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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Matter Sep 19. 2024

인상, 해돋이

슈게이즈, 드레인 갱 그리고 인상주의

타락천사 - 왕가위 / 바이올렛 에버가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멜로디’와 가사’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멜로디’ 파라고 답하기는 하지만, 사실 필자는 ‘사운드’ 파에 더 가깝다. 곡의 진행도, 가사가 담아내는 서사도 아닌 창작가들이 고심하여 하나하나 선정해낸 소리들이 모여 만드는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이 전달하는 감성에 가장 큰 의의를 두는 것이다. 음악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다. 왕가위의 타락천사와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과 같이 연출과 표현력에 힘을 쏟는 영상물에 매료되고, 또 오래 기억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은 탄탄한 세계관과 서사를 가진 그것들이겠지만, 감상평의 피라미드 상단에 위치한 작품들은 대부분 앨범 커버에서부터 감성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는 것들이다. 


loveless - my bloody valentine / Souvlaki - Slowdive

이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장르는 분명 슈게이즈일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Sonic YouthThe Jesus and Mary ChainCocteau Twins 등 80년대를 풍미한 그룹들의 노이즈와 몽환이라는 다소 상이한 특성이 낳은 새로운 장르.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표현할 수 있을 법한 my bloody valentine의 loveless와 Slowdive의 Souvlaki의 커버에서부터 이들의 역할은 충실한 감정 전달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희미한 형체와 새벽 햇살 같은 빛, 언더그라운드의 감성은 곧 이들이 음악에 담아낸 모든 것이고, 이가 자아내는 아련하고 우울한 새벽의 향취는 자연스레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감성을 담아내는 얼터너티브 한 장르의 팬이 힙합 매거진에 글을 기고하는 것은 다소 의아할 수 있는 점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폭력적인 잡종 문화’라고 표현되는 엔터테인먼트와 저항 정신을 담아낸 힙합은 물론 슬로우다이브와 Kinoko Teikoku를 사랑하는 사람이 매료될만한 장르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든 락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듯이, 힙합 속에서도 이들과 같은 이단아들이 분명 존재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분명 들어보았을 그룹 Drain Gang과 Sad Boys가 바로 그들이다. 스웨덴에 거취를 두고 있는 이 두 그룹의 음악은 그 지역의 날씨가 가진 풍경을 사운드로 만들어낸다. 차가운 바람 소리와 옷 속을 파고드는 서늘함, 그리고 이런 날씨에서 인간이 흔히 겪는 우울이라는 감정. 슈게이즈의 그것과 꽤나 일맥상통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필자가 회색 영역이 묘사하는 수분기 담긴 풍경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음악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몇 년간 미술을 배운 경험 덕에 다양한 사조에 어린 시절부터 꽤나 익숙했는데,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자주 접했고 그때부터 일상 속 순간의 풍경 속 감정을 담아내는 인상주의의 기법에 매력을 느꼈다. 슈게이즈와 드레인 갱, 그리고 인상주의. 감정을 담아내는 이 장르의 교집합은 단지 감정적인 작품이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선 기존 장르의 기득권 층의 반발을 이뤄냈다는 것이 그렇다. 이펙터 페달만 바라보며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내성적인 공연 성향을 비꼬며 탄생한 단어 슈게이즈, 영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밴드라는 칭호가 붙었던 슬로우다이브, 극성맞은 10대 Emo들이 소비하는 질 낮은 음악이라는 편견과 맞서는 드레인 갱과 새드 보이즈,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조의 화가들에게 매몰차게 비판받았던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이들의 작품에는 얼터너티브로 함에서 흘러나오는 이단아와도 같은 언더그라운드 정신이 깃들어있고, 내성적이면서도 남몰래 소소한 반항을 희망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강한 매력으로 작용했다.


작품 그 자체의 특성도 상당히 유사하다. 인상주의의 핵심 정신 중 하나는 현상을 묘사하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그 현상이 담아내는 주관적인 감각들의 탄생을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상 속의 풍경을 그려내며 약과 술, 매춘부 등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모네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이들은 빛과 색채를 독특하고 적극적이게 사용하여 특유의 몽환적이고 물에 담긴 듯한 채색을 전개했다. 슈게이즈는 노이즈와 리버브 등 수많은 이펙터 페달의 교차 사용으로 아련함과 달빛과 햇빛이 교차하는 새벽을 그려내는 그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가사를 제공하지 않을 정도로 보컬을 감성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사운드 효과로 이용하며 인상주의적 정신을 이어나갔다. 드레인 갱과 새드 보이즈의 대표 아티스트인 BladeeYung Lean과 Ecco2k 또한 10년간 변화하는 스타일 속에서도 각종 신디사이저로 만드는 약에 취한 듯한 몽환적인 감각과 공간감을 빼놓지 않았고, 래핑보다는 싱잉에 가까운 보컬을 슈게이즈와 비슷한 형태로 이용해왔다.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테제지만, 이러한 특징을 가진 장르의 마니아들은 주로 온라인상에 포진해 있는 우울함을 파고드는 10대와 20대 등의 젊은 세대들이었다. 인상주의가 가장 보통의 존재들의 일상을 담아내며 그에 매료된 이들 덕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이들 장르가 작품으로써 낭만화시킨 현대의 공허함과 우울함에 빠져든 걸지도 모른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졌고 수선화를 낳았다. 우리가 예술이라는 형태로 표상화된 스스로의 감정과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어떤 수선화를 낳아 신인상주의를 이어나가게 될까.


인상, 해돋이 -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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