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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지 Jun 14. 2024

나의 아저씨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터덜터덜 들어가는 길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파트 공동현관 쪽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같은 동에 사는 아저씨였다. 자동문이 안 닫히게 몸으로 기대고 계셨다. 얼른 뛰어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들어갔다. 요즘 같은 때에 보기 드문 호의였다.


  아저씨는 다리가 조금 불편하시다. 사실 아파트 헬스장에서도 나는 아저씨를 몇 번 뵀었는데, 그때마다 불편하신 몸으로 열심히 러닝머신을 걸으시는 걸 보고선 내 스스로를 반성하곤 했었다. 아저씨는 나를 수많은 이웃 중 하나로 알고 계실 테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 아저씨의 걸음걸이로 아저씨를 기억하곤 했다.


  지난번에 야근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탔던 엘리베이터에서도 아저씨를 마주쳤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죠.”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일 년 만에 이웃에게서 들은 첫마디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에게는 듣기 힘든 말이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순간 마음이 찡하고 울렸다. 낯선 이에게 받는 위로가 이토록 따뜻할 수 있을까. 그 여운은 집에 가서 자기 전까지도 맴돌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ktx 안이었다. 한 할아버지께서 화장실 칸의 문을 열지 못하고 계시길래, 얼른 열어드렸다. ktx 화장실칸은 손잡이를 돌린 후 문을 안쪽으로 겹치면서 밀어서 여는 방식이라 젊은 사람들도 가끔 여는 걸 어려워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안에 들어가셔서도 문을 잠그지 못하셔서, 밖에서 내가 문고리를 잡아드리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화장실을 나오셔서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자리로 가셨다. 그리고 순간 그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한 영향력은 쉽게 번진다.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듯 화르륵 옮겨 붙는다. 지구를 살리는 배려도 대단한 게 아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그것들이 모여 나비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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