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툰을 1년 정도 그리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주변에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나도 콘텐츠에 관심이 커졌고 그 1년 동안 콘텐츠 강의를 제일 많이 들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인스타툰 강의가 콘텐츠 강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내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렇다고 웹툰을 그리고 싶은 건 아니니까(그 당시에는 웹툰도 단편적인 시각으로 봤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때마침 인스타툰 콘텐츠도 스토리가 더 중요하고, 내가 만화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도 스토리텔링이었다. 그러니 내가 되고 싶은 건 인스타툰 작가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접근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 적은 없었다. 매주 인스타툰을 그려 올리면서도 뭔가 어긋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셔츠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넣은 기분이었는데 일단 끝까지 단추를 끼워 넣었다. 역시나 어색하고 낯설었다. 난 대체 뭘 그리고 싶은 걸까? 1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하나 깨닫고 단추도 하나 풀었다.
창작.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단추 하나만큼의 숨통이 트였다. 왜 이렇게 간단한 걸 몰랐을까?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만화를 그리면 됐잖아! 나는 시야가 좁은데 종종 그 시야마저도 이상한 방향을 향한다. 만화가랑 웹툰 작가는 다른 줄 알았고 인스타툰 작가도 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줄 알았던 거다. 나도 이런 내가 밉다.
1년이나 빙빙 돌았으니 길을 단단히 잘못 들어섰나 후회할 법도 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인스타툰을 그리면서도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법과 가독성 좋은 그림을 그리는 법, 대중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만화를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인스타툰도 결국 TOON, 만화다. 나는 1년 동안 짧은 만화를 매주 2~3회 그리는 연습을 했다. 길을 크게 돌아갈수록 큰 원을 만든다고 했던가? 크게 돌아가면서 (꼭 그래야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소 부딪쳐 많은 걸 배웠고, 다시 창작을 향해 방향을 틀기로 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작년 초에 탈락했던 지원사업이었다. 작년에 회사를 나온 후 한 지원사업에 응모했었는데 떨어졌었다. 회사를 탈출한 내게 힘을 실어주길 기대했지만 대차게 미끄러졌고, 그 후로 한 번도 지원사업에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놈의 돈 때문에 만화를 접어야 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게 뻔했으니 다시 한번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이번에, 눈에 띈 건 ’다양성 만화 제작 지원사업‘이다. 지원사업의 의도도 내가 그리려는 만화의 의도와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최근 계속 떠오르는 소재나 기획들은 모두 상업성과 거리가 멀었는데, 이 사업을 시행하는 목적이 그랬다. 상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만화의 제작을 지원해 다양한 만화가 만들어지도록 돕겠다는 것! 아 이 얼마나 멋진 사업인가.
내년 예상 공고일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미리 준비해야 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내가 매년 겨울이면 효율이 낮아진다는 것이고, 둘째는 작년에 떨어진 사유를 예측한바 내 포트폴리오는 한참 부족했다. 그런데 큰 원을 그리며 돌아온 덕분에 내게 남은 건 콘텐츠 중심의 인스타툰뿐이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용으로 3개월간 짧은 단편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처음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 하나를 정해 그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스토리가 술술 전개되었다. 중간중간 막힘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머릿속에 담은 채로 며칠 할 일을 하다 보면 갑자기 또 떠올랐다. 기세를 몰아 기획서가 빠르게 완성되었다. 그 과정이 무척 즐거워서 그동안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고 그걸 만화로 전달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복병도 있었다. 예상한대로 그림 콘티 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글을 그림으로 바꾸는 건 글만 쓸 줄 알아서도, 그림만 그릴 줄 알아서도 안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글도 그림도 초보였으니 끙끙 앓는 게 당연했다. 돌이켜보면 항상 이 단계에서 만화 그리기를 포기해 왔다. 그런데 프리랜서 기간 인스타툰을 그리며 꾸준함의 내공이 쌓인 건지 이번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마침, 프리랜서가 되며 배운 게 하나 더 있었다. 회사 밖에서는 직접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프리랜서의 단점은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지만, 장점은 혼자 모든 걸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말장난처럼 보이겠지만 프리랜서는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 사수 삼을 수 있다. 다만 부끄러움이 앞서 생각나는 분들께 연락하려고만 하면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서 만화 관련 재단들의 소식들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분명 좋은 사수와 연결될 프로그램이 있을 거라 믿었고 그 믿음에 한국 만화 웹툰 아카데미가 ‘작가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응해주었다.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빠르게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김 송 교수님 상담에 최종 확정되셨습니다.‘
김 송 교수님이 그리신 만화 ’미슐랭스타‘는 탄탄한 드로잉은 물론이고 연출도 좋은 만화였다.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콘티를 완성까진 해야 했기 때문에 깜깜한 머릿속을 헤집어가며 당일 오후까지 꾸역꾸역 그렸다. 70점을 목표로, 완성보단 완료 주의를 택했는데 30점에도 못 미칠 콘티였다. 완성도가 낮은 만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시간이 다가올수록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약속 시간이 되어 교수님 방에 들어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콘티 노트를 건네드렸다. 노트가 교수님 손에 넘어간 후에는 아무리 부끄러워도 도망칠 수 없었다. 알아보기도 힘든 그 콘티를 적당히 넘기셔도 할 말이 없었는데 최대한 꼼꼼하게 살펴주시는 교수님을 보니 더욱 겸손해졌다. 경청하다 보니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보완할 점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제아무리 F인 나라도 그게 더 감사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날 교수님은 내게 길라잡이가 되어 주셨다. 아무것도 몰라 뭘 배워야 하는지도 몰랐던 내게 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다.
“일단 그리세요.”
어쩌면 뻔한 그 말 역시 교수님이 해주시면 무게가 다르다. 더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만화를 많이 완성해 봐야 성장한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처럼 잘 그려지지 않아 멈출 때가 많았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그 말이 제일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실례가 되는 질문도 했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누군가는 이 대화를 예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 변명부터 하자면, 상담이 끝나갈 무렵 만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이 즐거워 보이셨다. 그래서 20년 넘게 만화를 그려오셨는데도 아직 즐거우신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그럼요, 너무 재밌어요. 아직도 재밌어요!“
그 순간 작가님의 눈에서 반짝임을 보았다. 한 시간여 진행된 상담 속에서 건져 올린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만화를 오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 길을 계속 가도 되는 걸까 고민한다. 아마 한참 동안 그럴 것 같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켜도 뒤돌아서면 다시 불안한 날들이 쭉 이어진다. 이건 내가 불안형이라서가 아니라 초보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비전공자들은 모두 공감하실 텐데 아무것도 모르면 어떤 걸 더 배워야 하는지조차 어렵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뭘 선택해서 집중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런데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그냥 찾아 나서면 된다는 걸 배웠다. 가만히 혼자 들여다보고 고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으니 이미 앞서 걷는 분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꼭 이번처럼 작가님을 직접 뵐 기회가 아니어도 좋다. 책이든 유튜브든 강의든 뭐든 좋다. 계속해서 찾다 보면 곳곳에 길라잡이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혹은 “계속 그리세요.” 같은 한마디로도 한참을 더 지속할 수 있다.
한참을 더 꿈꿀 수 있다.
이제 올해가 3개월도 남지 않았는데요.
그 이후 제 만화가 멈추었어요.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는 탓일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3개월간 밥이 되든 죽이 되든 꼭 완성해서 올리고 싶어요.
아마 많이 부끄럽겠죠.
그래도 일단 세상 밖으로 꺼내고,
그다음에 보완해 가며 성장하겠습니다.
아자!