙한 활자가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추억과 음모와 비평과 지식의 혼연일체를 만끽한 뒤에

따뜻하고 진한 동네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가야지.

많이 달지 않은 작은 빵과자 한 조각을 곁들여 내어준다면,

이 기나긴 산책을 마무리하기에 정말이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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